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화타임즈는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7돌인 11월 14일 <‘(대통령의 고향이기 때문에) 먹이를 물어다 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 버려라’...‘박정희 철학’ 무시한 구미리더들, 지금의 구미 자초>라는 제하의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간 후 일부 인사들은 ‘대통령의 고향이 구미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먹이를 물어다 주겠지’하는 1967년 구미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킨 정치인으로 박세직, 김태환, 심학봉 전 국회의원을 주목했다.
미래 구미의 먹거리로 주목받은 모바일 선포식이 있던 2010년 1월 14일 ‘“2009년 9월 현재 구미갑구 인구가 을구에 비해 4만여 명이 더 많으니 갑구 10명, 을구 10명의 시의원 정수를 구미갑구 11명, 구미을구 9명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K모 전 의원의 주장이 화근이 돼 경북도의회 본회의장에서 갑·을구 도의원들이 서로 삿대를 빼 들면서 구미를 망신시킨 정치 행태의 부류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편집자 주]
|
|
|
↑↑ 구미 낙동강 [사진 출처 =한국산업단지공단]
|
|
훗날 시민들이 그리워할 리더십은⇢일+따스한 인간미
일만으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웃 삼촌’ 같은 따스함과 활발한 소통, 아랫사람을 따스하게 품어 안아 주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됨됨이가 함께했을 때 정치인은 권력의 울담 밖으로 밀려났을 때도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구미를 꾸려나가는 양 국회의원, 구미시장과 구미시의회 의장, 그리고 지방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리움이 대상이 되고 싶습니까. 삿대질의 물결에 밀려 수구초심을 앓으면서 타향살이를 하고 싶습니까.”[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 영원한 권력과 부귀영화는 없다. 영원한 핍박도 빈곤도 없는 법이다.
권력을 쥐고 있으면 세상이 모두 다 제 것 같지만, 권력을 놓는 순간 세상은 맹수로 돌변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란’ 말은 권력자, 심지어 부부간에도 회자하는 일상언어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12년 간의 구미시장직을 마감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남유진 전 시장의 회고가 인상 깊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돌아보니 한낱 꿈만 같더라.”
권력자가 권력을 놓는 순간 세상은 재판관이 된다. 그들은 권력의 울담 밖으로 떠난 권력자를 그리움의 대상이거나 증오의 존재로 판결한다. 그래서 권력 밖에서 ‘수구초심’ 하지만, 어떤 이는 그리움의 품속으로 귀향하고, 또 어떤 이는 증오의 풍파에 떠밀려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게 된다.
권력의 세계를 떠난 지도자의 평가는 지역 경기가 어려울 때 적나라하게 평가된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추구하는 목적지가 사익이었느냐 공익이었느냐, 인간적이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평가는 ‘하늘과 땅’을 오르내린다. 업적과 인간 됨됨이로 평가한단 말이다.
→박세직 전 국회의원 7월 27일은 재선을 지낸 박세직 전 의원의 15주기였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많은 구미시민은 그를 그리워했다. 주민과 부하직원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던 그는 구미가 어려웠던 1990년대 시절, 큰 선물을 안겼다.
당시, 국민회의 집권 당시의 구미공단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들었다. OB맥주 구미공장 광주 이전을 시작으로 비롯된 공동화의 바람은‘굴뚝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는 황량한 구미산단’의 처참한 풍경을 그려냈다. 이러자, 시민들은 1996년 9월 30일 3공단 조성과 함께 계획만 수립한 채 요지부동인 4산단 조기 조성을 염원했다. 하지만 기존 산단이 공동화하는 상황에서 4공단 착공 바람은 과유불급이었다. 특히 수자원공사가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을 경우 자력으로 4공단을 조성할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희망의 프로젝트는 백지화 위기에 내몰렸다.
이처럼 구미산단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시민들은‘구미경제 살리기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가동했고, 자민련 부총재를 맡고 있던 박세직 의원은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의 핫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4산단 조기 조성을 위한 수순을 용의주도하게 밟아나갔다. 이 과정에서 4산단 조성에 정치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박 의원은 4산단 착공식 당일, 대구에 내려와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일정에 잡혀있지도 않던 착공식에 참석시키는 기지를 발휘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적막강산인 4공단에 다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박 전 의원은 또 따스한 인간미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보필했던 보좌진들은 지금도 종종 일화 한 토막을 이렇게 들려준다.
"하루 4시간 이상 잠자는 법이 없었다. 잠자는 시간은 곧 죽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던 그 분은 차량을 이용하는 동안에도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걸어 구미산단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서도 보좌진의 손을 꼭 쥐여주면서 미안하네, 식사를 걸러서는 안돼 네 “
→김태환 전 국회의원 3선을 지낸 김태환 전 의원도 그리움의 대상이다. 도·시의원들을 호령할 때는 눈에 불꽃이 튈 정도일만큼 ‘정나미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김 의원 곁으로 다시 몰려들었다. 왜 그랬을까.
