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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통 안에 기진맥진한 흰 나방들이 흩어져 있다. 날개를 들 힘도 부치는 듯 겨우 몸을 움직인다. 미련 없이 죽기도 어려운 모양이다. 가슴이 찡하고 애처롭다. 저들도 다음 생에는 더 멋진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을 할까. 내 보기에는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장엄한 생애였다.
유난히 동물이나 곤충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우리 집은 늘 애완용 동물들을 키운다. 이번에 입양시킨 녀석들은 애완용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누에다. 아는 동생이 키워보겠느냐고 했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한 것은 뽕잎 구할 일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식구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을 생각하며 큰맘을 먹었다.
분양을 받으러 가니 애벌레도 아닌 알이었다. 좁쌀보다 더 작아보였다. 백지에 점이 찍혀있는 듯한 알들이 족히 100개는 넘을 성싶었다. 과연 이 조그만 점에서 누에가 나올까? 반신반의하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주 귀한 물건을 모시듯 집으로 데리고 왔다.
며칠이 지났다. 날마다 눈이 빠지게 알을 관찰하던 아들 녀석이 누에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달려가 확인한 결과, 속눈썹 반 길이도 안 돼 보이는 누에가 꼬물거렸다. 알에서 머리를 내밀고 힘겹게 나오는 놈도 있고, 꼬리에 알껍데기를 아직 달고 기어 다니는 놈도 있었다. 온몸에 생명의 신비, 그 전율이 지나갔다. 갓 깨어나는 누에는 입으로 불면 호르르 날려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남편은 돋보기를 들이대며 “어이, 이놈들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네.”라며 연신 살피고 있다.
마침내 우리 식구들의 누에 모시기가 시작되었다. 갓 태어난 누에는 연한 뽕잎이나 즙액을 먹는다는 정보도 얻었다. 뽕잎을 잘게 썰어 넣어주었다. 이놈들이 잎을 먹고 있는 것인지 잎에 붙어 있는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며칠 더 지나자 늦둥이들까지도 다 부화를 했다. 마치 자그마한 개미가 오글거리는 것 같았다. 조금 징그러웠지만, 자세히 보면 꼬물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이놈들이 먹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아도 며칠 사이 가져온 뽕잎을 다 먹어 치웠다. 누에는 먹성이 좋은 녀석들이라 날마다 제 몸무게만큼 먹는다. 뽕나무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식구대로 일삼아 뽕잎을 따다 나르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누에를 보면서 이까짓 일쯤이야 했다. 아이들의 자연관찰도 되고, 뽕잎 따러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운동도 되고, 누에를 화제로 가족 간의 대화도 늘었다. 이게 바로 일석삼조가 아닌가.
누에가 우리 집 주인공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구들 식사보다 누에의 밥을 먼저 챙겼다. 며칠에 한 번씩 똥도 치워 줬다. 담당인 막내는 징그러워하지도 않고 녀석들을 그냥 손으로 들었다 놨다 떡 주무르듯이 다뤘다. 그러나 녀석들이 커갈수록 작은 상자에서 큰 상자로 자주 이사를 시키는 일이며 먹이를 감당하는 일도 버거워졌다.
누에 대책회의에 의견이 분분했다. 누에치기 농가도 아닌데 너무 많은 누에가 자꾸만 커가니 먹이를 구하기도 벅차다는 아빠의 안건. 누에가 집 안에 너무 많이 우글거리니 괜히 몸이 근질거린다는 딸들의 안건. 가만히 듣고 있는 막내가
“그럼, 아깝지만 다른 집에 분양을 해줘요.”
녀석들을 애지중지하는 막내가 큰 결심을 한 것이다.
“가입한 카페마다 누에를 공개 분양을 한다고 하면 어때요?”
누에 키우는 것을 탐탁찮아 하던 둘째 딸이 속이 후련하다는 빛을 역력히 드러내며 말했다.
