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김경홍] 10년 전 그해 늦가을 밤, 하산한 비봉산 바람은 을씨년스러웠다.
선산 오일장과 맞닿은 한적한 포장마차에서 헙수룩한 늙은 취객이 야은 길재를 불러들였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야은 길재의 고향 선산에서 취객이 읊는 ‘오백 년 도읍지’가 가슴을 때렸다.
1992년 고향 선산을 뒤로했다가 18년 만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그 늙은 출향인이 간만에 벗과 마주하고 앉아 소주를 털어놓은 심정이 우울할 만도 했다.
그가 고향을 떠나 있던 세월 동안 선산은 1995년 도농통합이라는 격정의 역사를 써 내렸다. 선산군의 자리에 구미시가 꿰차고 들어선 사실상의 흡수통합, 그래서 연일 경북도청으로 몰려가 삭발을 하고, 땅을 치며 ‘통합 무효’를 울부짖을 만도 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수백 년 동안의 성벽을 허물고 밀어닥친 통합의 물살은 선산을 먹여 살린 곡창을 허물고 자존심마저 무너뜨렸다.
선산경찰서와 선산소방서가 구미시로 흡수되면서 사라졌는가 하면 등기소와 담배인삼공사(현 KT&G), 통신공사(현 KT), 지적공사(현 국토정보공사), 선산우체국(현 구미우체국)이 선산을 떠났다.
공공기관으로부터 비롯된 소위 흡수통합의 바람은 체육계와 사회단체로까지 확산해 나갔다. 선산체육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와 자유총연맹, 새마을회 등도 시내권으로 향하는 이사 차량에 정든 역사를 실었다.
날개 잃은 인구는 끝도 없이 추락했고, 몰아닥친 바람은 상가의 문을 닫아걸게 했다. 선산善山, 고독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아픔이었다.
1995년 건립용역과 실시설계를 완료한 구미시는 1996년 선산에 소재한 농업기술센터 구청사 부지에 시립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시설비 30억여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시 지역 시의원들이 반발로 전액 삭감돼 백지화되면서 선산민들은 또 다른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농통합 여파가 선산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밀어내자, 2005년 당시 김관용 시장은 최소한의 보상을 위해 2005년 선산읍 노상리 일원을 종합레저스포츠타운 입지로 선정하고 2007년 6월 타당성 용역을 완료했다. 이어 2010년 7월 노상리 일대 부지를 보전관리지역과 농림지역에서 도시관리계획 유원지 지역으로 변경하고 2010년 노상리 일원의 사유지 2만 2,000여 제곱미터의 토지를 모두 매입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 구미시는 ‘세입 감소와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할 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구미종합레저스포츠타운 조성사업은 여의찮다.“며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1995년 선산을 휩쓴 통합의 물살은 2020년 들어서도 잦아들지 않았다.
2020년도 당초 예산을 심사한 2019년 4월 의회 예산특별위원이던 양진오 의원은 격하게 반응했다. 전년도 대비 당초 예산 규모가 3.98% 증액되었는데도 농업기술센터와 선산출장소 예산이 각각 16%, 10% 감액됐기 때문이었다.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선산지역의 농업 농촌 예산은 10%대 이하로 추락했습니다. 통합 구미시는 시·군(도·농) 통합 정신도 버리고, 농업과 농촌도 버리고 갈 것입니까. 전체 예산 규모가 증액됐는데도 농업 농촌 예산을 감액한 통합시의 농업 농촌 시책 사업은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27년간의 고독의 문을 두들긴 그는 누구?
2022년 7월, 민선 8기 통합 구미시는 27년간 닫혀있던 고독한 선산의 문을 두들겼다. 통합 이후 4반 세기를 넘긴 27년 만의 일이었다.
상하수도 사업소(현 상하수도사업본부) 선산출장소 확장 이전 확정 발표는 선산을 들뜨게 할 만큼의 빅 뉴스였다. 떠나는 공공기관과 시 단위 체육·사회단체의 이사짐 트럭을 지켜보며 가슴을 조이던 날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선산출장소 폐지와 농축산국으로의 조직 축소의 압력과 맞서며 밤잠을 설쳐야 했던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상하수도사업소의 확장 이전을 대기업 리쇼어링(해외 제조기업의 생산 기지 국내 복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뺏기기만 했던 굴곡의 역사를 살아온 그들에겐 충격적인 사건,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사업 중단을 선언한 120만여 평의 종합레저스포츠타운 입지에 320억 규모의 선산산림휴양타운 조성을 확정하고 초기 자금으로 100억 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확보한 것도 민선 8기 김장호 시장과 양진오 부의장이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이처럼 선산출장소 확장에 따른 사실상의 구미시 제2청사 시대 개막과 선산산림휴양타운 조성에 의미가 부여되는 까닭은 흡수통합으로 변질된 도농통합의 근본 취지가 비로소 27년 만에 균형발전의 서곡을 통해 출발을 알렸다는 점이다.
선산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2024년 들어 겹경사를 맞았다. 선산 지역구라는 특정 지역구에서 최초의 지역 출신인 강명구 국회의원 배출과 구미시의회 역사상 특정 지역구에서 최초의 의장단(부의장 양진오), 상임위원장(기획행정위원장 장미경) 공동 배출이 그 포인트이다.
그러나 겹경사를 환호하는 선산민들의 마음은 선산을 위해 정치력과 행정력을 편중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더도 덜도 말고 선산 소외론‘을 불식시키는 답을 통합구미시의 균형 발전으로부터 찾아달라는 주문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