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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획] 62년 만에 경북2호 대통령 탄생시킨 안동 정치사...구미 박정희·안동 이재명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5.06.08 12:52 수정 2025.06.08 13:29

경제대국의 경북1호 구미 박정희 대통령
경북2호 안동 이재명 대통령의 과제는⇁박정희 대통령 업적 승계한 경제대국 대한민국 &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건설


↑↑ 왼쪽부터 박정희 대통령(구미)과 이재명 대통령(안동).
[재판매 및 DB금지. 2025.6.8=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 1963년 8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해 민주공화당에 입당한 구미 출신 박정희 후보는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구미)’의 저력을 현대 정치사에 입증해 보인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해 12월 취임한 ‘경북 1호 대통령’ 박정희에게는 1979년 10월 26일 서거하기까지 16년간 구미출신이라는 대명사가 따라다녔다. 독재와 인권 탄압이라는 불명예의 그늘도 없지 않았지만, ‘보릿고개를 극복한 경제대국화의 초석’은 그늘을 제거하는 ‘햇살’ 역할을 하기에 족했다.
더군다나 한센인(문둥병) 환자들의 집단 거주지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찾아 그들을 끌어안던 육영수 여사의 휴머니즘은 ‘박정희의 국정 철학’을 올곧은 방향으로 잡아끄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이제 경북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62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46년 만인 2025년 6월 4일 제2호 이재명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 안동, 그리고 월곡초 삼계분교장 초등학교
기초단체장⇁광역단체장⇁대통령...풀뿌리 자치단체장이 대통령에 오른 역사적 사건


안동시 예안면에 접어들어 시골길을 굽이치면 월곡초등학교 삼계분교장 초등학교가 외롭게 터를 잡고 있다. 이곳이 바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길러낸 곳이다.
유년 시절 그가 맞닥뜨린 삶은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는 가난이었다. 상계초교 졸업장을 마지막으로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한 그는, 한파가 스멀스멀 흘러드는 가난한 둥지였지만 마음만은 편했던 정든 고향 안동 예안을 뒤로한 채 상경길에 올랐다.
저녁노을이 밀려드는 동구 밖에서 쏟아내는 어머니의 눈물이 어린 가슴을 하염없이 미어져 내리게 한 출향길이었다.

이후, 소년공으로 시작해 검정고시, 사법시험에 합격과 그는 민변 소속 변호사 활동과 시민운동을 거치면서 약자 지향의 인물로 성장했다. 이어 성남시장을 거쳐 재선 경기지사를 끝으로 대통령에 도전한 그는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입지전적의 역사를 썼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을 길러낸 경북 안동,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을 있게 한 독립운동의 고향 안동, 해방 이후 2025년 지금까지 써 내린 굴곡의 안동 정치사는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야성의 고향 안동]
근현대 정치사를 돌아보면 안동은 경북지역에서 야성의 정서가 강한 곳이다. 역대 안동 총선 의 역사 속에도 야성의 물결은 고비마다 위세를 발휘했다. 진보 성향의 박해충 의원을 4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안동이었고, 박해충 의원의 비서인 오경의 의원을 배출한 곳도 안동이었다.

야성의 도시를 입증케 한 역대 안동 국회의원
⇁박해충 의원

2005년 생을 마감했다.
1980년 5.17 계엄 직후 안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정치규제를 당했다. 4년 후 정치규제에서 해금됐다.
1987년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때 바로 따라가지 않았고 신한민주당에 남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정계를 은퇴했다. 아홉 번 출마해 네 번 당선될 만큼 안동 정치사의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야당에 발을 담그면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자주 교감을 나누곤 했다. 지연(경북 안동과 구미)의 힘이 이념보다 강했던 탓일까.

△오경의 의원
1970년대 신민당 박해충 국회의원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KBS에서 씨름 경기를 해설하기도 했다. 3번 도전 끝에 당선되면서 초선의원이 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안동시 선거구에 출마해 전국구 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권중동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권중동 후보의 돈 봉투 발송사고가 호재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한국마사회 회장에 임명됐고, 1996년까지 직을 이어갔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씨름연맹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안동 총선 관전 포인트
⇁제3대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임기 4년

갑구에서는 국민회 권오종 후보가 29.47%를 얻으면서 세 번에 걸쳐 도전장을 내민 자유당 권중순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거뒀다. 391표 차였다.
을구에서는 무소속 김익기 후보가 40.82%를 얻으면서 27.52%를 얻은 무소속 박해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후일 신민당 상도동계 중진급 의원으로서 박정희 대통령과도 막역한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박해충 의원의 정치사에 처음으로 명함을 내민 선거였다.

