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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새벽칼럼] 노을길, 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세상은 적막강산?...이 착잡한 보통명사 앞에서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8.10 14:18 수정 2024.08.15 09:00

[[분석·기획·칼럼 전문 매체/ k문화타임즈=발행인 김경홍] “사랑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더라/살아보니 사랑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더라/장롱 속에 아주 깊숙이 들여놓을 보석이 아니더라/ 꺼내놓고 물 쓰듯 써야 하는 게 사랑이더라

물 젖은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가라앉은 남편의 등을 다독여 주는 게 사랑이더라/ 살면 얼마를 더 살고/ 누리면 얼마를 더 누리겠나

마시고 싶은 술을 한두 번 건너뛰고 /텔레비전이나 유트브에 덜 집착하면서/ 밥상이나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혹은 턱을 괴고 마주 보며/ 그날의 애틋함을 낚아 올리는 게 사랑이더라

아주 길게 혹은 너무나도 짧게 / 오르내려 걸어온 숨 가쁜 길/잘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보니/ 사랑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더라/ 많은 돈은 없지만 있는 만큼 나눠 쓰고/ 불편은 할지언정 오순도순 세상을 펴고 앉아/ 마음을 나누는 게 사랑이더라
김경홍 시인의 시 <사랑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더라> 中에서


↑↑ 구미시 고아읍 강정숲. 금계국이 곱게 피어있다.
[사진 제공= 시인 조경래]

금오산 자락 넘어 여름 해가 으스러진다. 푸르던 것들이 어스름한 황혼에 등을 기댄다. 아파트들이 어둠을 밀어낸다. 안간힘을 쏟는다. 마치 저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쳐댔던 가쁜 호흡처럼...

현관문을 열었다. 흩어진 신발을 밀어내고 거실로 들어선 60대.
“밥은...”
“안 먹었어...”
“씻고 와서 밥 먹어”
“좀 쉴게”

안방 문을 닫는 둔탁한 소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릇을 씻어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관 두기로 했다.
60대의 삶이 을씨년스러운 방. 왠지 울적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침, 거실로 걸어 나온 나의 60대는 계란말이와 한 컵의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거리는, 골목길이 쏟아내는 세대들로 뒤엉킨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나만의 공간을 찾았다.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공간을 빠져나간다. 젊은 세대들이 코를 틀어막고 노려본다.
“오늘은 어느 곳에서 홀로의 공간을 틀까.”
마음속에 숨어있던 60대가 걸어 나와 눈물 몇 모금을 건넨다. 여덟 시 30분. 마지막 남아있는 여생의 힘을 쏟아부어야 할 시간, 60대를 재촉한다.

황창현 신부는 종종 노부부를 소재로 한 강연을 한다. 그날도 그랬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죠. 노부부가 함께 사는 세상은 적막강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만의 세상은 막막강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만의 세상은 금수강산이라고들 합디다. ”
그 말을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한마디 더 보탠다.
“밤늦게 돌아온 나이 든 부인이 남편에게 짜증을 내더랍니다. ”
“왜요?”
“커피팅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의 남편은 다 떠났는데 자기 남편만 살아있으니, 그랬다죠.”
함께 웃었지만, 가슴 저 먼 길에서 안개의 고독이 자욱하게 밀려든다.

우리들은 누구나 설레는 사랑으로 처음을 시작했다. 돌아보면 엊그제 같기만 하다. 하지만 그 이슬처럼 청량했던 사랑의 얼굴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회색빛으로 교체돼 갔다. 그 아이들이 곱게 틀었던 사랑의 둥지를 차고 들면서 밖으로 걸어 나온 젊은 부부들.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는 축 늘어졌다. 자고 나면 들이닥치는 독촉장들. 먹여 살려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과제를 풀어내면서 젊은 날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강 하류에 도착한 삶은 더 고달팠다. 자식의 취직과 결혼 걱정을 해야 하는 장년의 삶. 그들은 ‘아파도 누울 자유조차 없는 부자유’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틈새로 불어닥친 바람은 젊은 날 한때, 함께 괴로워하며 피워낸 애틋함마저 떨어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각자의 길로 들어섰다. 가끔 ‘죽이느니, 살리느니 악을 쓰는 소리들’이 귓전을 스쳐 지나기도 했다. 갈수록 그 소리는 습성이 돼 갔다.

그래서 그들은 황창연 신부의 말처럼 “함께 사는 세상은 적막강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만의 세상은 막막강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만의 세상은 금수강산”이라는 안타까운 보통명사를 꿰맞추듯 여생의 길을 간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서 곱씹어본다. 세상을 떠난 인연, 다시 돌아온 적이 있나?. 우리는 모두 엄연한 생명의 질서 속에 놓인 존재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좋은 일만 떠올리며 살아가는 노년의 삶은 어떨까.
그윽한 그리움을 낚아 올려 애틋한 정을 만들고, 그 정을 쥐어짜면서 길을 가는 곱고 아름다운 동행은 어떨까. 밉지만 미워해선 안 될 인연이다. 그러므로 노부부는 아주 곱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그들만의 잔치여야 한다. 결국은 자식도 남이다. 부부는 0촌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렇게 바꿔보자.
“노부부가 함께 사는 세상은 금수강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만의 세상은 고독강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만의 세상도 고독강산


외로워 마라/사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 외롭다고 끄억끄억 우지마라/ 사랑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더라/멀리 걸어 아주 멀리 걸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 그러므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가야 할 /곱고 고운 인연들
김경홍 시인의 시 <사랑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더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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