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김영민 k문화타임즈 공동 고문]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나 마음 상태가 전날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종종 느낀다. 특히 가끔은 ‘몸이나 마음이 멍하거나 힘이 빠진 상태’ 즉 멍청하게 앉아서 허탈해진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한다. 특히나 어제 밤을 새워가면서 개표 결과를 아침까지 지켜보다가 어찔해지는 마음과 더불어 내 마음과는 너무나 다른 전체의 선택에 또 한번 ‘허탈해짐’을 막을 수가 없다.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역진적 선별복지의 정치 경제적 쾌적’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성공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신광영 윤흥식 엮음, 후마니타스, 2022.5)에서 지적들과 학자들의 분석을 통해 최소한의 답을 찾아보고자한다. 그들의 정확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한 분석에 고개를 꺼득이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대한민국의 ‘승자독식 문화’와 ‘(경제 활동에서 규제나 제약을 없애는)무제한의 자유경쟁’이 근원이라는 기조를 바이블처럼 따라가는 모습들에서 오는 안타까움을 감출수 없다.
사회복지, 노동문제, 대한민국의 경제문제를 다루거나 사회학의 전문가들이 진단한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람시1) 가 ‘인터레그넘 inrernernum 이라고 말한 상황, 즉 대중이 자신이 믿었던 오래된 이념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들이 더 이상 믿지 않아 낡은 것으로 사라지지만 새로운 곳은 태어날 수 없는 위기가 도래하는 것’이라는 해석과 그대로 일치함을 느낀다. ‘낡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는 시기의 해결책이 옛것의 복원으로는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연결하자면 ‘(지금) 표플리즘이 발현되는 계기는 현 체제에 대한 다수의 불만이 정치 경제적 대 전환을 압박하면서 기존 질서가 흔들렸기 때문이면서도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기대나 방향이 보이지 않음’이라고 유추해석을 해도 되지 않을까?
내용이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느낌이지만 한국의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반발이 조금은 엉뚱하게 비쳤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즉 대중이 가진 위기 즉 기존 질서 자체에 대한 흔들림(집값의 폭등이나 끝이 없는 양극화, 돈을 가진 정치인들의 명백한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표를 찍는 모습, 심지어 자녀는 외국의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지역의 어머니이라하고 몇백억의 재산을 가진 이가 직원의 실수라며 허위로 국민을 기망하고, 친척의 유명회사 직원 채용에 관여했다고 했다가 공개석상에서 아니라 하는 모습 등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인간에게 50%에 가까운 유권자가 표를 주었다는 것은 기존의 도덕적 판단이나 최소한의 덕목에서조차 기댈 곳이 없다는 모습을 이번 바로 보여주고 있다)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한국의 15% 가까이가 중증 울분 상태에 직면해 있고 54% 가까이가 중증 울분과 만성 울분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음(유명순, 2018 재인용 P189 )을 지적한 내용에서 최소한 이번의 선거 결과에 대한 모습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후보로 나왔던 자마다, 당선한 사람들 모두가, 더 잘사는 지역에 대한 희망 고문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일제에 의한 조국의 찬탈과 한국동란을 겪은 세계 최빈국에서 이제 세계에서 6위의 경제 규모를 갖게 된 사실은 학자마다 조금은 다르다 하더라도 그간 한국의 성장은 ‘압축적 경제성장’이었고 이는 인간중심의 성장이라기보다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성장이었다는 사실과 결과적으로 이러한 성장은 ‘자살 친화적 성장’(김상명, 최상명 2014, 재인용. p182)으로 ‘압축적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인식이나 하고 이런 공약들을 했는지 묻고싶다.
복지에서도 ‘압축적 복지’이라는 용어를 쓸 수밖에 없고 (실제로 1977년 공공사회 복지 지출이 GDP에서 1%를 넘어섰고 그 후 1882년 2%대, 1998년 4, 8%로 성장했으며 2018년 이후 새 배로 증가 11%가 되었으나 OECD 평균 21%의 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복지의 책임자가 기득권의 성장이나 혜택에 대해서 세금을 깎아준다느니, 유보하는 것 등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로 보호와 성장의 열매를 공유하겠다고 하면서도 소수의, 약한, 그리고 늙고, 외로운 이방인에게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만드는 현실에 대한 답변이 없음이 또 한 번 허탈하게 만든다.
말을 맺으면서 강조하고 싶다.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어가서 경제적인 양극화를 조장(?)하는 듯한 정부에 지방일꾼으로 뽑힌 자들 얼마가 복지에 관한 그의 정책을 심어왔는지? 그거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온 내용에서 이름을 바꾸거나 형식을 변경하면서 얼버무릴 것이 훤하게 보이는 상황이다. 계속 발전 성장하겠단다. 계속 자살하는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지방의 수장에게 주어진바 가장 큰 것은 외형을 살려 잘 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철저하게 부수고 새롭게 만든 일이 얼마나 비정상적이며 여기에서 소외된 자들이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목민관이 되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2022.6.2>
1) 이탈리아 왕국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정치인. 이론 측면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구분하여 '문화 패권'(Egemonia culturale)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자로서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에 대항하였다. 주요 저서로 《옥중수고 (Quaderni del carcere)》가 있다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 (La crisi consiste appunto nel fatto che il vecchio muore e il nuovo non può nascere: in questo interregno si verificano i fenomeni morbosi più svari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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