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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북 구미시장 선거 기획•2 /4년 만에 뒤바뀐 구미 민심 ‘풀뿌리의 매질은 냉혹했다’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l.net 기자 입력 2022.06.05 03:19 수정 2022.06.05 20:59

기획•1에 이어 기획•2 특집 보도
민선 7기 27년의 역사, 그리고 민선 8기의 향후 4년
역대 구미시장 선거 분석
민선 구미시장 시대 개막


[기획•2] 민심은 들풀이다. 겨울 언 땅에 말라비틀어진 채 뿌리를 드러낸 이름 없는 들풀은 죽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 풀뿌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싹을 풀어내고 어우러져 산야를 물들인다.
그 들풀들은 꽃동산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들불로 번져 온 세상을 화염에 휩싸이게 하기도 한다.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는, 연약한 것 같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생명력이 넘치는 들풀을 빗대어 풀뿌리라고 하고, 세상은 그것을 풀뿌리 정치라고 이름한다.

K문화타임즈는 구미 풀뿌리의 지방자치 시대의 역사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 구미시 4공단 확장단지 [ 사진 출처 =구미시]




◇박미진 시장은 마지막 관선 시장, 2개월 최단 임기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행정의 효율화를 주창하면서 도농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여파는 예상 이외였다. 통합 반대에 사활을 건 선산지역 도의원들은 삭발에 들어갔고, 일부 선산지역 주민들은 역사의 중심인 선산군의 구미시 종속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정치적•시대사적 기류는 선산군의 구미시 통합으로 이미 기울고 있었다.

이처럼 통합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1994년 1월 1일부터 1995년 4월 19일까지 관선 시대의 길을 걸어간 이가 박병련 시장이었다. 혹한이 몰아쳐도 주머니에 손을 넣는 일을 절대 금기사항으로 여길 만큼 자기 관리에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박 시장은 부하 공무원들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 때문에 당시의 공무원들은 박 시장을 유별난 존재로 기억한다.

뒤를 이은 이가 박미진 시장이었다. 민선시장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던 1995년 4월 20일부터 선거가 종료되던 1995년 6월 30일까지의 2개월간 시장직을 수행한 박 시장은 새로운 시정방침을 정하지도 않았다. 임기 2개월의 그에게는 사실상 민선 시장 선거 업무를 무리 없이 완수해야 한다는 단순한 책무만이 주어져 있을 뿐이었다.

▷김관용 민선 초대시장 취임
구미면이 읍으로, 읍이 구미시로, 구미시가 통합 구미시로 발자취를 남기기까지 관선 시장을 거친 이는 14명이었다. 그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김관용 전 경북지사였다.

그가 민선시장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용산세무서장을 끝으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공천장을 받고 낙향한 당시 김관용 후보는 평생을 구미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온 자유민주연합 전병억 후보와 맞서야 했다.

김윤환, 박세직 국회의원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선거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의 안개 속이었다. 사실상 일대일 구도였지만, 뒤늦게 뛰어든 무소속 강구휘, 장경환 후보의 파괴력도 만만치 않았다. 당선권에서 이들 후보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을구가 텃밭인 김관용 후보는 같은 을구 출신인 장경환 후보의 선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갑구가 텃밭인 전병억 후보 역시 같은 갑구 출신의 강구휘 후보의 선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마치 미분법을 풀 듯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상황을 거친 후 결국 김관용 후보에게 승기를 안겨주었다.

개표 결과 김관용 후보는 4만 6,130표로 4만 4,469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를 1천 661표 차로 눌렀다. 개표가 진행된 1995년 6월 27일 늦은 밤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갑구 지역 개표가 진행된 올림픽 기념관에서는 전병억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개표 결과 3만 5,296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가 3만 2,539표를 얻은 김관용 후보를 2천 757표 차로 눌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을구에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1만 3,591표를 얻은 김관용 후보가 9천 173표를 얻은 전병억 후보를 4천 418표 차로 따돌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갑, 을구 합계 결과 김관용 후보는 전병억 후보를 1천 661표 차로 눌렀다.

이외에도 갑구 출신의 무소속 강구휘 후보는 15.08% (1만 9,805표)였고, 을구 출신의 무소속 장경환 후보는 11.73% (1만 5,404표), 무소속 강상수 후보 2천 891표, 무소속 경광수 후보는 2천 584표였다.