⇁제4대 -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임기 4년
갑구에서는 민주당 권오종 후보가 39.98%를 얻으면서 25%의 자유한국당 유시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자유당 김익기 후보가 42.40%를 얻으면서 39.97%를 얻은 민주당 박해충 후보를 2,17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제5대 –참의원 선거 1960년 7월 29일 1961년 5월 16일 임기 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1961년 5월 26일 - 1963년 12월 16일
갑구에서는 안동 국회의원 역사상 최대인 11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무소속 김시현 후보가 10%대인 16.18%를 얻고 당선됐다.
을구에서는 세 번에 걸친 도전 끝에 민주당 박해충 후보가 39.12%를 얻으면서 차점자인 기타단체 유림 후보가 얻은 15.50%보다 2배 이상 앞서면서 당선됐다.

⇁제8대- 1971년 7월 1일- 1972년 10월 17일 임기 4년, 비상국무회의 1972년 10월 18일- 1973년 3월 11일
8대 선거는 7대 선거의 서력 전이었다. 패자는 승자, 승자는 패자가 되어야 했다. 민주당 박해충 후보가 47.79%를 얻으면서 28.68%를 얻은 공화당 김대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대진 후보는 김관용 전 구미시장의 장인이다.

⇁제9대 -1973년 3월 12일- 1979년 3월 11일 임기 6년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공화당과 신민당 등 정치대결과 안동과 의성 간의 지역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의성 출신인 공화당 김상연 후보는 28.43%, 안동 출신의 신민당 박해충 후보는 27.84%를 획득했다. 1천16표로 차로 1, 2위가 가려지면서 동반 당선됐다

⇁제10대 - 1979년 3월 12일-1980년 10월 27일 임기 6년, 입법회의(1980년 10월 26일 - 1981년 4월 10일)
안동시와 안동군, 의성군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9대와 동일하게 공화당과 신민당 등 정치대결과 안동과 의성 간의 지역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의성 출신인 공화당 김상연 후보는 30.41%, 안동 출신의 신민당 박해충 후보는 27.58%를 획득했다.
험지인 안동에서 야당 출신 박해충 후보는 9번의 도전 끝에 4번 당선되면서 4선 의원의 기록을 남겼다.
13대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15.10%를 얻으면서 3위에 머물러야 했다.
1970년대까지 안동은 민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누를 만큼 야성의 도시로서 건재를 과시했다.

⇁제14대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안동군에서 각각 1명 등 2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안동시에는 무소속 김길홍 후보가 39.59%를 얻으면서 29.08%를 얻은 무소속 권중동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안동군에서는 민자당 류돈우 후보가 52.83%를 얻으면서 36.67%를 얻은 통일국민당 김시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15대-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하면서 갑구, 을구에서 각각 1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갑구에서는 통합민주당 권오을 후보가 39.71%를 획득하면서 33.10%를 얻은 신한국당 김길호 후보를 눌렀다.
을구에서는 무소속 권정달 후보가 51.13%를 얻으면서 31.56%를 얻은 신한국당 류돈우 후보를 눌렀다.

⇁제18대 -2008년 5월 30일 -2012년 5월 29일 임기 4년
친이계에 의한 친박계 공천학살이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아서 돌아오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친박계가 선전했다.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광림 후보가 49.68%를 얻으면서 34.67%를 얻은 한나라당 김용범 후보를 눌렀다.

⇁제19대 -2012년 5월 30일 -2016년 5월 29일 임기 4년
새누리당 김광림 후보가 6만3,562표, 득표율 82.49%로 당선됐다. 민주통합당 이성노 후보는 1만3,490표, 17.50%를 얻었다. 야성의 도시 안동에서 진보당 후보로선 아픔이었다.

⇁제20대 -2016년 5월 30일 -2020년 5월 29일 임기 4년
새누리당 김광림 후보 5만5,120표, 68.66%였으며, 민주통합당 이성호 후보는 1만2,878표로 16.02%였다.
김광림 의원의 전성기였다.

⇁제21대 -2020년 5월 30일 -2024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예천군 통합 선거구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삼걸 후보가 3만2,293표, 26.14%를 얻으면서 선전했으나 미래통합당 김형동 후보의 5만8,183표, 47.10%에 비해서는 역부족이었다.
이외에도 우리공화당 박민우 후보 0.85%, 국가혁명배금당 신효주 후보 0.76%, 무소속 권오을 후보 4.80%였다.

⇁제22대 –2024년 5월 30일-2028년 5월 29일 임기 4년
안동시와 예천군 통합 선거구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상우 후보가 3만 4,748표,28.93표을 얻으며 선전핶으나 국민의힘 김형동 후보의 8만 1,040표, 67.47%에 역부족이었다.
이외에도 자유통일당 김동훈 후보 1,991표, 1.65%, 무소속 김윤환 후보 2,328표, 1.93%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형동 의원은 친한계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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