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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새로운 구미 지방자치시대] 강한 것은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없어지고, 부드러움은 늘 남아 있는 법

김미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2.06.25 22:35 수정 2022.06.25 22:37


[김경홍 칼럼 = k문화타임즈 발행인․시인]
은나라 상용이라는 노인이 병으로 눕자, 노자가 제자들에게 들려줄 교훈을 일러달라고 부탁했다.
상용은 입을 벌리며 “ 내 혀가 남아 있는가?”라고 물었다. 노자는 “있다”고 답했다.
다시 입을 벌린 상용은 “내 입 안에 이가 남아 있는가?”라고 물었다.
노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답했다.

상용이 말했다.
“알겠는가. 강한 것은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없어지고, 부드러움은 늘 남아 있는 것이라네”

맹사성의 겸손지덕, 겸양지덕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열아홉에 장원급제하고, 스무 살의 나이에 파주군수가 돼 자만심에 넘쳤던 맹사성은 어느 날 자문을 구하기 위해 선승을 찾았다.

선승은 녹차나 한잔하라면서 찻잔에 물이 넘치도록 따랐다. 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자, 맹사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찻잔에 물이 넘치질 않소”
선승이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건 알면서 거만함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꾸지람을 듣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맹사성은 방을 빠져나가려다가 문틀에 이마를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
그러자 선승이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혀 다칠 일은 없었을 것이외다”

이후 맹사성은 겸양지덕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면서 세상이 존중하는 인품으로 거듭났다.

선거에 나선 정치인 대부분은 상대를 만날 때 90도로 허리를 숙여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겸손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겸허함이 없이 자신을 낮춤은 위선이다.
진정한 겸손은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최고라는 선민의식은 특히 겸손을 저해하는 최대의 악이다.

칸트의 말처럼 모든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다. 자치 일꾼으로 선출되었다고 해서 건설 노동자를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자치 분야에서는 문외한 이겠으나 벽돌을 쌓거나 미장하는 일을 건설노동자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는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미화원을 무시할 일이 아니다.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청소 요령과 이른 새벽이면 여지없이 거리로 나서는 성실성을 따라할 수 있겠는가.

자치 일꾼이나 지역 원로가 되려면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하고, 누림보다 상대의 아픔을 가슴에 담아두려는 사랑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은 겸양지덕, 겸손지덕에서 출발한다.

자치 일꾼이나 원로들이 이러한 철학을 실행하려고 한다면 지역은 통합될 것이고, 통합의 힘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는 해답을 안겨줄 것이다.
권력은 봄날의 잔설과 같고, 봄날의 꽃과 같은 법이다. 때가 되면 떠나고, 또 때가 되면 만나게 되는 것이 권력이다.

하지만 거만함과 누림으로 자기 삶이 점철된다면 떠난 권력을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는 법이며, 결국 세상에 혼자 남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다.

7월 1일 새로운 구미자치 시대가 출범한다. 겸손지덕한 정치력, 누림보다 베푸는 자치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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