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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획/ 민주당 이재명 후보 탄생시킨 경북 안동 ‘진보 성향일까, 보수성향일까’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1.11.20 16:30 수정 2021.11.20 16:45

유교문화의 중심지 안동
진보성향 4선 1명, 무소속 5명 배출
역대 정치 ⇥ 진보성향 박해충 의원 4선 기록, 비서 출신 오경의 의원 당선 ⇥ 김대진 의원은 김관용 전 경북지사 장인 ⇥권정달 의원, 보안대장 출신으로 3선 의원 ⇥박해충 의원 9번 도전 4번 당선, 살아있는 전설 ⇥ 권정달 의원 5번 도전 3번 당선, 보안대장 출신 ⇥박해충 의원 비서 오경의 의원은 체육계 인사 ⇥김광림 의원 친박 무소속으로 정계 입문, 새누리당 입당
지방자치⇥

↑↑ 1961년 안동시/ 사진 =안동시 제공


[K문화타임즈= 김경홍기자]  기획>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서 경북 안동 정치사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미 출신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경북에서 두 번째 대선 후보(이명박 대통령 일본 출생. 박근혜 대통령 대구 출생)의 타이틀을 거머쥔 이재명 후보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보수 성향인 데 비해 진보 성향이라는 점이 관전포인트이다.
사실상, 유교문화의 중심지인 안동을 보수 성향으로 보는 시각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역대 총선을 통해 배출한 안동의 정치사를 훑어보면 이러한 등식이 통하지 않는다. 역대 총선에서 안동은 진보 성향 2명과 5명의 무소속을 배출한 현대 정치사를 써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영세 시장은 2020년 10월 14일 민주당에 입당했으며, 김호석 의회 의장도 무소속이다.

1964년생인 이재명 후보는 1986년 7월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데 이어 1989년부터 민변에 참여한다. 이 당시 안동에서는 통합민주당 오경의 의원과 민주당 류돈우 의원이 정치인으로 활약했으며, 이 후보의 경기도 성남시장 시절에는 친박 무소속 후보로 당선돼 후일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광림 의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동은 유교 문화의 중심지면서 동시에 34년 동안의 세도정치를 통해 조선 후기 정치사를 좌지우지한 또 다른 정치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한국유교의 본향이라고 불리는 안동에는 전통문화 유산이 풍부하다. 풍천면 마애리에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있고, 국내 최고의 목조건물인 봉정사 등 곳곳에 신라시대 사찰들이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하회마을은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예산에 등재됐다.

정치사적으로 많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01년 순조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지를 받든 안동김씨 김조순이 자신의 딸을 왕비로 들이고, 일족인 안동김씨를 요직에 앉히면서 34년간 세도정치 시대가 전개됐다. 왕의 신임을 얻은 외척이 강력한 정치적 권세를 잡고 나라를 다스리던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안동시 인구는 23만 2,300명대였다. 이후 이촌 향도 현상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출됐다. 1990년 11만 6천932명, 통합시를 이룬 1995년에는 19만 4천210명으로 인구가 증가했고, 1년 후인 1996년에 19만 2천472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농촌 지역인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지속적인 인구유출로 20008년 16만 7천명 대에서 2016년에 들어서면서 16만 8천명 대로 인구가 소폭 증가했다.
2008년 6월 8일은 안동으로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도청 이전추진위가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를 경북도청 이전지로 최종 선정 발표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2008년 16만 7천300명에서 신도청 개청과 본격 입주가 시작되기 전 해인 2015년 말 기준 16만 9천221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시민적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2019년 4월 현재 16만 737명으로 3년 동안 8천여 명의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도청 이전이 안동일대로 확정될 당시인 2008년과 비교해도 6천500여 명이 이곳을 떠났다. 결국 안동 역시 한때 경북도를 호령하던 김천, 상주와 함께 인구 급감이라는 시세 위축 앞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안동이 배출한 국회의원은 모두 14명이다. 안동김씨와 안동권씨가 아니면 안동에서 정치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던 속설처럼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출신의 정치인들은 무수히 많다. 박씨 가문의 입지도 단단하다.

역대선거 결과 안동에서는 보수 성향의 김익기 의원과 진보 성향의 박해충 의원 4선, 보수 성향의 권정달,권오을, 김광림 의원 3선,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던 김시현 류돈우 의원은 재선이었다
김길홍, 정현모, 권오훈, 김대진, 오경의 의원은 초선이다.

