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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복희 시인의 시집ᐧ오래된 거미집 / 연재 18- 자동세차기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8.15 07:28 수정 2024.08.20 08:31


아무리 보아도 너는 보아구렁이야
침 발라 마구 핥아대는
부드러운 구레나릇을 가졌지

겨울 국도를 헤매고 다닌
실족에 찢긴 발등도 어루만져 줘야 해
아니야, 거기는 팔아야 비틀지는 말아줘

발가락 틈새는 부드럽게 문질러줘
공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 때
살갗 뚫고 나온 가시는 성급하게 떼지 말아줘

초원을 할퀸 야성의 발톱도 세척하고 싶어
찌든 영혼마저 세척하고 싶어
그런 나를 칭칭 감아 삼킨 보아 구렁이

내가 물컹한 살밖에 없을 거라 여긴 거지
삼키는 데 불과 십 분밖에 안 걸렸네
무턱대고 삼켰다가
체중으로 고생하는 것 여럿 봐 왔어

슬그머니 넘어갈 줄 알았지
십 분 만에 나를 삼킨 너
한동안 깊은 잠이 필요할 거야

넌, 이제 내게 발목 잡힌 거야
슬슬 수작 걸어볼까

 
↑↑ 이복희 시인
[사진 제공=시인]


시인 이복희 →→→
경북 김천 출신으로 구미에 터를 잡았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오래된 거미집’은 이복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시인의 작품‘ 오래된 거미집’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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