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비판과 격려를 해 주시는 네티즌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얼 되찾기의 가치관을 지향하는 k문화타임즈가‘우리의 얼 되찾기의 운동’에 나섭니다.
그 일환으로 김영민 필진이‘구미 지역 동네의 옛 이름을 찾아서’, 송기남 필진이 우리나라 항일 운동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 제주항일 운동사’를 각각 연재합니다. [편집자]
◇김영민 k문화타임즈 고문 겸 논설위원장대표적인 시민운동가입니다.
구미 YMCA, 대구 YMCA 사무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잊혀진 구미의 지명 살리기와 관련한 칼럼을 연재합니다.
◇송기남 K문화타임즈 논설위원제주 4•3 민주 항쟁과 제주 생태(자연, 인문) 분야에서 오랜 활동을 해 오신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 활동가입니다.
제주항일 운동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구미 지역 동네의 옛 이름을 찾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구미를 느끼고 살아왔는지 각 동의 이름을 중심으로 그 유래와 내용을 통해서 살펴본다.
<필자>
우리 동네 이야기 7. 송정동
◇동명 유래
옛날에는 울창한 숲속에 정자가 있다고 해서 송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자의 이름은 미상으로 구전으로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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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구미면 일대의 지도 [사진제공 = 필자] |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5년 선조 38년 가선대부 유성태공이 전라도 완산(지금의 전주)에서 구미 사창(현 형곡동) 가람골에 피난을 와 수년 동안 거주하다가 이곳 송정으로 이주해 살면서 5개의 자연부락으로 마을이 형성됐으나, 시 승격과 더불어 도시개발로 옛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이 변모해 지금은 구미의 행정(시청, 교육청 등), 금융, 의료, 문화(구미문화예술회관) 등 모든 면에서 구미의 중심이 되고 있다
구미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시가지로써 구미읍으로 승격하게 되면서 원평동, 형곡동과 함께 송정동으로 승격 했다. 처음으로 동 지역이 된 특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시가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곳이다. 함께 승격한 형곡동이 교육과 주거를 담당했으며, 원평동이 상업과 교통을 담당했다면 송정동은 행정과 복지 및 문화를 담당했다.
지금도 이 세 지역을 묶어 구미시의 원도심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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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문화예술회관 야경 [사진제공 =필자] |
◇자연부락*송정(松亭):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정자가 있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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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송정동 [사진제공 =필자] |
*속리(俗離),: 지금의 구미종합문화예술회관의 자리에 옛‘속리원(俗離院)’이 있었다 고 하여 일대를‘속리’라고 부른다
*백산(栢山, 그리고. ‘백산’은 마을 뒷산에 잣나무가 울창하다고 하여 불렸으나 지금 은 아파트가 건립되어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부뫼(푸뫼, 扶山, 豊厓): ‘부뫼’ 혹은 ‘푸뫼: 부산(扶山)을 이르는 말이고, 마을 앞에 풍덕지(豊德池)라는 넓은 연못이 있어 마을의 풍년을 가져다준다는 길조인 풍덕조(豊德鳥)가 살았다고 하여 ‘풍애’라고도 불린다.
◇동의 형성
*1914년 7월 15일: 구미면의 백산(柏山), 송정(松亭) 부산(扶山)동, 원평(元坪) 동 일부를 합하여 송정동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선산군 구미읍 송정동이 됨.
*1977년 2월 15일: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 원평지소 관할 송정동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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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도심의 최고 힐링 코스 [사진제공 =필자] |
*1978년 2월 15일: 구미시 승격과 더불어 송정동 설치.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구미시 송정동이 됨.
*2020년 7월 20일: 선주원남동에서 관할하던 송정동(법정동) 구역을 일괄 편입.
◇특기해야 할 자연환경:
*수도산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로 광평동, 형곡동, 원평 들과 접한다. 예전에는 마을 앞에 풍덕지가 있어 관개용수로 사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