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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복희 시인의 시집ᐧ오래된 거미집 / 연재 21- 술빛처럼 탁한 날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8.30 17:34 수정 2024.08.30 17:38


말소리 나지막한 말복이 아버지
목구멍으로 막걸리 잘 넘긴 날
生은 불 지피지 못한 덤불
동네 골목골목에 불심지 당겼다

목청 터지도록 뽕짝 부르는 말복이 아버지
골목 대문들 듣고도 못 들은 척
대답없는 질문이 동네 어귀부터 생겨나
마을은 모두 말복이네 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복이 아버지
어두컴컴해지는 골목에서 휘청거리다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갔다
오줌발 받아주던 낡은 전봇대만 남았다

수억 빚진 마누라가 남편 잡아먹었다느니,
몇 번 사업 실패한 아들 탓이라느니
골목 소문이란 소문 다 품은 나팔꽃만이
전봇대를 위태위태 감아 올라가고 있었다

매미가 유난히 울어대던 말복 날
LPG 가스통이 방안에서 터졌다

한날한시에 아버지 따라간 모자
말복이네 말 못할 사연만큼
소문 무성한 마을 향해 귀여는 나팔꽃

마을 공기가 탁해지는 날에는
전봇대 변압기에서 웅 웅 짐승 우는 소리가 났다

시인 이복희 →→→

 
↑↑ 이복희 시인
[사진 제공=작가]

경북 김천 출신으로 구미에 터를 잡았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오래된 거미집’은 이복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시인의 작품‘ 오래된 거미집’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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