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영 맛이 없을 때
배롱나무 아래에 가서
주전부리 라면을 떠올려 보는 것이지
선생님 눈길 피해
상처투성이 책상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손
꼬불꼬불 영어책 뒤에 감춰둔
생라면, 몰래 입 안에 넣어도
좀체 꼬부라지지 않던 발음들
이쯤에서 교정하고 싶어지지
비워낸 빈 봉지들 팔랑 바람에 날아와
시들어진 인생에 걸릴 때
칠월 배롱나무 휘어진 가지는 냄비 세상
바글바글 꽃을 끓이는 것이지
뭔지 모르는 인생살이 흔들릴 만치 흔들려도 결국,
나무의 관절이 터트린 꽃망울
인생, 그거 주먹으로 살살 부수다 보면
튀어 나가 흔들릴 만치 흔들려도 결국.
나무의 관절이 터트린 꽃망울
인생, 그거 주먹으로 살살 부수다 보면
튀어 나가 흔들림 속에 머릴 풀고
짭조름한 후회의 맛에도
어떻게든 길들어야 하지
내 생의 후반부는 언제쯤 제대로
작열하듯 꽃의 뚜껑을 열까
이복희 시인→→→
↑↑ 이복희 시인 [사진 제공 = 작가] |
‘오래된 거미집’은 이복희 시인의 첫 시집이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시인의 작품‘ 오래된 거미집’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