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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상은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었다···‘한국전쟁 형곡동 폭격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모식’

김경홍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6.08.16 19:01 수정 2026.08.16 19:20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참극 이후 76년 만에 최초
구미시의회 민주당 의원(8명)→6월 25일 공공기관 최초 위령탑 공식 참배
형곡동 희생자 추모→ 진보·보수 등 이념적 인식 떠나 생명 존엄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 [사진=K문화타임즈]

↑↑ 추모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와 유족 대표.
[사진=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위원장 정규환, 직전 위원장 박찬문)가 8월 16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형곡동 희생자 위령탑’에서 ‘한국전쟁 형곡동 폭격 민간인 희생자 76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16일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130여 명이 희생된 지 76년 만에 이뤄진 최초의 행사이다.

앞서 구미시의회 민주당 의원(8명)들은 지난 6월 26일 ‘형곡동 희생자 위령탑’을 참배했다.  공공기관의 공식 참배는 2016년 7월 위령탑이 건립된 지 최초였다.

 

또한, K문화타임즈 김경홍 기자는 2006년 ‘구미시 시무실(형곡) 미군 오폭사건의 참극’을 단독 보도한 데 이어 매년 집중 보도를 통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례를 공식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추모식

 

 

↑↑ 인사말하는 정규환 위원장.
[사진=K문화타임즈]

1950년 8월 16일 참극 발생 이후 76년 만에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 주최로 진행한 추모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정규환 위원장의 인사말, 박찬문 직전 위원장의 내빈 소개, 이수연 전 위원장의 경과 보고 순으로 시작을 알렸다.

 

 

↑↑ 임성호 신부
[사진=K문화타임즈]

↑↑ 김정락 목사
[사진=K문화타임즈]

↑↑ 서원 스님
[사진=K문화타임즈]


이어 임성호 신부(군위 천주교 묘원), 김정락 목사(구미 새길교회), 서원 스님(구미 옥성 대둔사)은 종교 의식을 통해 희생된 영령을 추모했다.

 

↑↑ 추모사하는 김일수 교수
[사진=K문화타임즈]

↑↑ 추모사하는 김재우 의원
[사진=K문화타임즈]

↑↑ 추모사하는 김용현 의원
[사진=K문화타임즈]

또한 구미시의회 김재우 의원은 추모사에서 “형곡동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 등 추모 의례를 진행하기 위한 관련 조례를 올해 안에 제정하겠다”고 밝혀 깊은 인상을 남겼고, 경북도의회 김용현 의원은 “추모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경북도의회와 구미시의회가 뜻을 모으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경운대 김일수 교수도 추모사에서 “형곡동 위령탑이 평화와 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후세에게 각인시키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진혼모하는 류제신 원장
[사진=K문화타임즈]


이어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인 류제신 원장의 진혼무, 헌화, 유족대표인 이규원 전 시의원의 인사말을 끝으로 추모식을 마쳤다.

 

 

↑↑ 헌화하는 주요 인사와 유족들.
[사진=K문화타임즈]

 
이날 추모식에는 경북도의회 김용현 의원, 구미시의회 김재우·이상호·신용하·김정미·김효석·전희정 의원, 형곡동 유족회와 대전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족 대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전국 각자에서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편, 추모식에 참석한 유족과 시민들은 ”미군 폭격기의 오폭 참극을 반미와 친미 등 이분법적, 이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은 극복되어야 한다“며“인권존중, 생명 존엄이라는 실존주의적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마다 6월이면 유가족 울리는 구미시 시무실(형곡) 미군 오폭의 참극]
2020년 12월 10일부터 2022년 12월 9일까지 2년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시행한다는 계획이 공표되자, 유가족들은 구미시 시무실(형곡)미군 오폭사건이 규명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4월 7일부터 8일까지 조사관을 파견해 형곡 지구, 인동 유학산 지구, 고아(선산) 지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한 바 있다.


