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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주 4.3 연작 서사시 연재 2/ 미워할지라도 사랑하라

서일주 기자 입력 2021.06.12 15:15 수정 2021.06.13 01:27

시인 소설가 / 김경홍

↑↑ 한라산/ 사진 = 사람사는 세상 캡처





제1부



입산과 떠도는 가족들



1948년 일본에서 돌아온 남편은 청보리가 봄기운을 재촉하던 1948년 4월
골목길을 걸어 들이닥치는 군홧발 소리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했다.
결혼 1년 만의 이별이었다.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간 시부모가 돌팔매질에 쓰러지던 1949년,어린 딸이 울어대던 그해 겨울 제주 여성은 남편을 쫓는 토벌군인과 살림을 꾸렸고, 성씨가 다른 아들을 낳아야 했다.





섬 이야기•1
- 1948년 4월



열여덟 꽃다운 시절 만난 것은 섬이었다
수평선 너머 조각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리움은
노을이 내려앉는 해변 길 따라
늦은 밤, 파도에 휘말려 돌아왔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닭이 회를 치면 섬은 바다 위에 길을 만들고
해변 마을은 길을 따라 노를 저었다
세월을 거슬러오르면 밀물에 말려오는 이별의 사연들
외로운 포구 돌아드는 어머니가 눈시울을 붉히고
툇마루에 기대선 앉은 아버지는 담뱃대에 불을 댕겼다

열여덟 꽃다운 시절, 배운 것은 해녀의 노래였다
부르면 부를수록 서러운 눈물
헤어짐이 우리의 뜻일 수 없는 섬에서는
만남 또한 우리의 뜻일 수 없었다

일본군대가 총구 겨누던 포구 돌아서면
주정 공장 공터였다
봄이 되자 몰려드는 군홧발 소리
수평선 넘어 군함이 포구로 선수를 돌렸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숨비소리 여울지던 해변 길 따라 총성이 울렸다

수평선에 걸려있던 조각배는 오간 데 없었다
열여덟 꽃다운 시절은
눈물이었다



섬 이야기•2
-옛날이야기



열여덟 꽃다운 시절
길을 잃었다
바다에 길은 내던 마을은
한라산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우리 할머니
물마루를 베개 삼아 살라고 했다
아들을 데려가고 아들의 아들을 데려갔지만
착한 우리 할머니
바다를 미워하면 지옥엘 간다고 했다


열여덟 꽃다운 시절
바다에서 절망을 배웠다
날이가고 해가 바뀌어도 온다는 그리움은
수평 너머 닻줄에 묶였을까
할머니의 기다림이 턱을 괴고 앉은 물마루에
바작바작 타드는 그리움

물마루 넘어온다는 그리움을 기다려 무엇하리
화롯가 하룻밤의 설화처럼 자고 나면
허망한 옛날이야기
수평선 넘나들어 말려오는 총소리
마을은 산속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다



한라산•1
-산이 된 당신


바닷길은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해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섬이
돌아앉아 바라보는 산은
사랑하는 당신이었다

보면 볼수록 그리운 곳
한라산

그리워 살 수 없고
그리움을 버리고도 살 수 없는
열여덟 꽃다운 시절
산길마저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길을 내는
멧새들이 부러운 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계속>



◇시인 김경홍

1984년 백록문학상 (시 부문) 당선
1994년 계간 문예지 자유문학 신인상(시 부문) 당선
1994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필명 김군산) 당선
한미 대표 시인선집 작품 발표
한국청년대상 본상 수상(언론 부문)
문화타임즈 대표• 발행인
시집
<사계의 바다>, <인동꽃 반지>, <그리운 것들은 길 위에서 더욱 그립다>, <사랑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더라>. <미워할지라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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