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본회의장/ 사진 = 국회 캡처 |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지천의 물줄기를 받아들여 강을 이룬다. 도심과 농촌, 공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도 강물의 원류이다. 이게 역사다. 역사는 흘러드는 사연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는 어떠한 물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불양수(海不讓水)다.
정치사도 이러한 이치와 다르지 않다. 21대 총선에서는 시의원, 도의원의 이력으로 20대 총선에서 분루를 삼킨 구자근 의원과 금오공대 총장 출신의 김영식 의원을 탄생시켰다.
김윤환, 박세직 의원의 바통을 이어받은 3선의 김성조, 김태환 의원의 정치사가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구미는 정치적 혼란기를 맞는다.
김성조 의원을 누르고 등원한 기술고시 출신의 심학봉 의원은 2년 가까이 공직선거법 관련 송사에 매달려야 했다. 이후 심 의원은 20년 가까이 대형 민원으로 남아있던 삼진 센추리 타워 철거, 구미복합 역사 승인, 북구미 IC 신설 확정, 의료복합단지 신설과 구미의 최대 숙원 사업인 KTX 구미 유치 성사를 목전에 두고, 진골 친박계로부터의 정치적 수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집어던져야 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일궈놓은 그의 업적은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렸다.
김태환 의원도 큰일을 해냈다. 어머니를 소재로 한 노랫말을 부를 때마다 목놓아 울어대는 인간적인, 너무나 연약한 김 의원은 지역 발전을 위한 길에서는 사감을 벗어던졌다. 김 의원은
장기 계획으로 잡혀있던 생곡-구포 간 강변우회도로 (고속화 도로)를 단기 계획으로 변경시켰는가하면 4공단 분양가 인상을 추진하던 수자원 공사의 의도를 저지시키는 등의 의정활동 역사를 남겼다.
2016년 20대 총선 새누리당 경선에서 석패해 분루를 삼킨 구자근 의원은 4년간 불면의 시간을 보냈고, 쏟아부은 땀방울은 2020년 총선 승리라는 과실을 수확했다. 그동안 20대 총선 경선에서 국방부 차관 출신의 진골 친박계인 백승주 의원에게 분패하면서 선거 사무실을 정리해야 했던 구자근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하는 여론을 뒤로한 채 고독한 4년의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끝내 그 속에서 21대 총선 당선이라는 대어를 낚아 올렸다. 시의원 낙선과 당선, 도의원 재선 당선, 국회의원 낙선과 당선이라는 굴곡의 정치사를 극복해 온 인간 승리였다.
김석호 전 도의원 역시 구미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도의원을 사직하고 총선과 시장 선거에 연거푸 도전장을 내민 그의 도전 정신에 대해 세상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동정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4선 시의원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쓰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도의원에 당선된 전인철 의원도 입지 전적의 인물이다. 도의회 입성 2년 후 사직서를 던지고 총선에 뛰어든 전 의원은 결국 혼란스러운 정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꿈을 접었다.
채동익 현 구미시설공단 이사장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2006년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해 10%를 웃도는 득표율을 보이면서 저력을 과시한 채 이사장은 이후 12년에 걸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분골쇄신해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8년 민주당 경선에서 눈물을 곱씹어야 했던 채 이사장은 공천 후보인 현 장세용 시장의 선거 캠프에 들어가 주경야독했다. 결국 구미시 정치사에서 진보 시장을 탄생시키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특히 채 이사장은 구미시설공단을 최우수 공단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역사를 썼다.
구미을의 경우 김태환 의원의 형인 허주 김윤환 보좌관을 지낸 김대호 의원은 시의원의 이력을 발판삼아 두 번에 걸친 도의원 선거전에서 보수정당 후보를 누르며 이변을 속출한 주인공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서는 눈물을 곱씹으며 돌아서야 했다.