▷무적의 재선, 단독출마한 김관용 후보
초선 임기는 3년이었다. 제2대 구미시장 선거가 1998년 6월 4일로 다가오면서 1천6백여 차로 분루를 삼킨 전병억 후보의 재도전 의지는 가열되기 시작했다. 1995년 선거의 후유증을 다스리기 위해 붓글씨로 3년의 세월을 억눌려 지낸 그에게 3년의 세월이 흐른 구미의 정세는 상전벽해 돼 있었다.
결국, 주변의 간곡한 만류를 받아들인 전병억 회장이 재선 도전 의지를 뼈저린 가슴 속에 들여놓으면서 선거전은 김관용 후보의 단독 출마로 매듭됐다.

▷ 이강웅 후보와 2파전, 3선 고지 오른 김관용 후보
단독출마로 재선에 성공한 김관용 시장에게 세 번째 선거는 두 번째의 단독 출마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부터 김관용 후보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감사원 사무관 출신의 이규건 후보가 경선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었다. 경선 초반부터 과연 김관용 후보가 몇 %로 차로 이기느냐는 식의 결론이 예고된 선거였지만, 40대 초반이라는 패기와 참신함을 앞세운 이규건 후보의 도전 결기는 만만치 않았다.
박정희 체육관에서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체육회 사무실로 달려온 김관용 후보가 ‘몇 %로 차로 이겼는지“를 계산하는 등 과민반응을 보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김 후보가 이처럼 예민 반응을 보였던 것은 본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끄는 한국미래연합 이강웅 후보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본선에 오른 한나라당 김관용 후보는 고시 동기이면서 친구 간으로 포항 부시장을 지낸 한국미래연합 이강웅 후보, 민노당 황준영 후보 등과 자웅을 겨뤄야 했다.
2002년 6월 13일, 결과는 빗나가지 않았다.
김관용 후보는 66.4% (6만 6,059표)를 얻으면서 2만 1,691표로 21.8%를 얻는 데 그친 이강웅 후보를 여유 있게 물리쳤다. 3선 시장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민노당 황준영 후보는 11.79%ㅍ (1만 1,736표)였다.

▷치열했던 4대 민선시장 선거전
제4대 구미시장 선거전이 있던 2006년의 구미 정가는 급변기였다. 2005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면서 엘지 기업의 파주 이전설 등으로 곤욕을 치르던 김관용 시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구미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잖아도 경상북도 도지사를 겨냥하고 있던 김 시장으로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정장식 포항시장, 김광원 국회의원이라는 거물의 벽을 넘어야 할 판국이었다.
김관용 당시 시장의 대응은 남달랐다. 2005년 11월 7일, 김 시장은 정부와 여당의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 반발한 구미시민과 도민들을 공단운동장에 집결, 대규모 궐기 대회를 개최하는 대단함을 보였다.
이처럼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 발표로 구미 정국이 요동을 치던 2006년 5월 31일의 제4대 구미시장 선거는 과열전으로 치달았다. 남유진 전 국가청렴위원회 홍보협력국장, 윤영길 전 구미시의회 의장, 김진태 변호사, 김석호 전 경북도의회 의원,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등 5파전으로 전개된 한나라당 후보 경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경선 본선에서 남유진 현 시장은 김석호 전 도의원, 김진태 변호사, 윤영길 전 의장을 누르고 한나라당 후보에 지명됐다. 후보별 자성론도 적지 않았다. 구미시 역사상 최장수 의장을 지내면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윤영길 의장은 뒤늦게 경선에 뛰어들면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도출시키지 못한 데 대해 내내 아쉬워했다. 김성조 당시 국회의원과 김석호 전 도의원은 오랜 기간 동안 다져온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본선 결과는 남유진 후보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매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참배할 만큼 박정희 정신을 추앙하던 한나라당 남 후보는 75.89% (9만 8,758표)를 획득했다. 반면 무소속 채동익 후보 11.82% (1만 5,391표), 민노당 최근성 후보 10.19% (1만 3,265표), 무소속 신수식 후보는 2천 719표를 얻었다.

▷무경선 한나라당 남유진 후보, 김석호 후보 선전
2010년 6월 27일 실시한 제5대 구미시장 선거에서 남유진 시장은 경선 없는 지명을 통해 한나라당 후보의 명찰을 달았다.
하지만 쉽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지만, 남유진 후보는 갈수록 거세게 추격해 오는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이계에 등을 돌렸던 구미의 친박 민심은 선거를 앞두고 창당한 친박연합에 이유 없는 사랑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친박 정서가 군중 심리로 확산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남유진 후보에게 승기를 안겼다.

개표 결과 남유진 후보 53.09% (7만 1,719표), 친박연합 김석호 후보 33.51% (4만 5,263표), 무소속 구민회 후보는 13.39% (1만 8,091표)를 얻었다.
2010년 당시만 해도 보수의 아성인 구미에 민주당은 시장 후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입지가 약한 상태였다.

