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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 내다 버린 가전제품처럼...‘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 박 대통령에게 얼굴들 수 있나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4.11.10 22:25 수정 2024.11.10 22:32

소중한 유산 평가절하하는 구미시 →자연보호운동 발상지·후삼국 통일의 현장 (첫 번째 순서 자연보호운동⇁이어 후삼국통일의 현장)
2014년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7돌에 돌아본다


박정희 대통령 업적 계승하겠다는 구미시 과연?
민선 7기 구미시, 자연보호운동 하면 구시대적 발상(일부 보조금 심의위원)→민선 8기 구미시 자연보호운동기념관 더부살이 방치
탄소제로 시대에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는 소중한 유물
기후위기, 탄소제로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 선도도시로 나가야


 

↑↑ 금오산 등산로의 자연보호운동 기념비 표지석
[사진 출처 =구미시]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 “한국 근대화를 주도한 정책은 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이다. 지산 앞산에 세워놓은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 표지판이 잡풀에 가려 보이지 않을 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계승에 관심이 없다.”(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 장세구 의원)
“자연보호운동 발상지의 주 등산로 계단을 시멘트 처리하는 게 말이 되느냐. 외부 관광객들은 자연을 파괴한 등산로를 보면서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가 맞냐’며, 혀를 찬다.”(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 이상호 의원)
“25개 읍면동 분회에 3백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나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에 걸맞은 사업은 초라하다. 자연보호운동기념관을 마련하기는커녕 탄소제로교육관에서 더부살이하는 현실이 말이 되는가.”(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 김영태 의원)

“자연보호운동을 위해 구미시가 추진하는 사업은 2022년의 경우 ▲신자연보호 및 녹색 시민의식 확산 운동(시비 576만 원, 자부담 116만 원) ▲자연보호 활동 지원 (시비 4백만 원, 자부담 1백만 원)▲자연보호운동 교육 및 홍보 사업 (시비 5백40만 원, 자부담 1백만 원) 등에 드는 총사업비는 1천796만 원이다. 이 중 자부담을 제외한 시비 지원은 1천480만 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과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계승하겠다는 구미시가 올바로 처신하고 있나.”(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 장세구·김영태 의원)

“자연보호운동 관련 예산을 심의한 일부 보조금 심의위원이 ‘자연보호운동 하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냉소를 보이는 실정이다.”(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 담당 과장)

2022년 9월 행정사무 감사에서 구미시의회 의원들은 자연보호운동 사업에 대한 구미시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24년 지금도 구미시는 요지부동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근대화를 주도한 정책은 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이다. 특히 구미는 새마을운동의 중흥지인 반면 자연보호운동은 발상지이다.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과제로 내걸고 있다. 그 중심에 탄소제로 정책이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춰 ‘자연보호운동 발상지’인 구미는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관광자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성에도 불구하고 구미시가 스스로 평가절하하면서 구미 미래가 먹고 살아갈 또 하나의 곳간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고향 선산善山군을 이대로 두면 악산惡山군’, 고향 분들이 산림녹화(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서 달라던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고향 구미를 자주 찾았다. 그중 1967년과 1968년 구미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벌거숭이 야산에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한다며, 산림녹화를 누누이 강조했다.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이어 10년 후인 1977년 금오산 대혜폭포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병조각 줍기는 1년 후인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로 이어졌다. 자연보호운동을 세상에 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 세 차례에 걸쳐 구미에서 이뤄진 것이다.

[1967년, 1968년, 1977년 구미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 어록]
1967년 3월 30일 당시 선산군 일선교 준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 우리 고향은 문자 그대로 선산, 착할 선 자 뫼 산자, 착한 산인데”라며 자연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 선산은 옛날부터 살기 좋고, 산천이 아름답고, 우리 고장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났다. 그런데 왜 우리 고향의 산들이 저렇게 모두 뻘겋게 헐벗고 있나. 선산을 지나다닐 때마다 우리 고향이 딴 고향보다 산이 제일 나쁘다는 생각을 한다. 선산인데 선산이 아니라 나쁜 산, 악산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향 산의 산림을 애호하고, 나무를 가꾸고 심고 하는 고향산천을 아끼는 마음이 적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오지 않았겠나.
앞으로 우리 고향을 사랑하면 할수록, 무엇보다도 우리 고향의 산에 아름다운 나무를 우리가 심고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 “

그날 박정희 대통령은 산림 사업 현지 시찰의 일환으로 칠곡군 북삼읍을 찾았다. 자신의 출생지인 상모동과 수 킬로미터에 인접해 있는 이곳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포플라나무를 심으라면서 군 관계자에게 하사금을 전달했고, 이를 계기로 포플라 장학금을 세상에 내놓은 토대를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림녹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67년 구미(선산)와 칠곡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1년 반 만인 1068년 11월 11일 다시 고향 구미인 선산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또 치사를 통해 자연보호 운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견해를 해외로 확장해 나갔다.