어머니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힐 만큼 심성이 나약하고 주민에겐 ‘너무나도 겸손하고 따스한’ ‘이웃 삼촌’ 같은 고운 심성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미를 위해서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국회 건설교통위 위원 시절, 김 의원이 마이크를 들면 장차관들은 오금을 펼 수 없을 만큼 긴장했다. 그러한 ‘강단 의정’은 구미에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
적자를 이유로 수자원공사가 전국적으로 국가공단 조성지의 분양가를 인상할 당시에도 구미4공단 분양가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수자원공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구미국가공단이 존재하는 줄 아느냐‘며 호령하는 김 의원의 으름장 때문에 수자원공사 사장은 분양가 인상의 ’인‘자도 꺼내 들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생포-구포간 강변화고속도로는 당초 장기사업으로 분류돼 있었다. 1조 원에 가까운 대형사업의 착공 시기가 요원한 장기 사업을 중단기 사업으로 전환하려면 ‘대통령의 백그라운드’가 있어도 불가능하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초선의 김 의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짱과 ‘마음을 살살 녹이는’ 슬기를 발휘해 장기 사업을 단기사업으로 앞당겼고, 그로부터 4년 후 역사적인 착공식을 구미시민들에게 선물했다.
김 전 의원이 정계를 뒤로한 지 10년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함께했던 전현직 도·시원들은 이렇게 회고한다.
”지금도 늘 그 추억이 엊그제만 같다. 세상이 떠나갈 듯 호령하다가도 뒷날 만나면 손을 꼭 쥐여주던 따스한 웃음이 그립기만 하다“
→심학봉 전 국회의원 5공단 지정과 관련한 심학봉 전 의원의 비화는 유명하다. 심 전 의원이 청와대 대통령실 인수위를 거쳐 산업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2008년 1월 1일, 그해 3월 중앙부처 업무보고를 지방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첫 순서로 결정된 지식경제부는 업무보고 장소로 울산, 창원 구미 세 군데 중 한 곳을 선택하라는 지시가 경제수석으로부터 하달됐다.
이 과정에서 의전비서관 등 정무라인은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현대자동차의 울산을 주장했지만, 심 행정관은 지식경제부(산업부,정보통신부)의 상징성 등을 명분으로 설득해 삼성전자의 구미에서 하겠다는 보고를 했고, 2008년 3월 17일 지금의 구미전자정보기술원 강당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심 행정관은 당시 이용원 구미전자총동창회장에게 대통령 업무보고를 구미에서 실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남유진 시장에게 사전 준비를 해서 경제수석에게 보고토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해 3월 15일 업무보고 사실을 알린 이틀 후 해평면 일대 200만 평에 5공단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안을 가지고 온 남유진 시장과 김성조 국회의원을 대동한 심 행정관은 경제수석실로 가서 “구미에서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과제다. 미리 공단을 조성해 놓아야 선수들(기업들)이 투자한다”고 설득한 끝에 구미시에서 건의하도록 하는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3월 16일 지자체단체장들의 무분별한 건의를 우려해 지역에서 업무보고는 받도록 하지만 도지사와 시장 등의 참석은 원칙적으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미 방문 당일인 3월 17일 대통령과 도지사, 시장이 구미전자정보기술원 복도를 걷는 동안 시장은 계획안을 설명했고, 대통령은 듣고만 있었다. 자치단체장 참석이 업무보고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경제수석이 대통령에게 사실을 보고하지 않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언론은 3월 17일부터 5공단 조성 계획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3월 18일 대통령 말씀자료 행정관이 심 행정관에게 ’대통령이 5공단 조성을 약속했느냐‘고 묻자, ’대통령께 직접 물어보시라, 아마 분위기상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며칠 후 5공단 조성은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지식경제부에 하달됐다.
당초 5공단 조성 면적은 2백만 평이었으나 3백만 평으로 확대한 것은 사업 지구 내에 있는 문중 묘지를 제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둑한 배짱, 슬기와 지혜로 5공단 조성 결정에 견인차 역할을 한 비화를 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의 재임 기간은 사실상 3년이었다. 하지만 그 3년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그 또한 김태환 전 의원처럼 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주민들과 만나면 ‘이웃 삼촌’처럼 다가앉아 흉금을 털어놓았던 ‘너무나도 인간미’가 넘치는 인성이었다.
그 짧은 시절에 그는 17년 동안 시장과 국회의원, 심지어 도지사까지 합세해도 풀 수 없던 공단동의 삼진센츄리 타워 문제를 단 6개월 만에 풀어냈다. 장기 숙원 과제였던 구미복합역사를 한순간에 정상화시킨 것도 그였다. 이뿐이 아니다. 여타 정치인이나 시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북구미IC를 건설한 이도 그였다.
2014년 6월, 심 전 의원은 기자에게 ‘KTX북삼 간이역’ 조감도와 계획서를 내밀면서 7월 말에는 건설교통부로부터 공식 허가 수순을 밟을 수 있게 된다는 귀띔을 했다. 구미시민의 최대 숙원인 KTX구미 유치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7월 초 정치적 고초를 겪으면서 결국 그는 의원직을 사퇴했고, KTX북삼 간이역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당시 남유진 시장은 금오공대에 시물레이션 용역을 맡기는 등 심 전 의원이 못다 한 과업을 승계하려고 했지만, 백승주 전 의원이 KTX구미역 유치로 사업 자체를 변경하면서 가시권 안에 들어왔던 KTX북삼 간이역 신설은 구미의 품을 떠났다. 심 전 의원이 정치적 고초만 겪지 않았어도 지금의 구미는 ‘KTX역을 가진 도시’가 되었을 일이었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당시의 보좌진은 이렇게 술회한다.
“일을 마치면 일 걱정, 보좌진의 밥 걱정 뿐이었다. 근심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보좌진과 형, 아우를 맺은 심 의원은 따스하게 품어 안고 울기 일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