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김경홍 ] 14만 김천시민과 정관계, 종교계가 보물 한 점을 되찾아 오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신선한 충격이다. 역사유산을 버린 민족은 망하고, 계승한 민족은 흥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김천의 사례가 감동을 준다.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보물 제245호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경덕왕 17년에 만들어진 석조유물로 1962년 국보 제99호로 지정됐다.
두 석탑은 본래 갈항사 터가 있던 김천시 남면 오봉리 일원에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였던 1916년 일본에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이어 지난 2005년에는 다시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김천시민과 정치권이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안고 있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김천 이전 추진을 위해 모두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단일대오를 형성한 김천 지도자들의 의기투합과 부응하고 나선 14만 시민들의 애향심은 아름답다.
지난 8월 21일 김충섭 시장과 송언석 국회의원, 나영민 시의회 의장이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삼층석탑 김천 이전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면서 석탑 이전 추진 작업은 비롯됐다. 이어 석탑 이전을 위해 국가유산청과 추후 사적 지정을 협의하는 한편 석탑이 소재해 있던 원위치의 토지를 매입하는 등 조성 작업에 나서면서 탄력을 받았다.
김천 지도자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9월 13일 김천시립박물관에서는 종교단체, 학계, 시민단체 등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김천 이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를 계기로 10만 명 서명을 목표로 석탑이전 촉구 범시민 서명 운동에 나서 현재 5만여 명의 시민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와 맞물려 김충섭 시장과 송언석 국회의원, 나영민 의장, 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직지성보물관장 진웅스님 등 김천의 정관계, 종교계 지도자들은 9월 2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계사 총무원장인 진우스님과 만나 그간의 석탑 이전 추진 내용을 전달하는 등 조계종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구미 출신 고산 황기로(草聖) 선생의 유묵遺墨 3점이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 보관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소중한 유물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2023년 8월 ‘구미시립박물관 건립 계획(안)을 수립한 구미시가 당장은 반환을 받지 못하더라도 박물관 개관 즉시 반환 약속을 내용으로 하는 ‘반환 협약서’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유묵 중에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지은 오언율시를 황기로 선생이 고아읍 예강리의 매학정에서 초서로 쓴 보물 제1625-1호 초서가행 草書歌行을 비롯한 보물급 2점 등이 포함돼 있다.
황기로 선생의 유묵은 딸과 혼인 관계를 맺은 덕수이씨德水李氏 옥산공파 중손댁에서 전해지다가 2007년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구미시에 유물을 보관할 수장고(박물관)가 없다는 이유였다. 황기로 선생의 딸은 강릉의 율곡 이이李珥 아우이면서 명서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어머니 신사임당)와 혼인했다. 황기로와 신사임당은 사돈지간으로 유묵이 강릉으로 가게 된 배경이다.
2023년 구미시의회 행정사무 감사 자료를 통해 ‘구미시립박물관 건립 계획안’을 공개한 구미시는 타당성 조사용역을 위해 2025년 본예산에 관련 예산을 편성키로 하는 결단을 내렸다. 민선 20년이 태무심한 시립박물관 건립을 민선 8기 김장호 시장이 결단을 내린 데 힘입은 결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구미는 후삼국통일의 현장 재조명 작업이나 2016년 5월 돌 한 개가 길이가 2.32m에 이를 만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못지않게 웅장했다는 도개면 소재 주륵사폐탑 역시 1차 발굴조사를 끝으로 흐지부지시켜 놓았다. 더군다나 김장호 구미시장 이전 민선시장들이 시립박물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시민적 요구를 묵살하면서 1천 3백여 점의 역사유물들이 타지역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구미시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역사유물은 특정 민족이나 지자체의 지향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다. 따라서 정신적 유산을 계승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역사 유물에 대한 소중한 가치로부터 찾아야 한다.
특히 사람이 모여드는 곳은 문화와 경제 번성의 강물을 흘려보내는 발원지가 된다. 그러므로 축제지향의 행정에 편중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시민사회가 나서서 역사유물을 계승 발전할 수 있는 시민운동에 나섬으로써 정관계와 힘을 도모하는 슬기를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