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브 융(1875~1961, 스위스 정신의학자, 심리분석의 창시자)을 기억합니다.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 얼굴을 말하는 ‘페르소나’(persona, πρόσωπον, 배우에 의해 연기되는 등장인물, 연극에서 쓰는 탈을 뜻함)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그 뒷면, 즉 개인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상징하면서 공격성, 이기심, 나약함, 질투 등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자아가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성격 특성, 감정, 충동 등을 말하는 ‘그림자(shadow)이론’은 지금도 한 사람의 정신분석이나 판단의 차원에서,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나 문제를 보는 데 중요한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후대의 학자들은 “페르소나는 우리의 자아이상(ichideal, ego-ideal)에 대응하는 것이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에 맞지 않는 자신의 측면을 억누른다. 그러면 그 측면은 우리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고 여기는 그림자가 된다”고 이야기 하여 누구에게나 혹은 어느 사회에서나 밝은 면(사회적으로 나타내려는)과 어두운 본성이 상호 존재하며 필요할 때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베레나 카스트 『그림자에 민감해지기』, 이상희 역, 두시의 나무, 2025, p18-19 갈무리)
개인적으로 누구나 사회적 가면(페르소나)과 그 뒤에 숨겨진 진정한 자아의 어두운 면(그림자)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사는 구미라는 사회, 집단지역은 어떤 모습일까요? 누구나 말하는 구미의 모습, 혹은 구미를 상징하는 사람이나 정신은 무엇이며 동시에 구미를 어둡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페르소나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형성(내가 어떤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춰지는지)되는 반면, 그림자는 개인의 본질적인 측면(꾸미지 않은 본질, 진정한 자아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구미를 대입하면 구미의 페르소나는? 구미의 그림자는? 무엇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이라고 알고 행동했는지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미라면 바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되고, 부하의 충고 살해를 당한 지 거의 반세기를 흘러갔지만,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한다)이라는 말처럼 아직도 그의 이름은 구미를 넘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치가, 세도가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조금도 약해지거나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출사표를 내는 사람의 많은 수는 ‘박정희처럼, 박정희를 멘토로’ 하며 그의 페르소나와 같은 모습으로 변장하려 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그의 그림자(일본군 사관학교 출신, 일황께 충성맹세, 군사혁명으로 유신 통치, 헌정질서 파괴 및 종신 대통령 추구, 개발 독재, 여성편력...등)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거론하면 주위에 질시와 왕따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구미의 모습이 아닌가요? 의도적인가요? 아니면 어떤 이론적인 근거로 구미는 박정희라는 페르소나만이 있지 그림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지요? 학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그림자를 강력히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의 명예가 파괴되고 자기애가 무너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림자 앞에 똑 바로 설 수 없고 그림자를 숨기거나 부정하려 한다면 다른 이의 조종과 협박에 취약해질 수밖에”(같은 책 p55) 없기 때문인가요? 보수우익의 심장이라고 자처(?)하는 입장에서 말도 되지 않는 지역 정통성이 무너질까 두려워한 결과인가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페르소나’(같은 책 저자의 명명, p75)처럼 구미 사람의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모습(방향, 모델)이라고 했던 ‘일제 하에서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혈서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서한 자’입니까? 아니라면 ‘구한말 정규 군인도 아니면서 일본군과 전쟁을 선포하고 정미의병 당시 13도 창의군이 계획했던, 서울 진공 작전의 선봉장 직접 싸운 의병장이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가족 모두가 이역 추운 벌판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쳤던, 그리하여 그의 조카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 놓아 부르게 할 분1) 입니까? 언제까지 구미를 산업이니 기계, 공업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규정하려 합니까? 구미를 넘어 전국적으로 추앙되고 있는 독립투사, 영웅들, 역사를 빛낸 이들을 묻어두고, 단순히 기념일에 행사용으로 치부할 것입니까?
필자는 짧은 기간(2021.3~2023.2) 구미도시재생 지원 센터장을 맡으면서 참으로 많은 구미의 아름다움, 구미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초등학교 선생이 자살하는 문제, 교권의 추락 등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은 길제선생을 만나야만 가능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구미에 교원 연수원이 존재했던 이유가 분명합니다.
동시에 금오산을 보면 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목숨 바쳐 지키신 노년을 보낸 사명대사의 칠언절귀(’금오산 아래 병들어 누워 운중의 재조를 생각하면서‘ 嶺南金烏下 臥病 憶 雲中才調)가 오늘의 우리 모습에 대한 되돌아봄을 말해주시는 듯합니다. 둘째 국악인 박녹주, 한국 카프 영화인 김유영을 품었던 고아읍, 박희광 열사와 김정묵 선생의 원평동, 봉곡동, 구미독립운동의 산실이며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최재화 목사를 생각합니다. 옥중자결의 영웅 장진홍 열사를 낳았던 옥계동, 구미에서 최초이면서 4회 연속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진평동,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 도개면, 황진박 열사가 떠올려지는 산동면, 장현광 선생의 인의동, 한국전쟁 최후의 교두보 비산동 등 일일이 매거하기에도 벅찬 얼굴들과 사연이 있는 구미를 하나로 묶어 구구현장, 나라를 위해 몸부림쳐 외쳤던 곳.
구미를 하나로 묶어 만들어 봅시다. 과거처럼 공단도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구미라는 얼굴(페르소나)에 언제까지 목메고 있을 것입니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정 구미의 지금을 발견하고 다시 도약해야 할 길을 찾는다면 우국충정, 구국의 혼이 살아있는 구미를 찾아봅시다.
1) 이육사의 시 광야의 마지막 부분. 작가 박도는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에서 그는 허형식 장군을 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