“우리 한국의 산을 보라. 전부 벌거숭이 같은 산에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앙상한 나무들이 붙어 있다. 외국은 전부 울창하고 무성하다. 땅이 좋고 비가 잘 와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일 년 내내 거의 비가 안 오는 땅에서도 훌륭한 나무를 심어서 몇 년 내에 울창한 숲을 이뤘다. 어떻게 하면 이런 땅에다 나무를 심어서 울창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 이 사람들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노력하고 당대에서 안 되면 자손들까지 대대로 노력해서 성공 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동남 ‘아시아’와 ‘뉴질란드’를 방문하고 왔다. 그 나라에서는 온 산이 꼭 공원과 같이 목장이 아니면 울창한 숲이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느냐, 그렇지 않다. 산에 심겨 있는 나무, 목장의 풀, 이것은 거의 다 지난 백 년 동안에 ‘뉴질란드’ 사람들이 동양이나 ‘구라파’에서 가져와서 전부 개량을 했다.
그 지방의 농산 수목이라든지 풀이라든지 이런 것이 거의 없어지고 개량을 했다는 것이다. 그 지방에서 키우고 있는 소라든지 양이라든지 전부 ‘구라파’에서 가져왔다.
우리들 당대에는 잘 사는 부자가 되지 못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들 다음 대에 가서는 우리도 남과 같이 훌륭한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어 1977년 9월 5일 금오산 대혜폭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널 브러진 병 조각부터 줍자”며,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를 태생시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1개월 후인 1977년 10월 5일 박 대통령은 자연보호운동과 산업화 시대를 연계한 내용의 치사를 통해 자연보호운동을 핵심 정책으로 끌어올렸다.

“자연은 한번 오염되고 훼손되면 제 모습을 되찾는 데 오랜 시일이 걸리고 때로는 그 복원이 영영 불가능한 경우조차 있으며 자연자원도 결코 무진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만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이 크게 발달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연의 이용도가 급증해가고 있으며 이와 비례해서 자연환경의 오염과 훼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을 더 늦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가 슬기와 정성을 다해서 해결해 보자는 것이 이 운동의 목적이다. 조국 근대화의 세찬 물결 속에서 우리가 쾌적하고 풍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해치지 않고 자연을 아끼며 절도있게 이용하는 슬기를 터득해야만 하겠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우리 강산을 더 아름답고 쓸모 있게 가꾸어서 후손에게 길이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산업혁명의 시대에 사는 우리 세대의 의무요, 사명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심 정책, 구미시는 과연 자연보호운동을 계승하고 있나]
2013년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앞에 모습을 드러낸 민족중흥관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2000년대 초부터 꾸준하게 거론되어 온 자연보호운동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이 다시 점화됐다.

특히 시민들은 독자적인 기념관 건립이 여의찮을 경우 차선책으로 경북자연환경연수원 내 친환경탄소제로교육관의 명칭을 자연보호기념관으로 개칭하고 아울러 교육관 내에 관련된 시설을 추가하게 되면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성에다 상징성을 더해 줄 수 있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자연보호운동기념관을 별도로 건립하거나 부대시설 보완 후 탄소 제로교육관을 자연보호운동기념관으로 개칭하게 되면 생가 앞 민족중흥관, 조성하고 있는 새마을 테마파크공원, 자연보호운동기념관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했다.

이 경우 근대화 산업 메카의 상징물인 민족중흥관, 새마을운동 중심지로서의 새마을테마파크,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로서의 자연보호운동기념관이 상호 밀접한 상징성을 맺으면서 향후 구미를 먹여 살릴 신성장 동력인 관광산업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앞서 녹색운동이 지구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구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자, 지난 90년대 말부터 자연보호 운동 구미시협의회와 자연보호중앙협의회는 자연보호운동 발상지인 금오산에 자연보호운동발상지 표지석, 금오산도립공원에 자연보호운동 상징아치, 자연보호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97년에는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에 <자연보호 운동발상지> 표지석을 설치했으나, 이후 공원 입구에 상징아치 설치 및 자연보호운동기념관 건립은 논의만 됐을 뿐 가시화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상태에 놓였다.

구미시 차원에서 자연보호운동기념관 건립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3년 11월 23일이었다. 이날 자연보호운동 구미시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당시 곽용기 구미시의회 의원은 시정질문에서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인 금오산도립공원은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자연보호운동의 산교육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연보호 시설물의 설치, 오물쓰레기 수거 캠페인을 거쳐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되가져가기 등의 시책의 산실이 되었고, 전국 단위의 각종 자연보호 행사 개최와 자연보호백일장 등을 통해 자연보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자연보호운동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답변에 나선 당시 행정지원국장은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로서 긍지와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자연보호운동 중앙협의회와 공동으로 환경부 관계관과 수차례에 걸쳐 협의를 했으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면서 “향후 박 대통령 기념사업과 연계해서 자연보호 관련 자료를 함께 전시하도록 하는 등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답변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2015년 10월 21일 금오산 탄소제로교육관 내 자연보호운동발상지기념관 개관식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독일 프랑크 푸르트를 본받자
독일 프랑크 푸르트는 괴테가 문학을 하던 집 한 채를 관광자원화해 한 도시의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이념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업적 계승을 실용주의적 노선으로부터 접근하면 돈이 되고 보물이 된다.
제조업과 관광산업이 어우러져야만 구미시는 두 개의 곳간을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구미시는 자연보호운동과 혹은 탄소제로과를 신설하는 발상의 전환과 함께 독립적인 자연보호운동기념관 건립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래야만 기후위기, 탄소제로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후위기 선도대응 도시, 구미시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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