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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획] 제62회 경북도민체육대회 `체육신화` 쓰는...민선8기 저력의 구미시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4.09 03:37 수정 2024.04.09 09:02

→윈윈의 손 맞잡은 구미시와 체육회
→왜 저력의 구미시인가
→도민체전 역사는?
→4월 10일~13일, 구미시민운동장·종목별 경기장


↑↑ 구미시민운동장
[사진 출처 =구미시체육회]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경북도민체육대회 결과는 단순히 ‘체육 성적표’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 저력을 가시화한 종합 성적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 구미시민운동장과 종목별 경기장에서 열리는 제62회 경북도민체육대회로 향한 시민의 관심이 뜨겁다.

1995년 민선시대 개막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된 분열과 갈등의 자리에는 김장호 시장 체제의 2022년 민선 8기가 들어서면서 화합이 꽈리를 틀었다. 국회의원과 시의회 등 정치권은 ‘구미 재도약’이라는 깃발 아래서 힘을 도모하고 있고, 구미상공회의소 등 경제계와는 ‘번영의 구미공단 시대’를 재현해야 한다는 공동분모 아래서 윈윈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체육계와도 교감도 훈훈하다.

1995년 도농통합 이후 바람 잘 날 없던 ‘선산 소외론’도 불식됐다. 상하수도사업소의 선산출장소로의 이전에 힘입은 사실상의 ‘제2의 구미청사’시대 개막과 10%대를 밑돌던 농촌 예산이 10%대를 회복하면서 선산지역 주민들은 1995년 민선시대 출범 이후 29년 역사에서 볼 수 없던 ‘도농 화합시대’를 개막했다는 긍정적인 평을 내놓고 있다.

구미시의 저력이 민선8기보다 강력한 시절도 없었던 듯 싶다. 정치계와 경제계와의 돈독한 관계 형성 이외에도 농촌 등 지역간 갈등이 불식된 상황에서 쌓아 올린 반도체특화단지와 방산클러스터 유치, 20년 숙원사업인 KTX 구미역 정차를 위한 국토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와 기본계획 착수 등 ‘탑쌓기’는 ‘구미 재도약’이라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시민의 품에 안겼다.

특히 지역 경제의 순항 여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예산의 증감 추이는 시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민선8기 구미시는 이러한 관심사에 ‘예산 2조 원 시대 개막’ 결과표로 화답하면서 시민들로부터 ‘만족한다’는 화답을 받았다.
실례로 민선 7기 시절인 2021년도 구미시 당초 예산 규모는 1조 3,089억 원이었다. 인구 41만 명의 구미보다 1.57배에서 2.96배가 작은 안동시와 김천시, 경산시가 바싹 추격해 들어오는 양상은 치욕이었다.
실제로 인구가 2.56배가 작은 안동시와의 예산 격차는 539억 원, 2.96배인 김천시와는 1,889억 원, 1.57배인 경산시와는 2,789억 원의 차이에 불과했다.

이랬던 예산 격차가 민선8기 들어서면서 격세지감의 들 정도로 벌어졌다. 2024년 구미시 당초 예산 규모는 2조 20억 원으로 안동시와의 격차가 3년 전인 2021년 539억 원에서 5,420억 원, 김천시와는 1,899억 원에서 6,370억 원, 경산시와는 2,789억 원에서 6,928억 원이었다.

↑↑ 국내 최대 규모의 에어돔.
[사진 출처= 구미시]

→61회 대회까지 구미 1위 7회
제61회 경북도민체육대회 역사상 구미의 성적표는 7회 우승이었다.
2003년 제41회, 2004년 제42회, 2005년 제43회 등에 걸쳐 3연패의 쾌거를 이룬 구미시는 2008년 제46회 우승 이후 8년간 우승컵을 포항에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2017년 제55회에 우승한 구미시는 이듬해 열린 2018년 제56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2연패를 차지하면서 굴욕을 극복했다.
하지만 2019년 제57회에서는 2위에 머물렀으며, 2020년 제58회, 2021년 제59회, 2022년 제60회까지 코로나로 대회가 취소된 후 3년 만에 열린 2023년 제61회 대회에서도 구미는 우승컵을 포항에 넘겼다.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 구미시민운동장과 종목별 경기장에서 열리는 제62회 대회에는 도내 22개 시군 선수단과 임원 등 1만 2000여 명이 참가한다,
5월 10일 오후 4시부터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진행되는 개회식은 전국 TOP10 가요쇼를 비롯해 장민호, 이찬원, 권은비 등 탄탄한 인기가수 라인업이 출연해 흥을 돋운다.
또 1,000여 대의 드론라이트쇼 등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마련해 체육인과 시·도민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구미시는 물론 체육회 등은 역대 최고의 시설 제공 및 경기 운영 1위, 체전 1위 등 2개의 금메달을 품어 안기 위해 연일 ㅡ비지땀을 쏟고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부서별 추진계획의 차질 없는 진행과 개회식이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만큼 이에 따른 시설 점검, 밀집 인파 사고 대책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꼼꼼한 점검에 들어간 상태다.