김연호 변호사는 번번이 보수 정당 공천에서 낙천했으나 19대 총선에서는 종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독했던 시절, 미래당 구미 지구당을 창당하는 등 친박 세력이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으나, 냉정한 정치 세계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구미 정치사에 흔적을 남긴 인물
△김성조 의원
4선 고지 앞에서 뜻을 접은 정치 이력
4선 고지 앞에서 뜻을 접어야 했다. 안타까움도 없지 않았다. 19대 총선 막바지인 3월 17일, 여론조사 경선 패배의 소식이 알려지자, 급거 상경해 불공정 경선을 이유로 재심을 요구했고, 새누리당 공천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7일 만에 탈당 철회와 함께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12년 국회의원 이력에 무거운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특히 2명의 도의원과 4명의 시의원이 새누리당 동반 탈당 기자회견과 탈당 철회의 여파를 초래하면서 김성조 의원은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사족에도 불구하고 김성조 국회의원은 김윤환- 박세직- 박재홍이라는 3대 거두, 1기의 구미 현대 정치사를 홀몸으로 마감한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정치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1기의 구미 현대 정치사를 마감한 2000년 실시된 16대 총선은 구미 단일선거구로 실시됐다. 당시 선거에서 박세직 의원은 장고 끝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회창을 입당 시켜 그를 킹으로 만들려던 김윤환 전 의원은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공천자 지명과정에서 낙천했고, 극렬히 반발하면서 창당한 민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에 맞선 이가 바로 당시 경북도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던 41세의 김성조 국회의원이었다. 정치 혁신을 기치로 내건 당시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 체제에서 후보가 된 김성조 의원은 김윤환 국회의원과 두 차례에 걸쳐 김윤환 의원에게 정치적 도전장을 낸 최종두 신림종합 건설 명예회장을 누르면서 당선됐다. 구미 현대 정치사가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이후 김 의원의 정치사는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정치 세계의 냉혹함은 비껴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파동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렸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성조 의원은 열린우리당 조현국 후보로부터 강한 도전장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4만 2,550표대 2만 281표였다. 또 당시 김 의원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사촌인 자민련 소속 박준홍 후보로부터도 도전장을 받았으나, 수월하게 극복했다.
18대 총선이 실시된 2008년에는 자신의 위원장으로 있던 한나라당 구미갑 간부 출신의 임경만 전 시의원으로부터 도전장을 받아야 했다. 특히 당시 김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절친인 김석호 현 친박 연합 구미갑 당협위원장으로부터도 도전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처럼 주요 고비마다 정치적 의미를 가미시키면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김 의원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위가 실시한 여론조사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4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낙루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석호 후보
단식과 삭발, 투혼의 정치 역사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성조 의원의 절친이었던 김석호 의원은 앞서 국회에 입성한 김성조 의원과 함께 구미 차세대 정치를 꾸려나갈 소위 40대 기수론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김 후보는 선거 때마다 행운의 여신이 비껴지나면서 낙루해야 했다. 지난 2006년 도의원의 이력을 앞세운 김 후보는 당시 한나라당 구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 남유진 전 시장과 불꽃 튀는 접전을 벌였으나 눈물을 곱씹어야만 했다. 당시 김성조 의원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했던 김후보는 결과가 기대치 이하로 나타나자 절친 관계에서 원친관계가 됐다.
2년 후인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김 후보는 김성조 의원, 이재순 구미폴리텍대 대학장,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김진태▪ 이병길 변호사와 함께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된 후 본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후에도 김 후보의 도전은 지속됐다. 2010년 실시된 구미시장 선거에 친박 연합 후보로 본선 출마해 30% 중반대의 득표력을 과시한 김 후보는 석패의 낙루를 가슴속에 씹어삼키면서 19대 총선을 겨냥해 빠른 행보를 보였다.
특히 김 후보는 2011년에는 박정희 대통령 홍보관 입지 문제를 이유로 40여 일에 걸친 단식에 들어갔고, 19대 총선을 이틀 앞둔 4월9일에는 삭발을 단행했다. 훗날 역사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총선을 앞두고 김 후보는 김성조 의원, 전인철 전 도의원과 함께 후보 단일화에 나섰으나, 3자 단일화에 실패한 후 김성조 의원과 전인철 전 도의원 등 2인 간의 단일화라는 뼈아픈 역사 현장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2인 간의 단일화에 성공한 김성조 의원이 결국 새누리당 탈당 철회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김 후보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파죽지세의 새누리당 바람 앞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후에도 김 의원은 시장과 총선 전에 뛰어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네 번에 걸친 도전
2006년 구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낙천하자, 구미시장 선거 본선에 진출한 후 10%대의 득표율을 보였다. 보수 정서가 강했던 당시 10%대의 득표율은 이변이었다.
