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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광풍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은 결국 ‘연령에 따른 정치사상의 변화시기’를 잘 타고있는, 그러나 역차별을 감각적으로 처리하는 정치인이고 세월(분노)의 흐름을 잘 탄 절묘한 행운아지만 과연 그가 가진 철학과 사유나 그의 정직성,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결론 지을 수 있을 듯합니다. / 사진 = 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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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 그것도 한날 두 면에 걸쳐 같은 사람에 대한 논평 세 개가 실려있습니다. 그만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입니다. (2021년 6월 8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과연 돌풍이라 해도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의 선출에 나타난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는 편집자의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철옹성과 같았던 보수 야당의 연륜, 경륜, 국회의원 당선 횟수 등을 일순간에 넘어뜨린 모습에 대해 놀라움과 더불어 전 국민의 바람과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좌표와 같은 존재라 싶습니다. 그 이유나 내용을 세분의 리더들이 분명하게 일러줍니다.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노인 보수’, ‘청년 진보’라는 지금까지의 형식 ‘진보 노인’과 ‘청년 보수’라는 시대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손호철(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교수는 < ……. 2030=‘리버럴’, 5060=‘냉전적 보수’라는 공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청년세대=진보, 노인세대=보수는 .....‘진보 50대’, 예비‘진보 노인’이 생겨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 주목할 것은 20대 남성들의 보수화이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충격적인 ‘이준석 돌풍’은 돌출적 사건이 아니라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조국 사태’ 등 연이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공정파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 우호적’이라는 인식이 ‘청년 남성 보수’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의 나이에 의해 많이 좌우되었던 우리나라의 정치사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지적합니다.
두 번째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의 [세상읽기] 의 내용입니다. ‘이준석은 남성도, 청년도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역차별의 감각을 ‘보편적으로’ 조직하는 정치인이다>라고 규정합니다. 즉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역차별의 감각은 불붙기 쉽다. ‘빽 없는 사람만 손해 본다, 나도 힘든데 왜 저들을 배려해야 하나.’ 이제 위 상황에 ‘조국 사태’와 코로나 19 경제위기를 대입해보라. 이준석이 여기에 올라타 ‘역차별의 정치’를 시작했다. 할당제는 불쏘시개가 됐다. 위험하다. 함께 누려야 할 권리 대신 남이 가져간 가상의 파이가 공론장을 장악한다.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는 동료 시민을 향한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 역차별의 정치가 우려된다면 이준석이 아니라 그가 선 자리를 봐야 한다. ...... 평등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거나 우대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약자가 되는 구조를 바꾸자는 이념이다. ......페미니즘과 노동과 생태의 지평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여는 일이 긴급한 과제>임을 강조하면서 이준석 돌풍(?)에 대한 역차별을 정치하는 사람으로 그를 규정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준석 현상’과 ‘낡은 이준석’입니다. 경향신문 토요판 팀 김민아 선임기자는 [김민아 칼럼]에서 <.....2019년 이준석이 펴낸 대담집 제목은 「공정한 경쟁」이다......‘능력주의’에 근거한 ‘공정한 경쟁’을 역설한다.......“실력으로 과학고를 갔으며” “국가장학금으로 하버드를 다녔”다는 것이다. ....중학교를 서울 목동에서......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졌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 급우들끼리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같은 해(1985년)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목동 수준의 교육환경을 누린 이는 소수다. 오로지 “실력”으로 과학고에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픽션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현실적(논픽션)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공정에 대한 마이클 샌델의 물음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선택받은 자들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울러 <이준석은 어릴 때 싱가포르에서 산 경험이 있다. 하버드대 진학은 그 시절 닦은 영어 실력과 무관할까. 이준석은 대학생 때 유승민 의원실 인턴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 전 의원과 경북고·서울대 동문이다. 정치 입문 과정에 대해선 스스로 고백했다. “대선 주자(박근혜)의 호출을 받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고위 당직을 맡아 정치에 참여하는 기회는 흔히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앞으로 다시없을 파격적인 정치 입문 방식이다.”>며 아빠 찬스를 이용한 내용을 보아야 하며 그가 보통 청년은 아닌 특별한 기회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준석은.....합리주의자·실용주의자 이미지를 얻고자 한다. 그 연장 선상에서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한다……. 최근 추세를 보면 이 제도는 사실상 ‘남성 할당제’로 기능하고 있다……. 자신을 ‘보편적인 청년’의 대표자로 매김 한다. 그러나 보편적 청년 다수는 이준석처럼 살지 않는다. 수많은 청년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 평택항에서 사망한 이선호 씨가 그랬다. ...... CJ E&M PD이던 이한빛 씨...... 네이버·카카오 등 IT 대기업에서도 직장 갑질 등 ...... 이준석은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세대 내부의 계급 격차는 감추고 젠더 문제는 부풀린다. .....‘이준석 현상’은 낡은 정치, 늙은 정치에 대한 분노가 빚어낸 ‘문제적 사건’이다>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분노가 폭발하는 지점에 서 있었던 절묘한 행운아’이지만 과연 ‘분노의 에너지를 변화와 혁신으로 승화시킬 만한 철학과 사유, 정직성과 일관성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함으로 이준석이라는 사건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준석 광풍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은 결국 ‘연령에 따른 정치사상의 변화시기’를 잘 타고있는, 그러나 역차별을 감각적으로 처리하는 정치인이고 세월(분노)의 흐름을 잘 탄 절묘한 행운아지만 과연 그가 가진 철학과 사유나 그의 정직성,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결론 지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분석과 달리 영남지역 70대 촌노의 눈으로 본 모습과 요청은 그의 모습은 ‘기존 사고에 대한 파괴’와 ‘혁신적임’ 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의 정체성이나 이름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조합이라 웃을 수 있지만, 청춘이기에 가능한 그의 도전을 피케티의 말을 빌려 청합니다.
“하이퍼 민주주의가 너무 지나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일 것이다. 참여적이고 지방 분권화된, 연방제 방식이면, 민주적이고 또 환경친화적이며 다양한 문화가 혼종되어 있으며 여성존중의 사상을 담은 사회주의 말이다”(피케티, 『사회주의 시급하다』, 은행나무, 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