↑↑ 낙동강 체육공원
[사진 출처 = 구미시체육회]

→도민체전 역사
제1회 경북 도민체전을 치르기 위해 당시 최종 주자인 박민태가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에서 성화 채화한 때는 1963년이었다.
이 시기의 국내정세는 혼란기였다. 19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이 사퇴하자, 박정희 대행체제로 급변했고, 결국 1963년 12월 7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제5공화국 시대를 개막했다.
이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제1회 경북 도민체전을 개최한 곳은 대구였고, 대회 결과 남대구 1위, 중대구 2위, 김천시가 3위를 차지했다. 1949년 8월 15일 같은 날에 대구와 함께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로 승격한 김천시의 위세는 당시만 해도 대단했다.

구미면에서 구미읍으로 다시 시로 발전을 거듭한 구미시는 도민체전 27년 만인 1989년 실시된 제27회 대회에서 최초로 시부 2위를 기록했고, 선산군 역시 최초로 군부 2위를 마크했다.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 구미시로 탄생해 처음 맞은 도민체육대회는 1996년 제34회 대회였다.

1995년 도농 통합을 계기로 구미시는 낙동강 벌에 산업근대화의 신화를 이룬 경제 역사에 필적할 만한 기록적인 체육 역사를 써 왔다. 도민체전 역사상 기라성 같았던 포항시, 김천시, 안동시, 경주시, 경산시를 제압하면서 3연패의 위업 달성과 함께 도민체전을 유치했고,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는 도민체전 2연패 달성과 함께 전국체전 유치라는 겹경사를 시민에게 선물했으니 말이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라진 도민체전
1963년부터 지난해 열린 제56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도민체전은 두 번에 걸친 행정구역 조정을 거쳤다. 이에따라 행정구역 체제 개편 때마다 대회에 참여하는 시•군수가 조정됐다.

▷1981년 경북-대구 행정구역 분리까지
1963년 제1회 도민체전을 시작으로 1981년까지 경북도 내에는 대구시를 비롯한 11개 시, 24개의 군이 있었다. 이때까지 18번의 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실제로 열린 대회는 16회였다. 1964년에는 심한 가뭄으로 대회를 보류했고, 1978년에는 제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유치로 도민체전을 중단했다.

대구와 함'께 도민체전을 치른 1981년까지 16회 대회 기간 중 1966년 경주와 1974년 포항을 제외하면 대회 개최지는 대구였다. 타 시군의 경우 도민체전을 치를 여건이 되지 못했다.

16회 대회가 있기까지 우승은 포항시가 7회, 남대구가 6회, 북대구 2회, 경주시 1회 등이었다. 특히 이 기간에 남대구와 북대구, 중대구, 포항시, 경주시, 안동시가 자웅을 겨루면서 1~3위를 거머쥐었다.

군부에서는 예천군과 상주군이 돋보였다. 16회 대회 중 예천군 5회, 상주군 5회, 경산군 3회, 의성군 1회, 문경군이 1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특히 문경, 의성, 예천, 상주군이 1~3위를 차지하면서 군세를 과시했다. 선산군은 등위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1995년 시군 통합이 있기까지
대구시가 경북도에서 빠져나간 1981년 제19회 대회부터 제76회 전국체전 포항 개최로 제33회 도민체전이 중단됐던 1995년까지 도민체전에는 10개 시, 24개 군이 참가했다.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시로 승격된 구미시는 봉사 행정의 내실화와 수출산업 지원, 도시개발 촉진에 역점을 두고 시정을 펼치던 1984년 당시 박순태 시장이 구미시와 선산군 사상 처음으로 제22회 도민체전을 유치했다. 하지만 당시 대회에서 시부 1~3위는 포항, 경주, 안동이었고, 군부는 경산, 상주, 문경군이었다. 대회를 유치했으나 열악한 여건 때문에 구미시는 물론 인접 지역인 선산군 역시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5년 후 도민체전을 두 번째 유치한 1989년 제27회 대회에서 구미시와 선산군은 개최지 및 개최지 인접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1988년 6월부터 1990년 7월까지 2년 1개월을 역임한 서상은 구미시장은 역대 시장 중 최초로 문화 및 체육 창달에 깊은 관심을 보인 시책을 펼쳤다.
이에 힘입어 제27회 대회에서 구미시는 열악한 여건을 딛고 포항시에 이어 시부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회 때마다 구미시를 멀찌감치 밀어내던 경주시와 안동시를 추월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인접 지역인 선산군 역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경주군에 이어 군부 2위를 차지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제27회 대회에서 선산군의 수립한 2위의 기록은 선산군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역사였다.