야당 출신의 박해충 의원은 9번 선거에 나서 4승 5패, 권정달 의원은 5번 선거에 나서 3승 2패의 기록을 남겼다. 권중순 후보는 3번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박해충 의원
2005년 생을 마감했다.
1980년 5.17 내란 직후 모처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정치규제를 당했다가 4년 후 해금됐다.
1987년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때 바로 따라가지 않았고 신한민주당에 남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정계를 은퇴했다.
아홉 번 출마해 네 번 당선될 만큼 안동정치사의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계가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야당 중진의원으로서 박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익기 의원
여당 출신 4선 의원이다. 니혼대학 법과대를 졸업하고, 민정당 중앙위 부의장, 민정당 중앙 상무위원을 지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했다. 1995년 세상을 마감했다.

▶권정달 의원

육사를 졸업한 후 보안대장을 지낸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한국자총 총재, 새천년 민주당과 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냈다.

▶오경의 의원

1970년대 신민당 박해충 국회의원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KBS에서 씨름 경기를 해설하기도 했다. 3번 도전 끝에 당선되면서 초선의원이 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안동시 선거구에 출마해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권중동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권중동 후보의 돈 봉투 발송사고가 호재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한국마사회 회장에 임명됐고, 1996년까지 직을 이어갔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씨름연맹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김대진 의원
김관용 전 경북지사의 장인이다.1 995년 세상을 떠났다. 박해충 의원과 대결에서 1승 1패를 기록했다.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안동 교육감, 안동여자중학교 교장 등 교육계에 몸을 담다가 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서 정계에 입문했다.
경북도지부 사무국장, 민주공화당 경북제11지구당위원장을 지냈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

▶초대(제헌)-1948년 5월 31일- 1950년 5월 30일, 임기 2년
1945년 해방이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한 초대 안동지역 선거에는 안동군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갑구에서는 대한독립촉성회 김익기 후보가 36.38%를 득표하면서 27.02%를 획득한 권중순 후보를 누르면서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무소속 정현모 후보가 55.87%를 득표하면서 36.77%를 얻은 대한독립촉성회 유태하 후보를 누르고 당성됐다.

▶제2대 - 1950년 5월 31일- 1954년 5월 30일 임기 4년
6.25전쟁이 발발했지만, 전쟁 이전에 선거를 마친 2대 의회는 4년 임기를 모두 마쳤다.
갑구에서는 모두 10명의 후보가 나서 치열한 선거가 전개됐다. 민주국민당 김시현 후보가 23.6%를 얻으면서 20.95%를 얻은 무소속 권중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독로당 김익기 후보가 43.13%를 얻으면서 31.15%를 얻은 같은 당 유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3대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임기 4년
갑구에서는 국민회 권오종 후보가 29.47%를 얻으면서 세 번에 걸쳐 도전장을 내민 자유당 권중순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거뒀다. 391표 차였다.
을구에서는 무소속 김익기 후보가 40.82%를 얻으면서 27.52%를 얻은 무소속 박해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후일 신민당 상도동계 중량의원으로서 박정희 대통령과도 막역한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박해충 의원의 정치사에 처음으로 명함을 건넨 선거였다.


▶제4대 -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임기 4년
갑구에서는 민주당 권오종 후보가 39.98%를 얻으면서 25%의 자유한 유시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자유당 김익기 후보가 42.40%를 얻으면서 39.97%를 얻은 민주당 박해충 후보를 217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제5대 -참의원 선거 1960년 7월 29일 1961년 5월 16일 임기 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1961년 5월 26일 - 1963년 12월 16일
갑구에서는 안동 국회의원 역사상 최대인 11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무소속 김시현 후보가 10%대인 16.18%를 얻고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민주당 박해충 후보가 39.12%를 얻으면서 차점자인 기타단체 유림 후보가 얻은 15.50%보다 2배 이상 앞서면서 당선됐다.

