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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노을/ 사진 = 미래창조과학부 카페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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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발행인 김경홍] “늙어서 찾아오는 질병은 혈기 왕성한 젊었을 때 불러들인 것이며, 집안이 쇠한 후 재앙은 모두 번성했을 때 저지른 것들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한창 득의했을 때 매사를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
조선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홍자성(홍응명 洪應明, 환초도인還初道人)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은 소위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교훈을 세상에 타이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씨의 경기도 관광공사 내정을 둘러싼 보은 인사 논란에 이어 이천 쿠팡 화재로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을 벌일 당시 황 씨와 창원까지 내려가 떡볶이 먹방을 찍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다른 잡음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황 씨가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자를 자진사퇴하면서 보은인사 논란은 침묵 무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불거지는 ‘떡볶이 먹방 촬영’을 둘러싼 또 다른 이슈 선점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그날 밤 경남 일정을 포기하고 새벽에 도착해서 현장 일정을 충분히 소화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라면서 “국민 안전 문제를 왜곡하고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도는 또 홈페이지에 올린 '이천 쿠팡 화재 사건 당일 이재명 지사는 재난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 지사는 현장 방문, 영상 촬영 등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화재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행정지원 등 조치사항을 꼼꼼히 챙겼다"면서 "화재 발생 즉시 현장에 반드시 도지사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고 억측입니다. 화재 사고를 정치 공격의 소재로 삼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떡볶이 먹방 영상 촬영과 쿠팡 이천 화재와 관련 ‘그날 밤 경남 일정을 포기하고 새벽에 도착해서 현장 일정을 충분히 소화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라는 해명이 씁쓸한 것은 잘잘못의 문제를 떠나‘코로나19 사태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힘없고 약한 서민들의 정서와 이반되는 행동’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장과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로 송두환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내정한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안에서 고 후보자에 대해 “금융·경제정책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서 강한 추진력과 부드럽고 온화한 리더십을 보유한 인물”, 또 송 후보자에 대해서는“40년에 걸친 법조인 생활하는 동안 인권보장에 관한 확고한 신념으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힘써왔다”고 했다.
그러나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서민이 후보자 내정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은 까닭은 서민과 약자를 서럽게 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이 내정한 고승범, 송두환 후보자 모두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한 ‘강남 부자’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배우자와 공동으로 보유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182.95㎡, 55여 평)의 가격(공시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 28억 9,500만 원에서 올해는 34억 600만 원으로 5억 원 넘게 올랐다. 1년 동안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현재 재산은 모두 56억 9,258만 2,000원이다.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지난해 말 기준 신고액 50억 2,536만 9,000원보다 6억 7000만 원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역시 본인 명의로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27억 5,100만 원의 아파트 한 채를 신고했다. 현재 재산을 32억 9,070만 원으로 신고한 송 후보자는 경기도 남양주 등지에 골프 회원권과 리조트 회원권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이나 무주택자인 빈곤층들로서는 쳐다보기조차 힘든 유토피아의 세상풍경이다. 이들은 마음 속 깊이 밀물져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문 대통령에 대한 배심감으로 몇 날 며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을까.
정치인은 잘잘못을 재판하는 법관의 시각이나 가치관으로만 자신을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잘잘못보다 더 중요한 잣대는 서민이나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의 정서에 얼마나 부합하는 행위를 하는지를 놓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정치인의 삶이 누리는 명예와는 별개로 때로는 고단하고 외로운 까닭은 이처럼 복잡다단한 이유 때문이다.
서민과 약자 우선의 정치적 철학을 지향하겠다는 이재명 지사는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빈곤보다 더 서러운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는 서민의 심정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행위의 잘잘못이 없으니, 하등 문제가 없다는 식의 사고는 법관에게나 맞는 말이다. 쿠팡 화재와 관련 약자와 함께 너무나도 인간적인 지도자의 길을 외도 없이 가겠다고 한 이 지사에게 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채근담의 교훈이 초가을 새벽노을 속에 더욱 영롱하다.
잘못이 없다지만 잘못됐다고 서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약자를 위한 지도자의 용기이다. 그래야만 더욱 약자로부터 추앙받는 지도자로서 거듭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