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보아도 너는 보아구렁이야
침 발라 마구 핥아대는
부드러운 구레나릇을 가졌지
겨울 국도를 헤매고 다닌
실족에 찢긴 발등도 어루만져 줘야 해
아니야, 거기는 팔아야 비틀지는 말아줘
발가락 틈새는 부드럽게 문질러줘
공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 때
살갗 뚫고 나온 가시는 성급하게 떼지 말아줘
초원을 할퀸 야성의 발톱도 세척하고 싶어
찌든 영혼마저 세척하고 싶어
그런 나를 칭칭 감아 삼킨 보아 구렁이
내가 물컹한 살밖에 없을 거라 여긴 거지
삼키는 데 불과 십 분밖에 안 걸렸네
무턱대고 삼켰다가
체중으로 고생하는 것 여럿 봐 왔어
슬그머니 넘어갈 줄 알았지
십 분 만에 나를 삼킨 너
한동안 깊은 잠이 필요할 거야
넌, 이제 내게 발목 잡힌 거야
슬슬 수작 걸어볼까
↑↑ 이복희 시인 [사진 제공=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