▷예상을 뒤엎은 50%대 당선, 남유진 시장의 입지 강화
3선을 겨냥한 남유진 시장은 새누리당 경선 당시부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초선 당시부터 줄기차게 도전장을 낸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과 재선 당시 출마를 결심했다가 뜻을 접은 이재웅 전 경상북도지사 비서실장에 이어 김용창 구미상의 회장이 출사표를 냈기 때문이었다.

경선 시기와 방법도 논쟁거리였다. 여기에다 세월호 참사까지 겹치면서 당초 경선 일정이 연기되었는가 하면 여론조사와 대의원 선거 방식으로부터 여론조사 방식으로의 경선 룰 변경은 극심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이재웅 후보에 이어 채동익 후보가 경선에 불참키로 하면서 경선은 남유진 시장과 김용창 상의회장 등 2파전 양상으로 모양새가 잡혔다.
하지만 김용창 후보가 8년 시장 관록의 남유진 후보의 벽을 뛰어넘기는 무리였다.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 결과 남유진 후보는 45.3%, 김용창 후보는 27.3%였다.

본선에서도 곳곳에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면서 선거전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 중심에 놓인 이슈가 이재웅 후보와 김석호 후보의 단일화 논의였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후보를 내고, 단일화 논의가 불발되면서 남 시장의 당선은 예고된 결과로 굳어졌다.
선거 결과 남유진 시장은 40%대 후반에 머물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전체 투표수 16만 250명 중 과반을 웃도는 52.59% (8만 2,905표)를 얻었다.
반면 이재웅 후보 17.45% (2만 7,250표), 김석호 후보 15.91%(2만 5,904표), 구민회 후보는 14.01%(2만 2,111표)를 얻었다.

◇보수 정치의 위기
2014년까지만 해도 민주당 구미시장 후보는 득표율이 14%에 머물 만큼 입지가 빈약했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를 1년 앞둔 2017년으로 들어서면서 민주당에 우호적인 여론은 가파르게 확산했다.
장기간에 걸친 구미공단 침체와 KTX 유치 실패,‘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불러들인 결과였다.

3선 연임 제한 규정으로 남유진 시장이 출마할 수 없게 되면서 2018년 구미시장 선거는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모두 4대1의 경쟁률을 마크할 만큼 경선은 치열했다.

민주당 후보로는 장세용 현 시장과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김철호 전 형곡새마을금고 이사장, 박종석 아성요양병원 상임이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또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 김석호 전 경북도의회 의원, 허복 전 구미시의회 의장, 김봉재 강남병원 원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1차 경선 결과 1,2위에 오른 이양호 후보와 허복 후보의 2차 결선 경선에서는 이 후보가 승리했다. 1,2차 여론조사 경선을 할 만큼 이상한 방식을 도입한 경선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렇치 않아도 악화한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우려했던 대로 2018년 6월 13일 실시한 구미시장 선거는 이변이었다. 보수의 심장인 구미에 진보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가 당선의 깃발을 꽂았기 때문이었다. 경북도 23개 기초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선거에서 후보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 40.79%,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 38.69%,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 7.54%, 무소속 김봉재 후보 9.44%, 무소속 박창욱 후보 3.52%였다.

또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압도하면서 3석의 시의원 비례대표 중 2석이 민주당에 배분됐다. 이에 힘입어 민주당은 6명 정원의 도의원 중 3명, 23명 정원의 시의원 중 10명을 당선시켰다.

◇4년 만에 뒤바뀐 민심, 구미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한 보수 정치
하지만 진보 정치의 생명력은 4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소통 부재와 민주당 시의원의 갑질 의정, 민심을 둘로 나눈 분열과 갈등의 시정 운영, 인사정책의 난맥상, KTX유치 등 현안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기대에 대한 실망감은 민심 이반으로 표출됐다.

2022년 6월 1일, ‘4년 만에 뒤바뀐 민심’은 냉혹했다. 국민의힘 김장호 후보는 70.29%의 득표율을 보이면서 26.91%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낸 민주당 장세용 후보를 누르고 구미 정치사의 중심에 입성했다.
또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를 통해 72.27%의 지지율을 획득한 국민의힘은 24.72%의 민주당을 압도하며 3명의 비례대표 중 2명을 당선시켰는가 하면, 도의원 8명 전원 당선과 함께 25명의 시의원 중 20명을 당선시키면서 압승했다.

풀뿌리의 민심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력을 발휘한다.
격앙한 풀뿌리 민심으로부터 향후 4년의 과제를 부여받은 국민의힘, 김장호 시장 당선인과 8명의 도의원, 20명의 시의원 당선자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풀뿌리의 민심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민선 8기 구미 시대를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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