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획

시사 칼럼/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김미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1.12.07 21:46 수정 2021.12.10 15:51




[시사 칼럼 = 김영민 구미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
리처드 윌리엄스가 쓴 책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합니다. 정확하게는 《Why Cities Look the Way They Do》(김수연 역, 현암사, 2021,11)이니 역자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지요.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발을 들여놓은지 1년이 가까워집니다만 아직도 짙은 안개속에서 길을 찾는 듯한 형태이고 보니 도시니, 재생이니 이름 붙은 책을 모으기가 끝이 없습니다. 벌써 서고의 한 칸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분량(그렇지만 다 읽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살핀 것이 대부분이지만)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이 마지막 투자 기회 (『대한민국 마지막 투자처 도시재생』 양팔석, 윤석환 저, 라온북 , 2020년 01월)이라는, 도시재생이 돈 벌 기회에 대한 투자처라는 오해를 가져오기에 충분한 책이 있느냐면 『空き不動産 問題から考える地方都市 再生』 (健二 편 武者 忠彦 편,ナカニシヤ出版, 2021년 03월)라는 제목의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에서 보여주는 내용 (비어있는 부동산에서 생각하는 지방 도시재생 문제? 억지로 이리 꿰맞추어 보았습니다) 등 우리 지역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내용으로 도시재생이 이제는 이 시대의 결정적인 화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렇다면 구미라는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소위 어떤 모습의 도시라고 규정할 수 있는 상태에서 구미는 무슨 말로 이런 모습에 답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도시는 한 설계자의 외관적인 설계자의 산물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여러 ‘프로세서 process’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그 여러 산물을 자본, 권력, 성적 욕망, 노동, 전쟁, 문화의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 전 세계적인 도시의 모습들을 사례로 들어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설계자가 처음 계획한 데로 의도한 데로 만들어지지 않고 ‘프로세서가 도시의 얼굴을 만든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구미의 얼굴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장세용 구미시장은 지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미를 경제도시에 이어 문화도시로 도약’(2021.10, 27, 대경일보)이라는 제하에 ‘미래 100년을 향한 문화도시 준비’ ‘역사문화 재조명을 통한 구미학 창안’이라는 말로써 구미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낡아 다시 쓰기 어려운 공단 이미지를 빨리 그리고 적절하게 변화시켜 문화와 혁신의 빛이 어우러지는 도시로의 변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판단이 가능하기 끼지 구미가 이룩했던 구미 도시의 프로세서(과정)는 어떤 경로로 점철되었고 따라서 시장이 제시한 내용이 과연 적절했는지를 더듬어 볼 필요가 충분합니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본에 의해 구미는 조그만 시골에서 그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박정히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로 구미시청 앞의 10차선 대로를 비롯하여 구미의 저녁 시간 음식점 풍경은 직장에서 입던 작업복으로 나타날 만큼 돈도 흔하고 일자리도 넘쳐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구미는 공단도시, 공업도시이고 주변의 작은 시군의 인구를 흡수하기 시작함으로 도시의 문제는 ‘문제점으로 등장’했지요. 그래서인지 구미에 땅을 가졌던-비록 그곳이 농사도 짓기 힘든 돌 작 밭이라 해도-사람들이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 역시 구미의 모습이었고 나아가 구미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전국에 단위별로 최고를 맞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축의 이동은 공단을 지배하던 국가의 대규모 공장들이 수도권으로 이전되고 협력업체니, 노동자들이 공장을 따라 빠져나감으로 몇 년 새 구미를 정체 도시로 만들었고(아니 쇠퇴?)......., 마땅한 직장을 찾아 하루에 10만명이나 대구 등지에서 출퇴근하던 모습들이 이제는 매일 구미의 청년 학생들이 대구에서 수업을 위해 다녀야 하는 도시로 전락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을 찾아 넓은 곳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곳으로 구미는 퇴락의 길을 걷고 있게 됩니다. 노동문제가 우리 구미에서 중심화두가 된 모습이 없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요 만 이제는 시청광장에 울리는 확성기 소리는 자기 이익을 위한 집단들의 패싸움으로 변하고(전쟁) 나아가야 할 구미의 방향은 오로지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경제, 오로지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한 아귀다툼 식의 모습으로 표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잠깐만 돌아보아도 보이는 구미의 얼굴이 삭막한 도시 얼굴, 권력에 의한 좌우되던 공단, 언제까지 번영할 것 같은 착각의 도시, 노동의 문제가 전쟁으로밖에 나타날 수 없는 기업과의 매우 어려운 투쟁이 지금의 구미의 얼굴이라면 이제라도 살고 싶고, 살기 좋은 구미를 만드는 도시 얼굴로 ‘문화’라는 화두를 내 건 시장의 견해와 노력은 탁월하다 할 것입니다.

역사문화도 좋습니다. 젊은이의 잔치마당이면 더욱 좋습니다. 나아가 구미 시민들이 한 번이라도 음악에 취하고 그림에 홀리며 삶을 표현하는 몸짓에 흠뻑 빠지는 문화의 도시만이 구미의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일하는 1년에 얻은 결론입니다.

“무엇이 구미의 얼굴을 만드는가?” 대답은 ‘문화도시’였습니다.








저작권자 K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