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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벽칼럼] 대한민국 그리고 국가산단의 구미는 당당한가, 트럼프 미국과 한국인 노동자의 쇠고랑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09.08 14:58 수정 2025.09.08 22:31


↑↑ [사진 작가 조경래.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8=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시인 소설가) 김경홍]
트럼프를 ’망나니‘라고 삿대를 들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조선의 사대주의적 충성심(?)도 보여선 안 된다. 수치스럽지 않나. 트럼프와 졸부 대한민국, 피장파장이어서 그렇다.

최근 미국 이민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을 체포했다. 파장이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우리들만의 아우성이다. 심지어 일부 한국 방송이 ‘쇠고랑을 찬 한국인’을 방영하자, 국민들은 광분 상태다. ‘망나니 트럼프’라는 증오 섞인 외침도 들려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당당한가.

지난 7월 광주전남 이주노동자네트워크에 따르면 나주에 있는 벽돌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스리랑카 국적 A(31) 씨는 7월 초 한국인 노동자들로부터 화물에 결박되고 지게차로 들어 올려지는 수모를 당했다. 반복적인 괴롭힘에 시달린 그는 노동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단체는 ‘제 집안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 비극적 영상은 전 세계로 타전됐다. 이를 지켜본 세계인, 스리랑카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했겠나. 스리랑카 엘리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제2의 트럼프라며, 울분을 토하진 않았겠나.

지난 6월과 7월에는 경기도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공장 화재로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7월에는 또 구미시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당시 ‘산업재해 예방 및 산업안전보건 외국인근로자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한 구미시의회 신용하 의원은 자성의 의미를 담은 발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구미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불볕더위의 현장에서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에게 산업안전 규정을 온전하게 챙기지 못한 환경 때문으로 유추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사회약자에 대해서 잊고 지냈던 집행기관과 저와 같은 정치인의 책임도 있습니다. 산업재해 예방과 산업안전보건 사업을 보다 빨리 이행했더라면 최소한 불행한 일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입니다. 조례개정을 통해 비극적인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023년 10월에는 꿈을이루는사람들 대표 진오스님이 구미 외국인노동자 쉼터의 실상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비가 새는 누더기 외벽, 한기가 몰려들고, 숨이 막힐 지경인 그 방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새우잠을 자고 있습니다. 지옥 같아요”
이곳을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연간 수천 명이다. 그래서 진오스님이 구미시에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안 된다’ 였다.
진오스님의 눈물을 닦아 준 이가 바로 구미시의회 김정도 의원이었다. 다음 해 본예산을 통해 어려움을 해소했으니 말이다.
미국에도 신용하·김정도 의원같은 인본지향의 정치인이 없는 게 아니다. 

퍼스트 아메리카를 지향하는 트럼프 미국을 마냥 탓해서도 안 된다. 우리도 ‘퍼스트 구미 혹은 경북’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공개 입찰을 통해 외부 업체가 경북이나 구미 관내의 사업에 낙찰되면 지자체는 지역업체나 지역 물품을 반강제적으로 권고하고 있질 않나. ‘퍼스트 경북, 퍼스트 구미’는 지자체의 철칙이기도 하다. 시민이 원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핵심은, 퍼스트 아메리카 혹은 외국인 (한국인) 노동자의 체포에 있는 게 아니다. 원칙과 법대로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치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이 곧 정의인 트럼프의 잘못된 정치 철학, 인본주의 상실의 몰인간적 정치 행태가 문제다. 그래서 그는 사전적 의미로 ‘말과 행동을 함부로 막돼먹게 하는 사람’인 망나리라고, 칭해야 옳을 듯싶다.

노자는 “훌륭한 군주는 백성을 통치할 때 겸손한 자세로 백성 앞에 자기를 낮추고 백성을 지도할 때는 뒤로 한 발 물러나 군주인 척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재능이나 공적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지도자가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 주은래가 통치 시절 신념으로 삼던 내용이다. 그래서 그는 사후에도 경애敬愛하는 지도자로 평가된다.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의 생애는 짧다. 철학, 인본주주의 가치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갖춘 졸부는 한계를 뛰어넘는 법이다. ‘인디언을 몰살한 무자비한 미국, 뉘우침이 없는 미국, 트럼프 미국’으로 간다면 졸부인 미국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철학이 부재한 탓이다.

그래서 미래의 중국이 무섭다. 오천 년 역사의 인간력을 갖춘 철학의 나라 중국, 그 터전 위에 새로운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중국, 따라서 우리도 ‘미국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 체포’에 마냥 흥분해선 안 된다.

늘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우리는 졸부의 삶이 아닌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
그래야만 ‘힘이 정의’로 규정된 ‘망나니의 세상’을 극복해 ‘인본주의가 정의’로 정착하는 세상을, 탄탄한 철학적 기본 위에서 부국 자본주의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그게 미국을 이기는 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가 ‘화물에 결박되고 지게차로 들어 올려지는 수모의 비극’이 재현된다면 우리는 ‘트럼프의 스몰 아미리카’라는 오명을 극복할 수 없다. 극복해야만 미래의 최대 강국, 중국과 맞설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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