대구와 행정구역을 분리한 1981년부터 시군 통합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1995년까지의 기간에는 또 가장 많은 횟수의 대회를 중단했다. 15번의 대회 중 1985년 제23회 대회는 제14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경북 유치, 1986년 제24회 대회는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개최로 도민체전이 중단됐다. 이어 1995년 제33회 대회는 제76회 전국체전 포항 개최로 중단했다.

이 기간에 대회에서 시부는 포항시와 안동시, 경산시, 경주시가 1~3위를 나눠 가졌다. 구미시는 2위 1회, 3위 1회에 그쳤다.

*1982년부터 시군이 통합된 1995년까지 11번 대회 중 시부-포항 1위 5회, 안동시 5회, 경주시 1회, 군부- 경산군 6회, 예천군 2회 , 경주군 1회, 상주군 1회.

▶1995년 시군 통합 이후 지금까지
1995년에는 시군 통합 행정구역 개편이 있던 해였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를 출가시킨 경북도는 14년 후 도농통합이 있던 1995년부터는 10개 시, 24개 군이 10개 시 13개 군으로 조정됐다.
시군 통합 시대를 맞은 당시 구미시는 시책사업 추진에 혼선을 겪었다. 박병련 시장은 통합 전 시장과 통합 후 시장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1994년 1월 1일 통합 전 시장으로 취임한 박 시장은 통합 이후인 1995년 1월 1일부터 1995년 4월 19일까지 통합 전후를 합쳐 1년 4개월 동안 재임했다. 부하 공무원을 엄격하게 다루기로 정평이 났던 박 시장은 청렴, 무사, 친절 신뢰, 책임 봉사를 시정방침으로 정했다.

뒤를 이어 1995년 4월 20일부터 95년 6월 30일까지 관선 시장으로는 최단기간인 2개월 동안 재임한 박미진 시장은 새로운 시정방침을 정하지 않은 채 박병련 전임시장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70일 후면 민선 시대가 열리는 역사를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4명의 관선 시장 시대를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면서 김관용 시장은 1995년 7월 1일 민선 시대를 처음 열었다.
시군 통합을 통해 시세를 넓힌 구미시는 통합하던 해인 1995년 전국체전 개최로 대회가 중단된 제33회 대회 이후인 1996년 제34회 대회부터는 시세에 걸맞은 저력을 발휘해 나갔다.

1963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시군 통합이 있기까지인 1995년 제33회 대회까지 구미시는 1회에 걸쳐 각각 시부 2위와 3위, 선산군은 군부 2위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도민체전에 관한 한 미력한 자치단체로 평가절하되던 구미시는 그러나 시군 통합 이후 처음 열린 1996년 제34회 대회에서는 안동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도민체전 역사상 기라성의 역사를 써온 경주시, 김천시, 포항시, 영주시, 경주시를 물리치면서 탄탄대로를 예고한 때였다.

2001년 제39회 대회를 유치했으면서도 포항에 눌려 2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던 구미시는 2003년 제41회, 2004년 제42회, 2005년 제43회, 2008년 제46회, 2017년 제55회, 2018년 제56회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군별 등위를 적용한 14번의 대회 중 구미시 1위 7회의 실적은 낙동강 벌에 산업근대화의 탑을 쌓은 저력을 입증했다. 피와 땀 속에 자신의 삶을 묻은 구미체육인들의 소중한 역사이기도 했다.

▶도민체전 구미(선산)기록
▻1989년 제27회/ 구미시 시부 2위, 선산군 군부 2위 (도민체전 사상 최초)
▻1993년 제31회/ 구미시 시부 3위
▻1996년 제34회 / 구미시 시부 2위

<통합 이후 구미시 성적>
▻1998년 제36회 2위
▻1999년 제37회 2위
▻2000년 제38회 3위
▻2001년 제39회 2위
▻2003년 제41회 1위
▻2004년 제42회 1위
▻2005년 제43회 1위, 3연패

▻2007년 제45회 2위
▻2008년 제46회 1위
▻2009년 제47회 2위
▻2010년 제48회 2위
▻2011년 제49회 2위
▹2012년 제50회 2위
▹2013년 제51회 3위
▹2014년 제52회 2위
▹2015년 제53회 2위
▹2016년 제54회 2위
▹2017년 제55회 9년 만에 1위
▹2018년 제56회 1위, 2연팬

▹2019년 57회 구미 2위
▹2020년 58회, 2021년 59회, 2022년 60회코로나로 취소
▹2023년 61회 구미 2위

구미시 도민체전 유치
1984년 재22회, 1989년 제27회, 2001년 제39회, 2012년 제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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