↑↑ 후보 시절 시민들과 만나는 김장호 시장.
[사진 출처 = 김장호 선거 사무소]
[데스크 칼럼= 발행인 김경홍] 민선 4기 출범 초기인 2006년 7월 초 구미시청 일부 간부 공무원들은 남유진 시장을 곱지 않게 봤다. 서울대 출신에다 행정고시, 그리고 오십 대 초반의 나이. 불통, 고집쟁이.
그 시절 모 과장이 부탁을 해 왔다.
“석회 시간 때마다 50분가량 연설을 해요. 공무원들이 돌아서면 욕을 해댑니다.”
‘잘못되었으니 고치시라’는 뜻을 전했다.
하루뒤 남 시장이 전화를 해 왔다.
“시장을 하지 말라는 말이 가”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결려왔다.
“석회 시간에 오분 정도만 말씀하십니다,”
그로부터 16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기자에겐‘ 구미시장’ 이다.
노래방을 가면 휴지를 머리에 휘두르곤 하던 시장이다.
일화가 더 있다.
“더 있다가 ”
“안 됩니다. 네시 장관 만나기로 했어요. 행시 동기인데, 낚아야 죠”
오찬 시간이었다,
당시로선 천하의 친박 중진이었고, 공천에서 큰 역할을 하던 인사였다.
하지만 삐졌던(?) 김태환 의원은 훗날을 이렇게 표현했다.
“참, 멋진 친구야”
엘지 투자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006년 7월 말 저녁이다.
남 시장은 당시 봉곡동 세양 청마루에 전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당시 필자와 부인이 그 노선에서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거였다.
“연예하지 말고 A 통 집 앞으로 와 봐.
바로 달려갔다.
차에서 내린 남 시장이 쓰러진 리허카 어르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게 구미시 복지 행정이 강화된 계기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선거 때는 굽실거리다 끝나니까 관심이 없네. 나쁜..."
그대로 전했다.
"안다. 그들의 말대로 하면 구미시장은 없다. "
세상만사, 정치 세계가 그렇다.
남 시장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불통을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눈물 많고, 약자에겐 가슴앓이를 많이 하곤 했다. 일부 정치인, 측근들의 문제였다.
결국 그들은 남 시장의 길을 막았다.
김장호 시장 시대가 열렸다.
많은 얘기들을 한다. 상왕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강자보다는 약자, 불통이 아닌 소통의 시정을 고민해야 한다. 이권, 특혜를 바라는 세력부터 쳑결해야 한다. 아플 것이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민선 8기 김장호 구미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