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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왼쪽 막니가 아팠다. 찬물만 삼켜도 시렸다. 양치할 때도 재주껏 아픈 쪽을 피하고 음식물을 그쪽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실수로 그곳에 칫솔이 닿으면 온 인상이 찡그려졌다. 참을 만큼 참다가 큰맘 먹고 치과를 찾았다.
치과 문을 들어서자마자 치과 특유의 소독 냄새가 달려들었다. 치르륵 치르륵 치료하는 기계 소리에 저절로 오금이 저렸다. 치과에서 치료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유독 치과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내가 치과를 이토록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년 시절, 젖니가 흔들릴 때마다 부모님께선 그것을 실로 묶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척하다가 이마를 툭 치면서 젖니를 뽑으셨다. 그때의 공포는 잊을 수 없다. 처음 한 번은 그렇게 해서 뽑혔지만, 그다음부터는 절대 부모님께 치아를 맡기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 앓다가 음식을 먹는 도중에 저절로 빠질 때가 더 많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내 차례다. 나는 도축장에 끌려 들어가는 소였다. 가까스로 치료용 의자에 앉았다. 스르르 뒤로 젖혀지는 의자 때문에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알다시피 막니란 놈이 입안의 가장 안쪽에 있어서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야 했다. 상추쌈을 크게 싸서 먹을 때처럼 목젖이 보일 만큼 벌렸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한쪽은 간호사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의사 선생님이 당겼다. 입을 찢는 형벌이 있다면, 지금 상황이 아닐까. 내 입이 찢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X-ray를 찍었다. 확인한 결과 충치도 심하고 치아가 떨어져 나간 부위도 컸다. 당연히 이를 뽑아야만 했다. 간혹 막니가 어금니의 보철치료를 받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지만, 지금 나 같은 경우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뽑아야겠습니다.” 의사의 상투적인 말에 악몽이 되살아났다. 어쩌랴. 부모님의 원시적인 발치보다 현대의술을 믿고 맡기기로 작정했다.
따끔따끔한 마취 주사는 참을 만했다. 마취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잇몸의 감각이 이상해졌다. 혀도 아리아리해지며 굳어가는 느낌이다. 뺨도 얼얼해지고 입술과 턱도 내 것이 아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 선상에 선 기분이었다.
의사는 이를 뽑는데 온 정성을 다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엉뚱한 이야기로 정신을 팔게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그 이야기가 의사의 마취제 같았다고 할까. 몇 초, 몇 분이 흘렀을까. ‘찌지직’ 소리와 함께 턱이 다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깍지 낀 내 두 손에 힘이 풀렸다. 이십여 년 내 몸의 일부였던 막니는 뽑혀 나갔다. 그 자리에 거즈 뭉치로 콱 메워졌다. 이 뽑기 전에는 공포와 아픔만 생각했는데 막상 뽑고 나니 허전하고도 서운했다.
유년 시절 젖니를 뽑고 나서 했던 행동이 새삼 떠오른다. 뽑아낸 윗니를 지붕 위로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헌 이는 가져가고 새 이는 빨리 다오.”
라고 구전동요를 불렀다. 이렇게 하면 까치를 통해 하느님께 헌 이는 반납하고 새 이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랫니를 뽑았을 때는 아궁이 앞에 서서 두 발을 최대한 가지런히 하고 두 손을 모아 치아를 던져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야만 치아가 예쁘고 바르게 난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는 나름 아주 거룩한 의식을 치르듯 했다.
막니를 일명 ‘사랑니’라고도 한다. 사랑을 알만한 열일곱 여덟 살쯤에 나는 어금니란 뜻에서 ‘사랑니’라 부르는 걸까. 처음 막니가 나올 때, 몇날며칠 반복되는 통증에 잇몸이 부어올라 눈물 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말도 어눌하게 나오고 뺨이 부어올라 손으로 가리고 다녔었다. 그때는 살을 뚫고 올라오는 막니앓이쯤은 무작정 참아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지금 같았으면 당장에 치과로 달려가 뽑아버렸을 것이다.
그토록 힘들게 솟아났던 막니를 뽑았다. 지혈시키려 막아놓은 거즈에서 배어나온 핏물과 침이 입안에 자꾸 고인다. 간호사는 뱉지 말고 삼키라고 했지만, 피비린내가 역겨워 자꾸 뱉어냈다. 한두 시간 후에 거즈를 빼고 나니 이상하게 말이 새는 듯하다. 한쪽 뺨이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혀가 빠진 막니의 빈자리로 자꾸 가닿는다. 혹여 막니가 빠질 때 사랑의 감정도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다 아쉬움마저 든다.
칫솔이 닿지 않는다고 등한시했던 막니가 제자리에 있을 때는 몰랐다. 뽑고 나니 말을 할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반대쪽으로만 씹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뜬금없이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빈자리에는 늘 뭔가가 채워지기 마련인가보다. 막니가 빠진 자리에 밥 알갱이도 들어가고 과일 조각도 들어간다. 급기야는 장난삼아 씹던 껌을 돌돌 말아 끼워보기도 한다. 찌릿한 통증이 묘한 쾌감을 부른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이복희 작가(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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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출신이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시집으로 ‘오래된 거미집’, 수필집으로 ‘내성천에서는 은어도 별이 된다’를 출간했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작가로 경북 구미와 경기 동탄을 오르내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