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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복희 시인의 시집ᐧ오래된 거미집 / 연재 28 – 흰 꽃 흩날리는 날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05.11 15:36 수정 2025.05.11 15:43


진득한 닭똥 쌓인 자두나무 아래
싸리나무로 엮은 닭장 안
암탉 한 마리 쪼그려 앉아 뭄 풀고 있네요

과원에 먹장구름이 잠시 머물다 지나갔어요
임시 화장실에 기어든 미혼모 김양
핏물 흥건히 고인 화장실 바닥에
작은 핏덩이를 신문지로 돌돌 말아 놓고 어쩔 줄 모르네요

환기창으로 비집고 들어온 오후 빛 위로
핏덩이를 살며시 밀어놓은 그녀
문짝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누른 벽에 붙은 전단을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네요
미 혼 모 신 생 아 입 양
활자에 닿아 눈물이 뚝뚝 끊어지네요

돌아서기에 늦은 발걸음 무겁게 떼며
김양은 모든 것이 가벼워지길 원했을까요
귓속 파고드는 핏덩이 울음소리에
몇 번이나 뒤돌아봤겠지요

핏덩이가 좋은 집안에 입양되길 바라는 그녀
팅팅 불은 젖은 한없이 눈물처럼 흘러내렸겠지요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내내 귓가에 맴돌아요

과원의 오후는 온통 흰 자두꽃으로 휘날리고 있어요


이복희 시인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구미에 터를 잡았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오래된 거미집’은 이복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시인의 작품‘ 오래된 거미집’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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