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김경홍]“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 네, 누구시라고...뭐 그날이 그날이죠”
한층 높아진 하늘, 금오산 넘어 아스라이 멀어지는 햇살에 비친 얼굴에 더 깊은 주름살이 패였다.
“식당 일을 하며 끼니 겨우 때워요. 추석 넘기면 다시 붕어빵 구워야죠. 뭐”
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의 손에 매달린 딸이 휘청였다.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초겨울 초입이었다. 길거리의 리어카 붕어빵 가게에서 만난 엄마네. 그날 그녀는 한때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란한 가족. 여느 때처럼 엄마네 식탁에는 가을 노을이 곱게 밀물졌다. 초인종을 울리며 걸어 들어온 옛날 통닭 한 마리, 어린 소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시냇물로 찰랑거렸다. 식탁에 턱을 괸 엄마의 얼굴은 함박웃음이었다.
하지만 늦은 밤, 아빠의 취기가 마룻바닥에 아주 낮게 무너졌다. 문틈 새로 흘러나온 엄마의 긴 흐느낌이 아빠를 일으켜 세웠다. 이불을 뒤집어쓴 소녀, 손등에 눈물을 뿌렸다. 현관문을 비집고 들어선 늦가을, 차압 딱지를 토해냈다.
코로나는 아빠를 벼랑으로 내몰았고, 고금리는 고달픈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직장을 그만둔 그는 퇴직금과 대출금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하지만, 어렵게 문을 연 식당으로 코로나가 몰려들었다. 손님들은 등을 돌렸다. 그 빈 자리에는 대출금 이자 납부 독촉장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어느 날 식당 문을 폐쇄하고 귀가한 아파트 안은 온통 빨간 차압 딱지였다.
엄마의 낡은 리어카가 낙엽을 헤쳤다. 클랙션이 울려대는 대로, 아슬하게 건너온 리어카가 봉곡동 뒷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그 엄마가, 많이도 야윈 손이 붕어빵을 만들어 냈다. 금오산 산길을 가쁘게 걸어 온 초겨울이 눈발을 흩뿌렸다. 붕어빵을 만들어 내는 낡은 손이 바삐 움직였다.
추워야 사는 사람들, 엄마네도 어느새 그 세상의 주민이 되어 있었다. 마치 외딴섬처럼.
지난해 늦가을 만난 봉곡동 붕어빵 엄마네, 일 년 후인 올해의 삶도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세상과 더 멀어진 외딴섬. 더 많아지는 외딴섬들.
주기느니, 살리느니 삿대를 빼 드는 정치, 내 책임이 아니라 당신 책임이라는 정부, 마이크를 잡으면 자화자찬으로 시작해 끝을 내는 생활정치, 혼자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에고이스트들.
세상은 일 년 전보다 더 거센 파도였다. 자기중심적 파도들이 밀어내는 외딴섬, ‘나 홀로의 세상’에서 올해 겨울도 엄마네 삶은 온전할까.
머지않아 들이닥칠 올겨울 한파의 밤에도 붕어빵 엄마네들은 밤길을 밟으며 어쩌면 가슴에 꾹꾹 눌러 담은 눈물을, ‘엉엉’ 토해낼지 모른다. 토해낼 것이다.
왕도정치· 왕도행정의 첫걸음은 민생, 약자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도모하고, 패도정치·패도행정은 어짊과 의로움을 무시한 강자 우선의 길을 고집한다...잘함을 내 탓으로 돌리고, 못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성을 즐긴다.
맹자 편은 이러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혜왕이 물었다.
“짐은 온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리려고 항상 노력해 왔소. 그런데도 백성들은 늘 불만이 가득하오.”
맹자가 답했다.
“폐하께서는 개나 돼지(강자들)들이 백성의 식량을 마구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고도 말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굶어 죽는 시체가 길가에 쌓여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굶어 죽는 데도 ‘흉년이 들어 그러니 짐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칼이 죽인 것이지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폐하께서 백성의 굶주림이 흉년 탓이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군주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 나라의 정치와 행정은 언제까지 “코로나가 휩쓸어 민생이 어려우니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할 것인가. 우리들 역시 언제까지 코로나의 한파가 엄마네 가족을 길거리로 나서게 했으니, 우리에게 부조할 사회적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패도정치·패도행정, 에고이스트의 파도가 엄마네를 세상과 더 멀어진 외딴섬으로 밀어내는 2024년 8월 그믐.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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