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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머니의 가슴으로 사는 삶, 우리의 정치인들은?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2.11.13 23:55 수정 2022.11.14 00:00



↑↑ 황적산 가을 [사진 출처 = 카페 7477동호회]


[새벽칼럼=발행인 김경홍] 오늘도 세상과 만나는 정치인들, 그들은 징기즈칸의 어머니 호에륜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희생을 가르치려 했던 어머니의 가슴으로 살고 있을까.

한동안 묻어놓은 고서를 넘긴다.
“아군을 적군으로 만들면 자리가 위태롭고, 아군의 세상에 안주하면 간신히 자리를 지키며,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면 더 넓은 세상을 향해간다.”는 문구가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빈 가슴에 쌓이는 11월의 둘째 주 주말이다.
고서를 덮고 간만에 산을 탔다. 구미 시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온다. 어제 저녁 어머니와 손을 다소곳이 잡고 멀어지던 앳된 동심이 문득 떠오른다.
그 아름다운 세상의 한쪽에서 ‘죽이느니, 살리느니’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하산할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그 작은 세상 속에서 삶들은 규정과 원칙을 만든다. 법을 만들고 죄와 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순간이다. 존재 혹은 가치의 영원함은 생명일 뿐이다.

구미 시내가 아주 작게 내려다보이는 산정을 걷는다. 세월을 훑고 간 시대의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치 녹슨 파편처럼.
그 속에서 역사서에 나오는 신라와 고려, 몽골, 조선의 세월을 읽어낸다. 들여다보니 수억 년, 수천 년도 아닌 순간의 세월이다. 그 짧은 세월 속에서 살생과 용서, 관용의 가치들에게 영원한 진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문득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이 읽힌다. 800여 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한 그는 18세에 동갑내기 친구인 볼테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주둔지를 기습한 300여 명의 메르킷 부족의 포로로 잡혀갔다. 얼마 후 메르킷 부족을 무찌른 칭기즈칸은 아내를 되찾았지만 이미 그녀의 몸속은 적의 피가 흐르는 만삭이었다. 분노와 증오를 다스릴 수가 없던 칭기즈칸이 칼을 빼 들었다.

그때 어머니 호에륜이 타일렀다.
“아내와 적군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얻겠느냐?. 세상을 얻으려면 세상을 덮을 마음부터 가꿔라.”
칭기즈칸은 빼어 든 칼을 들여놓았다.
적은 내 안에 있는 법이다.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칭기즈칸은 더 큰 것을 얻었다. 그 세상이 바로 당시로선 전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라시아 대륙이었다.

올해 상반기 정치 일정은 대선과 지방선거였다. 그 과정 속에서 각 캠프는 본의 아니게 수많은 적군을 만들어 냈다. 지금도 곳곳에서 싸울질이 한창이다.

더 넓은 세상을 얻으려면 그 주변에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에륜’이 있어야 하고, 없으면 찾아야 한다.
아군을 적군으로 만들기 시작하면 운신할 자리를 잃게 되고, 아군의 세상에 안주하면 간신히 자신의 세상을 꾸려가게 되며, 적군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더 넓은 세상을 얻게 되는 법이다.
이게 아름다운 정치, 득도의 법칙이다.

11월의 세월이 기우는 둘째 주 주말, 오후 들면서 가을 냄새가 가슴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다시 셔터를 눌렀다. 구미 시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온다. 그 안에서 ‘죽이느니, 살리느니’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그 식솔인 필자 또한 부끄럽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 됨이다.
정치인들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적을 치기보다 품어 안아야 한다. 그래야 오순도순 걸어가는 숲길이 된다. 숲길이 바로 우리의 정치인들이 닦아내야 할 아름다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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