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 김영민 전 (전 대구YMCA 사무총장, 문화타임즈 고문] 시인은 ‘봄꽃이 불붙는 듯하다’ 했는데 봄이 여름으로 들어서는 지금, 도심은 거리마다 각종의 현란한 문구와 색깔 이름과 사진 그리고 성향을 말하는 푸르고 붉고, 초록색, 흰색이며 갖가지 원색의 깃발과 걸개가 나부낀다. 오늘부터 지방선거의 운동이 시작되는 날이다. 눈이 휑휑 돌아갈 판이다. 모두가 우리 지역을 최고로 만들고, 모두가 최고의 혜택을 주겠다고 써 붙여 놓았는데 과연 어는 것이 암까마귀인지 어느 것 숫 것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4년마다 돌아오는 그들의 말 잔치대로 라면 지금 여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믿는 사람이 바보인지? 과연 모두가 잘사는 지역이 되도록 하겠다는데 정말 잘사는 동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듯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일이 아닌가 한다.
존 캠프너가 ‘성숙하고 부강한 나라의 비밀’이라는 부재에 『독일은 왜 잘하는가』(박세연 역, 열린책들. 22.4)가 그에 대한 답을 주는 감이 있다. 저자는 독일에 대해서는 지독한 거부감을 가진 영국(혹자는 독일이 영국을 이기는 것은 페널티킥으로 축구 시합에 승리하는 것이 전부라는 폄하를 농담인 듯 던진다)의 학자이며 기자가 독일에 대한 모습을 그려내면서 하나씩 본 받아야 할 모습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이번에 출사표를 던진 모든 분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말을 계속한다.
첫째는 (독일 부강의 바닥에는) 잘못에 대해 진솔한 반성과 실천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독일 사회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드리워진 속죄의 세월을 보냈다. 독일인의 높은 도덕적 경각심은 지금도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P39) 고 하여 역사극복, 과거청산, 기억의 문화라고 표현되는 집단적 죄책감(kollektivschuld)을 제1일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나치항복 40주년을 기념하는 날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은 독일인의 최종 분석을 하면서 ‘대통령은 (독일의 경우 의례적인 자리이지만) 국가의 나침판을 지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우리 지역으로 환치시켜보자. 과거의 정권이나 기득권자에게 빌붙었던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최소한 구미의 도덕적 나침판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면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지도자로 만들 수 없다. 과거의 잔재를 그대로 안고 가서는 독일처럼 강대한 국가(지역)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도자가 그런 도덕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모습의 하나로 ‘오늘날 독일학교는 <시민의 용기(Zivilcourage)>라는 개념을 가르치고 있고 그것은 법은 중요하다는 것과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학생들은 마땅히 <아니오>라고 외치고 용감하게 저항하도록 권장되고 있다.’(p82)라고 연결하면서 지도자의 도덕적 흠결이나 문제에 대해 시민들은 어릴 때부터 ‘Nein’을 몸으로 익혀온 것이 바로 독일의 지도자를 세운 근간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메르켈이 몸소 보여주었듯이 신뢰와 신중함은 오늘날 독일 사회를 지배하는 특성’이라는 점이다. (메르켈 수상 시절)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살펴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이는 세종실록에서 나타난 데로 세제의 변화 등 제도에 관한 시행에 신하와 더불어 다시 묻고 시범지역을 실시하여 답을 얻고 난 다음 실행 여부를 결정했다는 내용과 맥이 통한다) 동료와 측근들에게 자주 문자를 보내고 회의실에서 자주 회의한다는, 그래서 휴대폰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2015년 독일어 사전 랑엔사이트(Langenscheidt)에는 올해의 단어로 메르켈른merkein을 선정’했는데 이 뜻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다, 망설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p96).
이렇게 보면 취임 한 달을 앞두고 역사에 대한 저항(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연쇄적인 관저 이동, 국방부, 합참 이전 등)이나 그런 행위를 한 대통령이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 장관이 취임 하루 만에 전반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몇 년 전의 내용을 보복하듯 엎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강국으로써 우리 모습은 요원함을 다시 느낀다. (더구나 전날 국회 연설 즉 국민들에게 전하는 대통령의 약속에서 협치를 그리 강조했음에도)
셋째 지적이다. ‘독일의 정치 시스템은 반대파를 놀라울 정도로 흡수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는 것이다(p116). 녹색당과 독일 대안당, 좌파 연합, 기민당, 근본주의. 가릴 것 없이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기민당 정부에서 녹색당 인사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조화와 연결을 그들의 정치적 강점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정책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대안이 되고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가 오늘의 독일을 하나로 묶어 최강국 독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연립, 연방, 통합이 과연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지방의 역할로는 불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이나 하나가 되는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행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졸리(soli, Solitarity Tax 동일 독일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부자들에게 매기는 세금) 세를 도입할 수 있는가? (p135) 빈부의 심한 격차, 바로 그 현장인 동서독이 하나 되고 부자와 빈자들이 하나되는 공동체를 위한 노력, 그것이 화합이고 통합의 공동체의 방식이었다. 비록 2010년부터는 상위 10%에 대하여 부과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수천억의 급여를 받는 관료와 그달 사글세를 내지 못해서 최후의 방안을 결심하는 일이 다반사인 지금 여기에서 이런 제도를 제도화하는, 조금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입장에서 파격의 행보가 가능한 사람, 그가 바로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나면 지방정부의 수장이 결정되고 한 나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가지게 된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서 과연 이 새 정부가 성숙하고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사람, 즉 우리가 보아야 할 대상은 과연 그러한지 재삼 생각하게 한다.
2022.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