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 높게 평가한 김관용 지사⇢ 재임시절 ‘구미시 추진하면 도비 얼마든지 지원하겠다’, 그러나 윈윈 공조 실패로 무산
△선산읍 낙동강 변-고아읍- 지산동 앞들은 후삼국 전투 현장
△냉산(태조산)은 왕건부대 머물렀던 곳
△견훤 출생지는 상주
후삼국 통일의 현장 지산동 앞들 ‘샛강’에선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왕건과 피신 중인 신검 군사들은 후삼국 통일의 현장인 지산 샛강을 사이에 두고 전의를 불살랐을 것이다
▲병사들은 지산 샛강에서 쏟아지는 땀방울을 씻어냈을 것이고, 군마들은 갈증을 삭히기 위해 지산 샛강의 물을 마셨을 것이다
▲왕건은 사로잡은 신검을 칼로 내려친 후 유유히 흐르는 지산 샛강을 바라보며
후삼국 통일시대를 구상했을 것이다
▲숭신산성(崇信山城)을 쌓아 전력을 가다듬던 냉산(태조산)을 응시하며 생사의 기로를 달려 온 날들을 추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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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지산동 지산샛강 [사진출처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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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구미시 지산동 샛강 생태문화축제에 후삼국 통일의 현장을 영살물로 제작해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을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육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구상은 경북도 차원에서도 논의됐다. 후삼국 통일의 역사성을 높게 평가한 김관용 지사는 재임 당시인 2015년경 구미 출신 경북도의회 의원과 구미시에 용역비 등 소요 예산을 전폭 지원하겠다며, 사업 추진을 독려했으나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산 샛강 생태문화축제샛강 생태문화축제는 생태습지 및 연꽃 군락지 등 단순하게 샛강이 보유한 천혜의 자연환경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는 2010년대 초반 58억 원을 들여 연꽃단지, 산책로, 야외무대, 전망대 등을 설치했다. 하지만 생태환경 복원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부가가치 창출 등 복합적인 기대 효과를 간과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후삼국 통일의 현장이라는 역사성을 스토리텔링 했더라면 생태문화축제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전국적으로도 역사의 현장에 스토리를 입힌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제주 올레길은 수려한 자연풍광 속을 걷는다는 보행 위주의 단순성에서 벗어나 오름마다 잔존하는 4•3항쟁의 흔적을 스토리텔링화했다. 찾는 이들을 역사 속으로 안내하면서 관심을 배가시키자는 취지다.
삼국통일의 현장인 논산은 또 우리나라 최초의 향토축제인 60년 전통의 백제문화제를 통해 삼국통일의 현장인 황산벌 전투를 재현하면서 관광 가치를 재고하고 있다. 김천시는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자취를 살려 스토리텔링하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한걸음 더 나가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영상제작해 설치하면 일석이조를 기대할 수 있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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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지산동 지산샛강 [사진출처 =구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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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 + 후삼국 통일의 현장·+낙동강체육공원936년 후삼국 통일을 위한 격전지인 선산읍 낙동강 변과 고아읍, 지산동 앞들에서는 어떤 전투가 전개되었을까. 지산동 앞들은 발갱이들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발검(拔劍)들이다. 들판에서 칼집의 칼을 뽑았다는 의미다. 고서에 따르면 935년 지금의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연안에 있던 견훤을 무찌른 왕건은 마지막까지 항전하는 견훤의 아들 신검을 쫓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936년 지산동 앞들에서 신검의 목을 쳤다. 따라서 칼집에서 칼을 뽑은 (발검 拔劍) 왕건이 신검을 격퇴한 지산동 앞들(발갱이 들)과 지산샛강은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다.
⇢전투 과정918년 궁예를 권좌에서 쫓아내고 권력을 쥔 왕건은 927년, 견훤과의 팔공산 동오수 전투 (桐藪 동수전쟁)에서 대패한 후 선산지역으로 후퇴했다. 그로부터 전열을 가다듬은 시기는 8년 후인 935년이었다. 왕건은 일선군 냉산(태조산)에 숭신산성(崇信山城)을 쌓고, 낙산동 일대에 군창( 軍倉)을 일곱 개나 지어 군량을 비축하는 등 장기전을 마무리했다. 낙산동 일대를 칠창리(七倉里)라고 불렀던 이유다.
팔공산에서 퇴각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왕건은 935년 선산읍 생곡리 앞(지금의 일선교 근처) 속칭 어성정(禦城亭) 즉 태조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결국 935년 선산 전투에서 왕건은 8년 전 분루를 삼켜야 했던 팔공산 동오수 전투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선산에서 대승을 거둔 왕건은 이듬해인 936년 여세를 몰아 견훤의 아들 신검과 고아읍 관심리 앞들에서 제1차 결전에 들어갔다. 당시 왕건이 신검을 막기 위해 주둔한 관심(官心) 평야는 어검(禦劒) 평야, 지금은 어갱이들이라고 불리고 있다. 아울러 괴평리 앞뜰에 진을 쳤던 신검의 진지를 왕건이 점령한 후부터 이곳은 점검(占劒)평야 즉 점갱이들이라고 불렸다.
936년 어검들 전투에서 패배한 신검은 지산동 앞들과 사기점(신평2동)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미리 도착해 진을 치고 있던 왕건은 신검을 사로잡고 목을 치면서 후삼국 통일을 완성했다. 그곳이 바로 지산 샛강과 강을 둘러싸고 있는 지산들(발갱이 들)이다.
축제는 관광산업의 핵심,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산업관광산업은 대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것 이상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국의 도시들은 보여주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괴테 생가(生家)의 관광화를 통해 한 도시가 먹고사는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 문화유산이 전무하다시피 한 미국 뉴욕은 로마나 파리처럼 역사적 유적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고, 스위스처럼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도 아니지만 없는 문화유산을 개발하고 상품화함으로써 연간 4,000만 명의 내국인과 1,0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우뚝 섰다.
송기철 생태환경운동가 및 관광산업 연구가는“ 현대인들은 단순히 자연풍광 속에서 즐기는 것 이상의 인문학적 가치를 음미하려고 한다. 지산 샛강의 수려한 생태환경에다 후삼국 통일의 현장이라는 역사의 옷을 입힌다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느냐.”며, 소중한 역사 유산을 방치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