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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5·18 국립묘역 [사진 출처 -디스토리 문경사랑] |
“정말 비가 쏟아지겠어”(한강,『소년이 온다』,㈜창비, 2014. P21)라고 10년전 했던 작가의 말처럼. 광주로 가는 버스 안은 초여름도 아닌데도 후끈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검은 양복을 차려입었다. 몇 번이나 매년 이맘때 광주를 찾았을 때처럼. 혹 빠지면 숙제를 하지 않고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을 보는 마음과 같아서인지, 쉽지만은 않은 마음이지만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처럼 그 길을 찾았다. 예전에는 광주로 가는 길이 수월치 않은 만큼 더 많이 아파할 수 있었지만, 고속도로가 넓어진 이후부터는 줄어든 시간만큼 차 안에서의 기대와 연민, 안타까움과 아까움은 그만큼 줄었다.
올해는 이 길을 갈 때는 꼭 마련했던 짐에 책 한 권을 더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 없다. ....(중략)...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한강,『빛과 실』,㈜문학과 지성사, 2025.4. p13~14) 작가는 5.18 그때 광주의 모습을 훗날 이렇게 적었다. 버스 안에서 조용하게 이어지는 음성들에 같이 입을 맞추어 따라간다.“~사아랑도 며엉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 순간이 아득하다, 촛불을 켠 듯 희미한 가운데 스러지는 영혼을 본다. 그리고“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 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소년이 온다』, P13).라고 한 작가의 말을 다시 생각하면서,아니면 오늘이라도, 지금 가는 길에 그 혼들이 빗줄기와 같이 마중 나오지는 않았을까? 차창을 연신 살핀다. 재단 앞에서,돌비석 하나하나가,금남로의 여기저기에 나타난 상흔들이,처절했던 기록의 자국 자국이, 45년을 지난 발자취가 이리도 선명하고,이리도 강하게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5월 광주는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이런 엄숙한 소용돌이 가운데서,계엄이란 전 국민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던 괴물을 어렵사리 처단했던 기억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45년 전의 아픔을 다시 불어오는 아픔을 가져온 괴수들이,총칼로 피의 재단을 만든 정호용씨를 선대위원장으로 위촉했단다. 비록 몇 시간 후에 취소하였지만, 핑계가 웃기는 정도가 아닌 미친 상태가 아니면 불가한 모습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위촉장을 ‘몰랐다’하고, 비서실장이 ‘보고 하지 않고 실수 했다’고 하면서도,한마디 사과도 없이 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 오르듯 한다. 45주년 5.18민주 영영 추모일을 하루 앞두고 있는데 두엄데미 앞에서 유세차하고 축문 읽는 듯 가소롭다.혼불이 두렵지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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