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 43년 세월, 역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들은 늘 구미경제의 명암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 왔다. 흥할 때 조용해 눈시울을 적셨고, 쇠할 때는 팔을 걷어붙였다.
내륙 최대공단인 구미공단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인 1973년 총면적이 10.4㎢에 이르는 제1단지가 완공되면서 낙동강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섬유와 가정용 전자제품이 주력이었다.
이어 2.3㎢의 2단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1983년 완공됐다. 이곳에는 주로 반도체 산업과 전자산업이 입주했다.
4.8㎢의 면적을 기반으로 완공된 제3단지에 첨단산업이 들어선 것은 1992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말 조성이 완료된 제4단지에는 디지털 산업단지 및 외국인 기업 전용단지, 부품소재 전용단지가 들어섰다. 이어 2009년 5단지 조성이 확정됐다.
구미공단은 특히 2005년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300억 불의 수출을 달성, 전국 수출액의 11%, 무역수지 흑자액의 84%를 차지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수도권 규제 완화 한파가 불어닥치기 시작하면서 구미공단은 홍역을 앓기 시작했고, 결국 2009년부터 거세게 불어닥친 수도권 규제 완화 바람은 대기업 이탈을 가속화시키면서 구미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명암 속에서도 50여 년 역사의 구미공단이 신화를 쓰기까지는 별을 벗 삼아 출퇴근을 하면서 비지땀을 쏟은 근로자와 기업가의 숨은 노력이 그 밑거름이 됐다.
특히 구미공단을 존재케 한 주역으로서 구미상공회의소의 노력은 빼놓을 수 없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구미공단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하면서 급변하는 외풍에 맞서 지혜와 슬기를 발휘한 구미상공회의소의 중심에는 역시 역대 회장단들이 있었다.
지난 1981년 8월 이근배 초대회장으로부터 시작한 구미상공회의소는 윤재호 회장이 제15대에 이어 2024년 3월 제16대 회장에 연임하기까지 12명의 회장들이 산업전선의 선두에서 구미공단을 지키고, 또 발전시키는 역사적인 임무에 충실했다.
|
|
|
↑↑ 구미상공회의소 [사진 제공= 구미상공회의소]
|
|
▶초대·2·3대 이근배 회장구미상공회의소 출범과 함께 회장에 취임한 이근배 회장은 1981년 8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초대-2,3대 회장을 맡았다. 역대 최장수 회장인 이 회장은 1942년 일본동경 조도전 고등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부사전토공업주식회사 기술부 근무를 시작으로 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52년부터 1953년까지 조선 기업주식회사 상무 취재역 공장장을 역임한 이 회장은 1965년 신광기업주식회사 전무이사를 역임한 후인 1965년 11월 구미공단 역사의 핵심인 오리온 전기 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정부는 그의 업적을 평가해 1973년 8월 통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이회장이 역임한 81년부터 88년까지의 세월은 격변기였다. 이회장이 7년여 년에 걸쳐 회장직을 마무리한 것은 88년 12월 15일이었고, 그 뒤를 이어 구미출신 재력가였던 문대식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제3·4대 문대식 회장1988년 12월 15일부터 1993년 8월까지 이근배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최장수 상공회장을 지낸 문대식 회장은 1960년 청구대학 3년을 수료하고 1978년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81년 민주평통자문회의 구미시협의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문회장은 상의회장에 앞서 7년 동안 부회장을 지낸 상의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1984년(주) 오성상호 신용금고 대표이사에 취임한 문 회장은 1991년에는 구미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상북도 체육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정부는 1985년 문회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안겨주었다.
1992년에는 제3단지가 완공되었고, 1993년부터 구미공단은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취임한 이가 바로 제5대 이기룡 회장이었다.
▶제5대 이기룡 회장1993년 8월 취임한 이기룡 회장은 1943년 욕지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방되던 1945년 체신사원 양성소 무선통신과(전문과정)를 졸업했다.
전문을 살려 체신부 중앙 접신국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 회장은 주경야독으로 1949년에는 국립체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1960년 통신장, 사무장을 지내기도 한 대한 해운공사를 사직한 이 회장은 같은 해 대검찰청 사무국 통신과장 직무대리, 1964년 통신과장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기업에서 2년 동안 근무한 이 회장은 1966년 7월 동방 성업주식회사 부장, 상무, 전무이사 등을 거쳐 1972년 고려전기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1984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경북경영자 협회 회장, 한국 전자 공업진흥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이기롱 회장의 뒤를 이은 이가 1996년 8월10일 취임한 제6대 이동춘 회장이었다.
▶제6대 이동춘 회장1999년 8월9일까지 3년 동안 상의회장을 지낸 이 회장은 경주고등학교에 이어 195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기업인이었다. 서울대 졸업 이듬해인 1958년 주식회사 동신양행에 입사한 이 회장은 동진공업사, 동아자전차를 거쳐 1969년 대명화공약품 상사를 경영했고, 1972년에는 대명산업사를 설립했다.
이 회장은 구미상공회의소와 인연이 남다르다. 1988년 구미상의 감사를 시작으로 부회장, 회장을 지냈으니 말이다. 경북경영자 협회 이사와 경북경영자 협회 부회장을 지낸 이 회장은 서울대학교 동창회 11,12,13대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합섬하면 박동식 회장, 박 회장하면 한국합섭회장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 기억에 생생한 제7대 박동식 회장은 1999년 8월9일 취임했다.
▶제7대 박동식 회장1980년 영남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박동식 회장은 1972년 이화견직 공장을 설립하면서 경영인의 길에 들어섰다. 1년 뒤인 1973년 이화섬유 주식회사를 설립한 박회장은 1981년 수출의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985년 2월 (주)이화상사를 건립했다. 한국합섭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7년 2월이었다.
