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기획·칼럼 전문 매체/ k문화타임즈=발행인 김경홍] 권력만큼 허망한 게 없다. 권력을 쥐고 있으면 세상이 모두 다 제 것 같지만, 권력을 놓는 순간 세상은 맹수로 돌변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란’ 말은 권력자, 심지어 부부간에도 회자하는 일상언어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다. 12년 간의 구미시장직을 마감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남유진 전 시장의 회고가 인상 깊다.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돌아보니 한낱 꿈만 같더라.”
권력자가 권력을 놓는 순간 세상은 재판관이 된다. 그들은 권력의 울담 밖으로 떠난 권력자를 그리움의 대상이거나 증오의 존재로 판결한다. 그래서 권력 밖에서 ‘수구초심’ 하지만, 어떤 이는 그리움의 품속으로 귀향하고, 또 어떤 이는 증오의 풍파에 떠밀려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게 된다.
권력의 세계를 떠난 지도자의 평가는 지역 경기가 어려울 때 적나라하게 평가된다. 권력의 삶이 사익이었느냐 공익이었느냐, 인간적이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평점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린다. 업적과 인간 됨됨이로 평가한단 말이다.
7월 27일은 재선을 지낸 박세직 전 의원의 15주기였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많은 구미시민은 그를 그리워했다. 주민과 부하직원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던 그는 구미가 어려웠던 1990년대 시절, 큰 선물을 안겼다.
당시, 국민회의 집권 당시의 구미공단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들었다. OB맥주 구미공장 광주 이전을 시작으로 비롯된 공동화의 바람은‘굴뚝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는 황량한 구미산단’의 처참한 풍경을 그려냈다. 이러자, 시민들은 1996년 9월 30일 3공단 조성과 함께 계획만 수립한 채 요지부동인 4산단 조기 조성을 염원했다. 하지만 기존 산단이 공동화하는 상황에서 4공단 착공 바람은 과유불급이었다. 특히 수자원공사가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을 경우 자력으로 4공단을 조성할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희망의 프로젝트는 백지화 위기에 내몰렸다.
이처럼 구미산단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시민들은‘구미경제 살리기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가동했고, 자민련 부총재를 맡고 있던 박세직 의원은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의 핫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4산단 조기 조성을 위한 수순을 용의주도하게 밟아나갔다. 이 과정에서 4산단 조성에 정치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박 의원은 4산단 착공식 당일, 대구에 내려와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일정에 잡혀있지도 않던 착공식에 참석시키는 기지를 발휘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적막강산인 4공단에 다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3선을 지낸 김태환 전 의원도 그리움의 대상이다. 어머니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힐 만큼 심성이 나약하고 주민에겐 ‘너무나도 겸손하고 따스한’ ‘이웃 삼촌’ 같은 그였지만, 구미를 위해서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국회 건설교통위 위원 시절, 김 의원이 마이크를 들면 장차관들은 오금을 펼 수 없을 만큼 긴장했다. 그러한 ‘강단 의정’은 구미에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
수자원공사가 전국 공단 조성지의 분양가를 인상했지만, 유독 구미4공단 분양가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했다. 격한 ‘으름장’ 앞에서 수자원공사는 옴짝달싹을 못 했다.
생곡-구포간 강변고속화도로는 당초 장기사업으로 분류돼 있었다. 만일 김 전 의원의 ‘강단 의정’이 없었다면 지금도 강변고속화도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 힘입어 단기 사업으로 변경된 1조 원가량의 사업비가 소요된 강변고속화도로는 착공 10년 만에 준공됐다.
일머리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심학봉 전 의원도 ‘일 잘했던 의원’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구미시민들에게 그는 ‘일 하나만큼은 똑소리 났다’는 평가의 대상으로 회자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의 재임 기간은 사실상 3년이었다. 하지만 그 3년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그 또한 김태환 전 의원처럼 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주민들과 만나면 ‘이웃 삼촌’처럼 다가앉아 흉금을 털어놓았던 ‘너무나도 인간미’가 넘치는 인성이었다.
그 짧은 시절에 그는 17년 동안 시장과 국회의원, 심지어 도지사까지 합세해도 풀 수 없던 공단동의 삼진센츄리 타워 문제를 단 6개월 만에 풀어냈다. 장기 숙원 과제였던 구미복합역사를 한순간에 정상화시킨 것도 그였다. 이뿐이 아니었다. 여타 정치인이나 시장은 꿈도 꾸지 못했던 북구미IC를 건설한 이도 그였다.
2014년 6월, 심 전 의원은 필자에게 ‘KTX북삼 간이역’ 조감도와 계획서를 내밀면서 7월 말에는 건설교통부로부터 공식 허가 수순을 밟을 수 있게 된다는 귀띔을 했다. 구미시민의 최대 숙원인 KTX구미 유치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7월 초 정치적 고초를 겪으면서 결국 그는 의원직을 사퇴했고, KTX북삼 간이역은 흐지부지됐다.
이후 당시 남유진 시장은 금오공대에 시물레이션 용역을 맡기는 등 심 전 의원이 못다 한 과업을 승계하려고 했지만, 백승주 전 의원이 KTX구미역 유치로 사업 자체를 변경하면서 가시권 안에 들어왔던 KTX북삼 간이역 신설은 구미의 품을 떠났다.
업적만으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웃 삼촌’ 같은 따스함과 활발한 소통, 아랫사람을 따스하게 품어 안아 주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됨됨이가 함께했을 때 누군가는 권력의 울담 밖으로 밀려났을 때도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구미를 꾸려나가는 양 국회의원, 구미시장과 구미시의회 의장, 그리고 지방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리움이 대상이 되고 싶습니까. 증오의 물결에 밀려 수구초심을 앓으면서 타향살이를 하고 싶습니까.”
있을 때 잘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