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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열차/ 블로그, 송봉화의 우리문화 그 씨줄과 날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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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경홍 K문화타임즈 발행인] 산과 들에 풍성한 가을이 왔다지만 가을 같지가 않다. 세상에 먹을 것이 남아도는 산새들의 지저귐에는 힘이 넘쳐난다. 새가 살아가는 산은 풍성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거리는 가난하다. 청소 차량들이 아파트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어둠을 쓸어 담는다. 그 길을 따라 크고 작은 차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다.
2년 동안 곳곳에 버티고 앉아 삶의 멱박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위세 앞에 세상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불과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던 담배꽁초들이 발길에 차인다. 그 길을 따라 20대 아들이 새벽 열차에 올랐다. 논밭 멀리 기재를 켜는 새벽들이 움츠려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새벽 속으로 지워지는 아들을 그려내며 50대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문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말 못 할 사연을 품고 있다. 기쁨은 들려주고 싶지만 아픔은 속 안에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던가. 있는 모든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부부들도 요즘에는 말못할 사연을 한 가득 짊어지고 세상 길을 말없이 오른다.
아들이 떠난 책상 위에 메모지 한 장이 달랑 남겨있다.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해도 하는 일에 방해나 말아 주세요’
50대 아버지는 간밤에 취기를 몰아 늦게 현관문을 열었다. 20대의 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늦은 퇴근을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아파도 누울 수조차 없는 코로나 세태 속의 아버지가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결국 새벽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요즘에는 아르바이트 구하기조차 ‘ 하늘의 별 따기’라도 한다. 젊은이들 모두가 ‘하늘의 별을 따기’에 생사를 걸듯 하다보니, 하늘의 별들조차 씨가 마를 정도다.
물에 밥을 말어먹고 쫒기듯 나서는 현관문에는 구독 독촉장과 함께 아침신문이 너펄거리고 있다.
사회면에는 2015년 화천대유에 입사해 2021년 동안 233만 원-383만 원의 월급을 받은 입사 6년 차의 젊은이가 통상적인 퇴직금 2,500만 원보다 200배가량 많은 50억을 수령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처럼 이상한 퇴직금이 논란을 일으키자, 그 아버지는 ‘ 이익분배 기준을 설계해 준 게 바로 이재명 경기지사’라며, 남 탓을 하고 앉았다. 그 아버지가 바로 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 수석을 지낸 지금의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이다.
무면허 운전과 경찰관 폭행 등의 혐의를 받는 한 젊은이를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항의의 글도 실려있다. 진보성향의 대학생 단체는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무면허에 집행유예인 상황에서 왜 구속이 되지 않았느냐"며 "아빠 찬스가 아니면 무엇인가. 경찰은 즉각 구속하고 바르게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젊은이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조사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면서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당장 구속을 해야 마땅했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젊은이의 아버지가 발로 국민의힘 장재원 의원의 아들이다.
아빠 찬스로 구속을 면하고, 50억 원대의 퇴직금을 수령했다는 내용의 신문을 내팽개치고 아파트 골목을 빠져나온 50대 아버지가 다시 담배를 뽑아 물었다. ‘아빠 찬스’는 못 만들지언정 20대의 아들을 새벽 열차에 오르게 한 50대 아버지의 새벽길이 무겁다.
요즘에는 부쩍 세상이 이 땅의 수많은 50대 아버지들의 어깨를 눌러대고 있다. 그 아빠를 둔 가난한 20대의 아들들은 오늘도 없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세상 곳곳에서 몰아치는 한파와 맞서고 있다. 풍족하다지만 풍족하지 않은 세상, 가는 길이 창창하다지만 곳곳이 돌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20대의 아들들에게 마지막 남아 있는 희망마저 지워 없애는 짓이다.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순시대의 백성들은 임금의 이름을 몰랐다고들 한다. 걱정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임금의 이름을 알아야 할 까닭이 없었다.
공정한 세상에는 공정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국민 없을 정도이다. 공정한 세상, 바른 세상이라는 얘기도 산비탈에 돌투성이처럼 입에서 입으로 회자하고 있다.
‘아빠 찬스‘를 만들 수 없는 50대 아버지와 지워지는 희망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아빠 찬스 없는 ’20대의 아들들.
‘아빠 찬스’는 못 만들지언정...‘ 메모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새벽 열차에 오른 20대 아들을 바라보는 50대 아버지의 마음이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