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편지=발행인 김경홍] 필자가 생애 마지막으로 허주 김윤환 전 의원을 만난 것은 16대 총선이 목전에 다다르던 2000년 3월이었다. 자신이 입당시킨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로부터 낙천이라는 청천벽력의 정치적 사형 언도를 받은 허주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기택, 김광일, 조순, 이수성, 박찬종 전 의원 등 내로라하는 이들과 함께 창당한 민주국민당 간판을 내걸고 김성조 한나라당 후보와 일전불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 무렵 구미관광호텔에서 필자와 만난 허주는 삭풍에 부대끼는 고목을 연상케 했다. 3명의 대통령을 탄생시킨 당대의 권력자이자, 구미의 자존심이기도 하던 그였다. 하지만 그날 허주의 곁을 지키던 이는 1명의 보좌관일 뿐이었다.
구름떼처럼 몰려들던 측근들은 철새일 뿐이라는‘인생허무, 정치허무’가 필자의 가슴을 휘감았다.
“김 군, 세상이 너무 야박하네그려. 모두 (측근들) 어디로 갔는지... 전화해도 받지를 않네, 그려.”
허주에게 낙선의 아픔을 안긴 16대 총선이 끝난 직후, 허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2003년 말에는 신장암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비보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허주의 동생 김태환 전 의원을 구미에서 만난 것은 2003년 가을이었다. 금오피엔비 화학 사장의 직분으로 필자를 만난 김 전 의원은 가을 잎이 유난히도 붉은 금오산을 올려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전 국회의원 출마의 뜻을 말씀드릴 겸 해서 미국엘 다녀왔습니다. 형님은 나를 위해 정치를 하려거든 뜻을 접고, 나라와 민족, 지역을 위해 정치를 하려거든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측근들을 옆에 두지 말라고도 했지요.”
16대 총선에서 패한 허주는 그로부터 2년 후인 2002년, 쓰라려 오는‘정치 허무’의 과거사를 남기고 빈 배로 떠났다.
‘나를 위해 살려거든 정치를 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 지역을 위하려거든 정치를 하라.“는 동생 김윤환 의원의 동생 김태환 의원에 대한 당부와 한나라당 공천에서 낙천하자, 문전성시를 이루던 측근들이 철새가 되어 날아가버린 ’정치인 허주의 인생무상‘.
그 안타깝고 아련한 과거사가 영롱하게 떠오르는 2023년 새해 아침이다.
2022년 대선이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소위 윤핵관들이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윤핵관들의 입김이 작용한 인사의 난맥상도 연일 회자된다. 2022년 지방선거를 통해 탄생한 일부 지자체장들 역시 출범하자마자, 측근 관리에 실패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를 위해 살려는 마음을 접은 정치인, 나라와 지역을 위한 삶을 살려는 정치인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나라와 지역에 헌신하기 위해 화목한 가정의 일상을 버리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면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혹독한 겨울 한파를 이겨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혹독한 시련을 극복해야 아름다운 정치인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그들의 삶은 꽃처럼 아름다울 정도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2000년 3월 당시 허주가 토해내던 얘기를 마음 깊이 새겨넣어야 한다.
“김 군, 세상이 너무 야박하네그려. 모두(측근들) 어디로 갔는지,,,. 전화해도 받지를 않네, 그려.”
나라를 위한 삶을 살려고 발버둥치던 허주, 결과적으로 그런 그도 실패한 측근 관리라는 오점을 남겨야 했다.
튼실한 열매를 맺게 하려면 과일나무 품속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막아서는 곁가지를 쳐내 주어야 한다.
정치도 매한가지다. 훌륭한 정치를 하려면 주군을 보좌하기보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과일나무의 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낚아채는 측근’들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가장 경계해야 대상은 ‘일등공신’을 자처하는 측근들이다. 그들과 동행하는 한 나라와 지역을 위한 정치인의 길을 갈수 없다.
파라오의 금언 중에‘측근을 오래 두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측근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