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편지= 발행인 김경홍] 12월 17일, 문경 보현정사를 오르는 겨울 길에는 함박눈이 곱게 내려앉았다. 휘영청 저물어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 넘는 곳. 오래된 감나무가 깊은 인연들을 토닥이며 맞는 보현정사의 겨울은 곱고 아늑했다.
토담 벽에 걸린 작은 글귀가 가슴을 울렸다.
‘강물은 강을 버려 바다가 되고, 나무는 꽃을 버려 열매가 된다‘
산행을 잠시 멈춘 내가 내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1498년 연산군은 어머니 윤 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 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8년 후인 1506년 왕직에서 내려앉는 그는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다. 십 년 넘는 권력이 없고, 열흘 넘게 피는 꽃이 없는 법이다.
보현정사로 가는 길에 문득 뇌리를 친 연산군의 삶, 1506년 생을 마감했으니 불과 510여 전의 일이다.
다시 한번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국회의원 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죽이느니, 살리느니’하는 싸움박질이 민생의 가슴을 치고 있다. 겨울 보리밭을 후둘기는 싸락눈처럼.
새벽길 속으로 선거 운동복을 두껍게 껴입은 출마예상자들이 걸어 들어간다.
‘나를 위한 길인가. 나라와 지역을 위한 길인가’
최근 20주기를 맞은 허주가 동생 김태환 의원에게 남긴 당부가 새롭다.
“나를 위한 정치를 하려거든 가는 길을 멈춰라”
나를 위한 정치를 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유지였다.
권력도 짧고 삶의 길도 짧다.
나를 위한 정치에 함몰되면 상대를 욕하게 되고, 나라와 민족, 민생을 위한 정치에 몰입하면 상대와 동행하게 되는 법이다.
정치인이면 누구든, 머지 않은 훗날에는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恩義廣施(은의광시)요 人生何處不相逢(인생하처 불상봉)이다.
경행록은 이렇게 말한다.
“은혜와 의를 널리 베풀라,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밀물지는 봄날의 새싹처럼 그 답이 가슴에 물결쳤다.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는 게 고운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