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남을 위한 감동과 희생의 정치’
그게 4선으로 가는 길목
세상이 변해도 경제도 정치
정치력이 강해야 지역경제도‘실크로드’
[김천, 구미, 상주 지역구 3선 이상]
김천→ 백남억·박정수 지역구 4선, 임인배·이철우
현 송언석 의원 지역구 3선
구미→김봉환·박재홍·김윤환·김성조·김태환 지역구 3선
현 구자근 의원 지역구 재선, 강명구 의원 지역구 초선
상주→이상배 지역구 3선
현 임이자 지역구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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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헌의회 본회의장. [사진=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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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 2028년 4월 12일 실시하는 제23대 구미 국회의원 선거가 1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당별 경선 일정을 고려하면 14개월 남짓이다.
제헌의회가 닻을 달고 출항한 1948년부터 2026년까지 78년간 스물두 번의 총선을 치르는 짧지 않은 세월, 과연 구미정치는 인접 도시인 상주와 김천 정치의 벽을 넘어섰을까.
1960년대 당시만 해도 상주군(지금의 상주시)과 김천시는 선산군(지금의 구미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 도시였다. 1965년 당시 상주군은 26만 5천 명으로 경북 도내 최대의 시세를 자랑했고, 1949년 대구시와 함께 시로 승격할 당시 19만 명이던 김천시 역시 1960년대 들어서면서 인구 20만 명 시대를 열면서 상주와 자웅을 겨뤘다.
반면 1960년 당시 인구 5만 명에 불과하던 선산군은 1995년 구미시와 통합 직전만 해도 6만여 명에 이르는 소규모 지역이었다. 1995년 구미시와 통합하면서 인구 31만 명으로 김천과 상주시를 추월한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격세지감이다. 더군다나 2026년 현재 구미시가 40만 명 시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반면 김천시 13만 명, 상주시가 8만 명으로 주저앉았으니, ‘난다 긴다’하는 점술가도 미래의 흥망성쇄를 점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굴곡의 세월을 걸어오는 동안에도 김천정치는 지역구 4선 의원을 배출한 반면 구미와 상주정치는 4선의 벽 앞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제6대(1963년)부터 제9대(1973년)까지 4선의 벽을 넘어선 김천의 백남억은 제10대(1979년) 선거에서 정치 신예 박정수에게 패하면서 5선의 벽 앞에서 좌절했으나, 민주공화당 의장을 지내면서 김천의 존재감을 알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정수도 제10대와 제11대, 제13대와 14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지역구 4선 의원을 자리를 굳혔다. 그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면서 김천 정치의 자존을 지켰다.
1996년 제15대 선거에서 검찰 수사관 출신이 법무부 장관 출신 후보(정해창)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화제를 모은 임인배는 16대, 17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3선에 안착했으나, 제18대(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낙천하면서 이철우에게 바통을 넘겼다.
제18대에 등원해 제19대(2012년)와 20대(2016년) 선거에 내리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반열에 오른 이철우는 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중도하차했다. 뒤를 이은 이가 지금의 송언석 의원이다. 제20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21대와 22대에 내리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됐다.
1960년대 당시 도내에서 김천과 자웅을 겨루던 상주는 김천과 중선거구제로 묶이면서 총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으나, 지역구 4선 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제15대(1996년)부터 17대(2008년)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 내리 당선돼 상주정치 최초이자, 마지막 지역구 3선 의원으로 기록된 이상배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경북도지사, 서울특별시장, 총무처장관 등 정부 요직을 거친 그는 상주정치의 전설로 통한다. 지금의 임이자 의원은 3선으로 불리지만, 지역구는 재선이다.
그렇다면 구미정치는 어땠나.
제6대(1963년)부터 제8대(1971년) 군위와 선산군을 아우르는 중선거구제에서 당선된 김봉환은 구미 최초 지역구 3선 의원이다.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제11대(1981년·구미시, 군위군, 칠곡군, 선산군), 제12대 (1985년·구미 군위 칠곡 선산), 제13대 (1988년,구미시)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지역구 3선의 반열에 오른 박재홍은 제15대(1996년) 선거에서 4선에 도전했으나, 박세직에 패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제13대(1988년·군위 선산) 선거를 통해 등원해 제14대(1992년 군위 선산), 제15대(1996년, 구미시을)에 당선되면서 3선 의원으로 거듭난 김윤환은 제16대 (2000년, 구미시)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낙천한 후 창당한 민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김성조에게 패하면서 4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3명의 대통령을 만든 킹메이커의 별칭을 얻은 김윤환은 구미정치의 전설로 통한다.
김성조 역시 제16대(2000년, 구미시), 제17대(2004년, 구미시갑), 제18대(2008년,구미시갑)선거에서 당선돼 3선으로 자리를 굳혔으나, 제19대(2012년, 구미시갑)선거를 앞두고 치른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정치 신예 심학봉에게 패하면서 4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태환 또한 4선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제17대(2004년, 구미시을), 제18대(2008년, 구미시을), 제19대(2012년, 구미시을)에 내리 당선되면서 3선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제20대(2016년, 구미시을)선거에서 낙천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장석춘에게 패했다.
이처럼 구미정치는 김봉환을 필두고 박재홍, 김윤환, 김성조, 김태환 등 5명의 정치인이 지역구 4선에 도전했으나, 벽을 넘지 못했다.
국회라는 세계에선 3선 의원에게 상임위원장, 4선 이상의 의원에게 의장단 선거에 출마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관례다.
그렇다면 구미는 제23대(2028년)를 넘어 제24대(2032년) 선거에는 4선 의원 시대를 개막할 수 있을까.
3선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뛰는 구자근 의원과 재선을 향해 뛰는 강명구 의원이 늘 겸손지덕의 가치관과 “일로서 승부수를 두겠다”는 일념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다. 시민에게 늘 겸손하고 발바닥이 부르틀 만큼 뛰어야 감동의 정치사를 쓸 수 있지 않겠나.
지역 정치사에 거목으로 이름을 올린 김천의 백남억과 박정수, 임인배, 구미의 박재홍, 김윤환, 김성조, 김윤환 모두 불어오는 정치신예의 벽 앞에서 더 큰 꿈을 놓쳐야 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지역주민의 마음’에 있다. 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감동의 정치, 자신을 버리는 희생의 정치로 두들겨야 지역주민의 닫힌 마음과 만날 수 있다. 이게 동서고금의 정치사에 기록된 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