2년 후인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패배하자, 본선 진출의 꿈을 접은 채 전 국장은 다시 한나라당 당원 신분으로 2년 후 실시된 구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낙천이었다.
이어 19대 총선에 명함을 내밀었으나 여론조사 경선 대상에서 배제되자, 심학봉 국회의원 당선자의 맞상대인 현 김성조 국회의원을 지지하면서 본선 진출의 꿈을 접었다.
그의 도전은 지속됐다. 20대 총선에서 낙천한 채 후보는 2018년 진보 성향의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뛰어들었다. 결국 장세용 현 시장에게 분패한 채 이사장은 당시 장세용 후보 선거 캠프에 합류해 모든 것을 바쳤다.
△전인철 전 도의원
변화무쌍했던 19대 총선
4선의 시의원과 구미시의회 부의장, 의장을 역임하면서 나름대로의 탄탄한 영역을 구축해 왔다. 구미시의회 의원 당시 4선의 의장을 역임한 윤영길 의장은 의장을 꿈꿔온 전인철 전 도의원의 앞길을 가로막은 철책이었다. 그러나 5대 의회 전반기 들어 꿈속에도 갈망했던 의장에 당선된 전 전 도의원은 후반기 들어서도 의장 출마를 고심했으나, 한나라당 소속 구미갑구 출신의 2명 의원을 끌어안는 데 실패하고 일찌감치 재선 의장의 꿈을 접었다.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구미 도의원 제1선거구 (도량동, 선주원남동)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 전 도의원은 무소속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나라당 후보를 제압하는 기적의 정치사를 썼다.
그러나 임기 2년 반을 남겨놓은 2012년 12월 말 도의원직을 벗어던진 전 전 도의원은 19대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행보는 변화무쌍했다. 새누리당 공천 접수마감일이 임박해오자, 새누리당 입당과 함께 공천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어 여론조사 경선 대상에서 배제되자,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이어 3월 17일부터 친박 연합 김석호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으나 여의치 않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성조 의원으로의 후보 단일화와 함께 선거 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총선 본선 출마의 꿈을 접었다.
△이병길 변호사
화끈한 정치 기질
이병길 변호사는 한결같이 초심을 지킨 몇 안 되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8년 김성조 의원, 이재순 구미폴리텍대 대학장, 채동익 전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김석호 전 도의원, 김진태 변호사와 함께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이병길 변호사는 낙천하자, 변호사의 길로 돌아왔다.
이어 4년 후인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한 이 변호사는 여론조사 경선 대상에서 배제되자, 특정 후보의 지원 요청을 뒤로한 채 현장으로 복귀했다. ‘ 새누리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초지일관 새누리당과 함께한다’는 내용의 마지막 보도자료는 세상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김대호 전 도의원
무소속 신화, 안타까운 좌절
김대호 전 도의원은 파란만장한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 김윤환 의원을 보좌해오며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 의원은 처음 출전한 기초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4대 시의원 선거에서는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공천제가 도입된 5대 의회에서는 출전을 포기했다. 하지만 2년 후인 2008년 10월 실시된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김 전 의원은 5대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연속 당선됨으로써 무소속 당선 역사의 이변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2012년 12월 도의원직을 중도에 사퇴하고 정치세계의 정점인 국회의원을 겨냥했으나, 3선에 도전하는 김태환 의원를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김연호 변호사
19대 총선 본선 진출 의미가 있다
구미지역 정치계 인사 중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과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인사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김연호 변호사였다.
2002년 한국미래 연합을 창당한 인물은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었고, 김 변호사는 당시 구미시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구미에서 개최한 김 변호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 할 만큼 박근혜 위원장과 각별한 인연을 과시하던 때가 없지 않았다.
이후 박근혜 위원장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 변호사는 제17대에 이어 18대에도 김태환 의원, 박해식 부장판사, 이정임 전 시의원과 함께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의 고배를 마셨다.
19대 총선을 포함해 내리 세 번째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한 김 변호사는 특히 19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경선에서 배제되자, 경선대상자 선정 무효확인 소송 및 경선대상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결국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본 선전에 종주하면서 선전을 했다. 이어 20대, 21대 총선에서도 도전사는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