설립 1년 만인 1988년 11월 수출의날 기념 1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박 회장은 1993년 7월 이화섬유 주식회사 설립, 1993년 11월 중국청도 이화섬유 유한 공사를 설립하면서 사세를 국외로 확산시켜 나갔다. 구미상의회장 취임 2개월 전인 1999년 6월에는 영남대학교로부터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 회장에게는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를 시작한 첫 회장이라는 역사적인 가치도 부여됐다.
2002년 8월 9일에는 제8대 김영도 회장이 박동식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제8대 김영도 회장1954년 대구공업중고 졸업, 1958년 부산수산대학교 제조과를 졸업한 김영도 회장은 졸업하던 해인 1958년 대구 영신전업사를 경영하면서 CEO의 길로 일찌감치 들어섰다.
우리 귀에 익숙한 영도전설(주)를 경영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1월의 일이었다. 1981년 구미상의 상임의원을 시작으로 구미상의와 인연을 맺은 김 회장은 1993년에는 국제라이온스 309-N지구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구미상의 부회장을 맡았다.
김 회장의 뒤를 이은 이는 제9대 박병웅 회장이었다.
▶제9대 박병웅 회장1953년 문경고, 1957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1968년 삼주개발(주) 상무이사를 역임한 후 1973년 5월 한국전자(주) 이사를 역임했다.
1978년 대아산업(주) 대표이사, 1986년 대아수지공업(주) 대표이사, 1990년 한국 에프텐(주)대표이사에 취임하기도 했다.
박 회장이 구미상의 회장직을 그만둔 것은 2006년 6월 25일이었고, 이날 제10대 이동수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제10대 이동수 회장제6대 이동춘 회장과 경주고 동문인 이동수 회장은 1974년 경북대 경상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인 1974년 (주)럭키에 입사한 이 회장은 9년 후인 1983년에는 (주)신흥 부사장을 맡았다, 대표이사에 취임한 것은 2년 후인 1985년 12월이었고, 같은 해 신흥통상(주 )대표 이사도 맡았다.
2001년 대구경북 견직물 공업협동 조합 이사,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이사, 2004년 (사)구미중소기업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한 이 회장은 2009년 6월 25일 그 바통을 제11대 김용창 회장에게 넘겼다.
▶제11·12대 김용창 회장"구미 경제의 규모에 맞게 상공의원수를 증원해 기업의 참여도를 확대하고, 2011년 상공회의소 임의 가입에 대비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미상의 발전기획단을 발족시키겠다"라며, 신임 포부를 밝힌 김용창 회장은 경운대 의료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구미시 이업종교류회 회장과 구미상의 6대·10대 상공의원, 10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6월 25일부터 현재까지 신창메디칼(주) 회장을 맡고 있다.
2011년 3월 25일 국토해양부와 국회를 방문해 구미철도 CY 존치 및 신설촉구를 위한 1인 피킷 시위를 하기도 했다.
2014년 구미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 회장의 바통을 이은 이는 류한규 회장이었다.
▶제13대 류한규 회장50명의 상공의원을 대상으로 한 회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된 류한규 회장은 경북고등학교와 대구공업대학을 졸업했다.
예일산업(주) 대표이사인 류 회장은 상공의원, 배구협회 회장, 구미라이온스 회장, 구미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지역사회에도 공헌했다는 평을 얻었다.
조용하고 묵직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업무 스타일이 장점이었던 류 회장은 재임시절 KTX 구미정차, 5공단 업종 다변화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남겼다.
▶제14대 조정문 회장2018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재임했다.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조 회장은 1998년(주)새날테크텍스 법인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2018년 제14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과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후인 2021년 대구경북 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취임한 조 회장은 2024년 ‘제38회 섬유의 날’을 맞아 모범경영인 부문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자동차 에어백용 직물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 연구·개발에 성공, 지속적인 외형성장으로 국내 제일은 물론 세계 3대 생산업체로 자리매김해 한국 섬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섬유제품 기술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은 결과이다.
2018년 경북도내 상공회의소회장단 모임에서 만장일치로 3년 임기의 경북상공회의회소 회장에 추대된 조 회장은 소박한 품성의 소유자라는 평을 얻는다. 2018년 7월 24일 간호하게 취임식을 진행하면서 절감한 5백만 원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달라며 구미시에 전달할 정도였다.
▶제15·16대 윤재호 회장 (현직)2021년 15대 회장 취임과 함께 ‘산업역군과 기업인이 애국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가운데 구미현안 해결을 위한 가교 역할과 수도권에 비해 날로 소외돼 가는 지방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앞장서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어 2024년 3월 22일 임시의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16대 회장에 취임한 윤 회장은 재임 중 반도체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대형 국책사업 유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어려움을 타개하게 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김장호 구미시장과 구자근 국회의원 등 정치권, 구미시의회와의 협업을 통해 2022년 한 해 동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 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헌승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구미로 초청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구미는 반도체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대형 프로젝트의 대형 선물을 구미시민들의 품에 안기도록 하는 데 기여한 윤 회장은 2023년 7월 25일 ‘반도체핵심 소재․부품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구미 유치 환영’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단언컨대 구미는 양 국회의원의 꾸준하고 탄탄한 의정활동은 물론 구미에 단 10원이라도 득이 된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는 김장호 구미시장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미 발전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 구미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구미시의회 의원 여러분에게 지역 경제계를 대표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구미가 K-반도체의 중심에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크게 비상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다시 한번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구미 유치’를 41만 구미시민과 10만 구미산단의 기업인‧산업역군과 함께 열렬히 환영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뛰어야 한다. 그래야 구미가 재도약할 수 있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