▶제6대 -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임기 4년
6대에는 안동에서 1명의 의원만을 배출했다.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5대 선거에서 당선돼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 박해충 후보는 24.27%의 득표율에 머물면서 44.09%를 얻은 공화당 권오훈 후보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제7대-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임기 4년
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김관용 전 경북지사의 장애이기도 한 공화당 김대진 후보가 52.84%를 얻으면서 36.88%의 득표율에 그친 민주당 박해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8대- 1971년 7월 1일- 1972년 10월 17일 임기 4년, 비상 국무회의 1972년 10월 18일- 1973년 3월 11일
8대 선거는 7대 선거의 서력 전이었다. 패자는 승자, 승자는 패자가 되어야 했다. 민주당 박해충 후보가 47.79%를 얻으면서 28.68%를 얻은 공화당 김대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9대 -1973년 3월 12일- 1979년 3월 11일 임기 6년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공화당과 신민당 등 정치대결과 안동과 의성 간의 지역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의성 출신인 공화당 김상연 후보는 28.43%, 안동 출신의 신민당 박해충 후보는 27.84%를 획득했다. 1천16표로 차로 1,2위가 가려지면서 동반 당선됐다.
▶제10대 - 1979년 3월 12일-1980년 10월 27일 임기 6년, 입법회의(1980년 10월 26일 - 1981년 4월 10일)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9대와 동일하게 공화당과 신민당 등 정치대결과 안동과 의성 간의 지역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의성출신인 공화당 김상연 후보는 30.41%, 안동출신의 신민당 박해충 후보는 27.58%를 획득했다.
험지인 안동에서 야당 출신 박해충 후보는 9번의 도전 끝에 4번 당선되면서 4선 의원의 기록을 남겼다.
13대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15.10%를 얻으면서 3위에 머물러야 했다.

▶제11대 - 1981년 4월 11일- 1985.4월 10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안동 출신의 민정당 권정달 후보가 58.42%로 1위, 의성 출신의 한국 국민당 김영생 후보가 13.16%로 2위를 차지하면서 동반당선됐다.

▶제12대-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안동 출신의 권정달 후보가 59.53%, 의성 출신의 한국국민당 김영생 후보가 15.40%를 얻으면서 동반 당선됐다.

▶제13대
- 1988년 4월 26일 - 1988년 5월 30일 -1992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안동군에서 각각 1명 등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안동시에서는 통합민주당 오경의 후보가 44.41%, 민정당 권중동 후보가 41.73%를 얻었다. 오 후보가 당선됐다.
안동군에서는 민정당 류돈우 후보가 51.66%를 얻으면서 22.73%를 획득한 신민주 공화당 김시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무소속 박해충 후보는 5선에 도전했으나 15.10%로 3위에 머물렀다.

▶제14대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안동군에서 각각 1명 등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안동시에는 무소속 김길홍 후보가 39.59%를 얻으면서 29.08%를 얻은 무소속 권중동 후보를 누루고 당선됐다.
안동군에서는 민자당 류돈우 후보가 52.83%를 얻으면서 36.67%를 얻은 통일국민당 김시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15대-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하면서 갑구, 을구에서 각각 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갑구에서는 통합민주당 권오을 후보가 39.71%를 획득하면서 33.10%를 얻은 신한국당 김길호 후보를 눌렀다.
을구에서는 무소속 권정달 후보가 51.13%를 얻으면서 31.56%를 얻은 신한국당 류돈우 후보를 눌렀다.
▶제16대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임기 4년
16대부터 20대까지는 안동시에서 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한나라당 권오을 후보가 46.21%를 얻으면서 38.01%를 얻는 데 그친 새천년 민주당 권정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17대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임기 4년
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한나라당 권오을 후보가 61.5%를 얻고 당선됐다. 차점자는 열린우리당 김승년 후보는 28.32%였다.

▶제18대 -2008년 5월30일 -2012년 5월29일 임기 4년
친이계에 의한 친박계 공천학살이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아서 돌아오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친박계가 선전했다.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광림 후보가 49.68%를 얻으면서 34.67%를 얻은 한나라당 김용범 후보를 눌렀다.

▶제19대-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임기 4년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광림 후보가 82.99%를 얻으면서 17.5%에 머문 민주 통합당 이성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20대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임기 4년
19대와 동일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광림 후보가 68.66%를 얻으면서 16.04%를 얻는데 그친 민주통합당 이성노 후보를 압도했다.
▶제21대- 2020년 5월 30일- 2024년 5월 29일 임기 4년
미래통합당 이형걸 후보가 47.5%를 얻고 32.29%를 얻은 이삼걸 후보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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