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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구미 출신 이인선 당선인 울렸던 홍준표와 주호영, 정치세계에 영원한 적은 없었다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l.net 기자 입력 2022.06.06 01:03 수정 2022.06.11 17:59

7년간의 정치적 시련을 안긴 홍준표 당선인과 주호영 의원
시련 극복과 화해의 원천은 조부의 항일 독립투사 정신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진 1일 밤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리를 함께한 이인선 당선인과 홍준표 당선인, 주호영 의원.(앞줄 왼쪽부터 이철우 경북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 이인선 국회의원 당선인, 이 당선인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함께한 주호영 의원) [사진 제공= 국민의힘 대구시당]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진 1일 밤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정치적 동지로 만난 이인선 국회의원 후보와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정되자 함께 팔을 들어 올렸다. 또 이 후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주호영 전 원내대표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한때 홍 당선인과 주 의원은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만난 이 당선인에게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한 정치적 앙숙이었다.
과연, 정치세계에 영원한 적은 없는 것일까.

퇴임을 한 달 앞둔 2015년 2월, 구미를 찾은 이인선 당시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사랑,구미사랑의 뜻을 계승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사실상 구미 국회의원 출마를 천명한 직후 구미시 형곡동에 선거사무실을 임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2015년 3월 돌연, 임대한 사무실을 해약하고 대구 중구 남구로 방향을 틀었다. 그 무렵 구미 정치계에는 백승주 당시 국방차관의 전략공천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결국 현실이 됐다. 이인선 전 경북지사는 사실상, 당시 새누리당 구미 전략 공천의 희생양이었다.

이 당선인의 정치 인생은 말 그대로 역경이었다.
2016년 대구 수성구 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으나, 이 당선인은 전략공천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행한 TK 정치 거물 주호영에게 패했다. 이후에도 정치 인생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2020년 총선에서 이 당선인은 대구 수성을 미래통합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또 자신을 낙천한 공천심사위원회에 반발해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 당선인을 만나야 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이 당선인은 그해 TBC 대구 수성을 후보자 토론회에서 홍 당선인을 겨냥해“ 이 이인선이가 그렇게 만만해서 대구로 왔냐?”고 따졌고, 홍 당선인은 “미안하지만...”이라며, 맞받았다. 결국 그 해 선거에서도 이 당선인은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 6•1 재보궐 선거 대구 수성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79.78%의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되자, 자신의 정치적 시련기를 회고하듯 “설사 인생에 한 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딛고 일어서는 패자 부활전이 가능한 대한민국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며,'철의 여인’으로서의 의지를 밝혔다.

그렇다면 7년에 걸친 정치적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 당선인의 조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항일 독립투사였다. 가정보다 나라를 위해 청춘을 투신하면서 가계는 기울었다. 그 때문에 당시 이 부지사의 가족은 외조모가 거처하고 있던 인동동에서 혈연의 끈을 잡고 구미시로 이주했다. 이후 가족들은 고아읍과 도개면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잠시 선산읍 이문리에 머물 즈음 이 부지사가 출생했다.
이처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헌신한 조부의 혈통은 유년의 뼈대를 탄탄하게 했다. 또 그 힘은 정치인 이인선을 탄생시키는 원천이자, 한때의 적을 끌어안는 화해의 힘이 됐다고, 주변 인물들은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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