소문을 듣고 막내의 친구들이 누에 애벌레를 보러왔다. 문전성시일 뿐, 선뜻 키워보겠다는 친구가 없었다. 부모님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물고기나 다른 곤충이라면 사료를 사서 먹일 수도 있겠지만 누에는 반드시 뽕잎을 먹여야 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몇 집과 유치원 교사로 있는 친구가 원생들에게 관찰을 시켜주겠다며 분양을 하러 왔다. 막상 분양하고 나니 녀석들과 정이 들어서 섭섭했다. 누에를 키우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미 마음 같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분양을 해주었는데도 누에는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날로 누에는 커갔다. 어른 중지만큼이나 됐다. 손가락으로 슬쩍 쓰다듬으면 잔뜩 움츠러든다.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하다. 잠자는 아기 손가락을 살짝 건드려보는 기분이다. 누에는 허물을 벗기 위해 잠을 잔다. 그 시기는 먹이를 줘도 절대 먹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백과사전도 찾아보고 누에를 키워본 적이 있는 분들을 찾아 자문도 했다. 누에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우리 식구들은 점점 누에 박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유독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큰딸이 웬일인지 무심히 누에들을 보다가 막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준우야! 누에들이 왜들 이러냐? 거미줄 같은 것에 감겼어.”
“와! 이건 누에가 고치를 지으려고 실을 토해내는 거야. 누난 그것도 몰라?”
막내가 우쭐대며 말했다. 큰딸은 동생이 대견하면서도 얄미운지 꽁! 꿀밤 한 대를 먹였다. 씩씩거리는 막내 사이에 끼어든 나는 즐겁기만 했다.
부화한 지 4주쯤 지나니 누에의 색깔이 투명해지고 연노랑으로 변했다. 먹이도 먹질 않고 고개를 들고 흔들흔들하면서 고치 지을 장소를 찾는 눈치였다. 급한 놈은 미처 집 지을 장소를 찾기도 전에 입에서 실을 토해냈다. 이른바 토사였다. 고치 지을 장소를 만들어주는 일이 급했다. 나무젓가락을 엮어서 기초 틀을 만들었다. 그 위에 소나무 잔가지를 얹으니 자리가 그럴듯했다. 첫아이를 키울 때처럼 모르는 것은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실수를 안 하려고 온 신경을 다 쏟았다.
누에들은 고치 지을 장소를 정말 심사숙고해서 찾는 것 같았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제 몸속의 실샘에 모아둔 액을 토해냈다. 액은 공기에 닿으면 굳어져서 실이 된다. 녀석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정성껏 고치를 지었다. 무려 1,500미터나 되는 실을 토해낸다니! 고치가 완성되어 갈수록 누에는 점점 작아져 갔다. 누에는 제 몸이 쪼그라들고 볼품없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고치를 지었다. 다 지은 고치는 백설같이 희고 예쁜 타원형 공 같았다. 신의 손길이 와 닿은 것 같았다.
옛날에야 실을 뽑아 비단을 짰겠지만 우리는 더 관찰하기로 했다. 열흘 후, 고치를 뚫고 나방이 나왔다. 머리부터 날개, 배, 다리까지도 백설 같았다. 나방은 날지를 못했다. 실을 뽑기 위해 길들어 날개 근육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한번 맘껏 날아보지도 못한 나방이 애처로웠다.
나방은 2~3일간 짝짓기를 했다. 파르르 떠는 수컷이 불쌍하면서도 종족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수컷은 짝짓기를 마치자마자 죽었다. 암컷도 하루 뒤에 수백 개 알을 낳고 곧 죽었다.
생명의 순환은 아무리 미물이라고 해도 신의 섭리인 것 같다. 4,500년을 이어 온 누에의 한살이를 보며 누에를 일러 천충(天蟲), 하늘의 벌레라고 하는 의미를 새롭게 새겨본다.
이복희 작가(시인 수필가)⇁⇁⇁⇁
경북 김천 출신이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시집으로 ‘오래된 거미집’, 수필집으로 ‘내성천에서는 은어도 별이 된다’를 출간했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작가로 경북 구미와 경기 동탄을 오르내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