미군 오폭 사건은 6.25 전쟁 기간 중인 1950년 8월 16일(음력 7월 2일) 오전 11시경, 기체 불명의 폭격기 몇 개 편대가 수 시간 동안 구미시 시무실(형곡동) 마을을 맹폭하면서 발단이 됐다.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아비규환의 처절한 참상 그 자체였다. 설상가상으로 폭격이 끝난 직후 다시 제트기 몇 대 편대가 마을을 향해 또다시 기관포 사격을 가하면서 수많은 주민과 피난민들이 집단 떼죽음을 당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집안이 전부 몰락된 경우도 있었으며, 마을과 인근 산야가 벌집 쑤셔 놓은 듯 참혹했다고 한다.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
2012년 2월 8일 5분 발언을 통해 형곡동 오폭사건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촉구한 구미시의회 당시 이규원·손홍섭 전 시의원에 따르면 시무실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은 6.25 전쟁 당시 130호가 사는 산간 농촌 지역인 형곡동(시무실, 사창)의 쓰라린 역사였다.
이 지역은 금오산 자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지리적인 특수성으로 김천, 칠곡 북삼을 비롯한 사곡, 상모, 임은, 오태, 광평 등 인근 지역에서 피난을 가지 못한 주민들이 피신처로 몰려들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치열했던 1950년 8월 16일 (음력 7월 2일) 오전 10시경, 형곡동 주민들과 피난민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미군 폭격기가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전시 상황은 북한군이 총공세로 임시 수도인 대구 방어선의 함락이 우려되던 때였다. 이에 따라 유엔군은 대구를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해 다부동 전투를 전개했고, 북한군은 낙동강 반대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급 상황에서 미군의 융단폭격으로 형곡지역 시무실과 사창 등 두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고, 이 와중에 형곡동 주민과 피난민 등 13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비극이 발생했다.
또 당시 피해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이 된 마을 주민인 고 김왕개 씨 등 일가족 12명이 사망하고, 고 이종록 씨 일가족 9명도 사망했다. 미군 측의 오폭에 따른 명백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지울 수 없는 형곡동 오폭사건의 악몽 속에서 살아온 생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참극이 발생하고 40년이 지난 1992년 고 이종록(발기인 대표/ 이규원 전 의원 선친)옹을 중심으로 ‘위령탑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미국의 미 자도 꺼내지 말라’는 국방부로부터의 회신을 받고 이들은 좌절해야 했다. 이어 2005년에는 구미시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진정서를 냈으나 시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1년 후인 2006년 11월 28일 이규원 전 구미시의회 의원은 진정서 마감 시한을 이틀 앞두고 부랴부랴 진정서를 작성하고,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발족한 과거사위에 자료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07년 1월 위령탑 건립 추진위는 오매불망 그리던 ‘결정통지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어 2년 3개월이 흐른 2009년 7월부터 8일까지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관을 파견해 형곡 지구, 인동 유학산 지구, 고아(선산) 지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했다.

사건명은 ‘미군 관련 희생 사건, 결정 이유 = 신청사건 다-9042 미군 관련 희생 사건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진실규명범위에 해당하여 조사개시를 결정함’이었다.
시무실(지금의 형곡동) 미군 오폭사건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조사관이 만난 형곡지구 면담자는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 등 35명이었다. 더 많은 피해자가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이나 피해자 가족들이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조사 대상자는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130여 명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조사 기간 피해자나 그 가족, 현장을 목격했던 주민들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 당시로 되돌아가야 했고, 그 악몽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당시 조사관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약속하고 돌아갔다. 특히 미군 폭격기의 오폭에 따른 피해와 관련 "다른 지자체에서는 위령탑 건립 등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노력이 있지만, 구미에는 그마저도 없는 것 같아 애석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진실화해위가 가동된 당시만 해도 전쟁 과정에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피해 주민들에 대해 정부는 1천 340억 원의 피해 보상을 할 것으로 알려졌고, 형곡 지구 피해 관련자들 역시 입법발의 중인 법안이 의결되면 보상에 착수할 것으로 기대를 보았으나, 결국 무산됐다.

더군다나 2010년 6월에는 2009년 형곡지구를 조사했던 조사관이 타 부서로 옮기면서 업무를 이관받은 다른 조사관이 "1차 조사자를 대상으로 다시 2차 조사를 해야 하겠다"는 통지를 해 왔다. 1년 전 조사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기억하기조차 싫은 당시 상황을 다시 녹취하겠다고 하자, 당사자들은 오열해야 했다. 하지만 형곡 지구 피해자에게 마음의 상처만을 남긴 진실화해위는 2010년 6월 말 업무를 끝내면서 허망함까지 아픈 가슴 위에 얹혔다.

→한국 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진실 규명의 길 열려야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06년 4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약 4년 7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은 규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으로 2020년 12월 10일부터 2022년 12월 9일까지 2년 동안 재출범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다시 활동하게 되면서 미규명된 형곡(시무실) 미군 폭격기 오폭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관련한 진실규명의 길이 열렸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한편, 우여곡절을 거쳐 형곡전망대 앞 쪽에 위령탑이 건립된 것은 2026년 7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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