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행정의 받침대는 적극행정, 실수나 실책도 감싸안아 주어야
하지만 원칙의 잣대만 있고, 따스한 모정이 없다
작은 실수를 탓하기만 하면 누가 나서서 일하겠나
폭언, 폭행, 시민의 이름으로 묵과해선 안 돼
인과응보 (因果應報)⇀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은 엄연한 철칙
↑↑ 어머니의 정
[사진출처 김동렬 한의원.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 k문화타임즈]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 =발행인 (시인 소설가) 김경홍] ‘인간은 존경(尊敬)의 대상이다’라고 설파한 칸트의 비판론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존재가치로서 존경받아야 한다. 상대를 존경하지 않는 존재는 가치로서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최근 구미시와 의회의 분위기를 강타하고 있는 힘있는 자(시의원)로부터의 ‘폭언’과 ‘폭행’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사회는 충격이다. 그러므로 시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마땅하다. 이참에 구미의 지도자그룹 모두는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평화주의가 절대적 가치인 삶의 터전에 폭행과 폭언, 웬 날벼락인가.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선을 행하면 선의 결과가, 악을 행하면 악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는 엄연한 철칙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구미시청과 구미시의회 분위기가 침울하다. 이래선 안 된다.
구미시를 설계하는 공무원들은 지역의 최고 엘리트층이다.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도덕적, 윤리적 평가 기준을 극복한 그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존재가치다. 그렇다면 이들은 현재 신바람 나는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는가.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혁신행정의 기본은 적극행정이다. 매사에 적극적이다 보면 실수와 실책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회초리만 있을 뿐,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고 응원해 주는 모정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아랫사람의 사소한 허물만을 지적하거나 습관처럼 잔소리를 일삼는 지도자는 아랫사람으로부터 신뢰나 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성냄보다 관용을 넓게 베푸는 포용력이 있어야 아랫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툭하면 아랫사람을 탓하거나 덕의 관용보다 법의 회초리를 우선하는 지도자나 상관은 ‘더 높은 곳’을 향할 수도 없고,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권력과 권위는 평범한 개별적 존재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나라 장왕의 일화는 언제난 감동적이다.
장왕은 어느날 밤, 신하들을 불러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떠들썩하게 즐기는 연회는 무르익어 갔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연회장의 불을 모두 꺼버렸다. 그 틈을 타 A라는 신하가 왕의 애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신하의 갓끈을 잡아 뜯은 애첩이 장왕에게 말했다.
“갓끈이 없는 자가 저를 희롱했습니다. 찾아내어 엄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러나 애첩을 물리친 장왕이 말했다.
“자, 모두 갓끈을 잘라내고, 지위와 관계없이 맘껏 즐기시오.”
몇 년 후 장왕은 진나라와 싸우는 전쟁터에서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용사를 보며 감동했다. 결국 그의 맹활약은 장왕에게 승전고를 안겼고, 초나라의 영토는 확장됐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이 그 용사를 불렀다.
“그대의 용감한 싸움 덕에 진나라를 물리쳤소, 그대의 과업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오,”
그러자 용사가 엎드려 말했다.
“연회가 있던 날 밤, 갓끈이 잘린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과연, 그대는 충성을 다할 아랫사람을 몇이나 두고 있는가.
최근 들어 구미시청과 의회의 침체 분위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공무원 연금에 치명상을 안긴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직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박봉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털어서 먼지내기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고 몰아닥치는 감시 기능 앞에 선 공무원들. 높은 직급과 상급관청은 정의롭고 진실한가. 힘이 곧 정의와 진실로 통하던 비례 가치는 구시대, 독재의 산물이다.
시의회 감사가 끝나면 경북도 감사, 이어지는 행안부와 감사원 감사, 여기에다 적극행정을 닦달하면서도 실수나 실책의 허점을 포착하면 ‘그것을 전부인 양 몰아붙이는 따져 묻기 식’공직사회에서 업무 분위기는 침울할 수밖에 없다. 팔다리에 힘이 없으니, 펜대를 들 힘조차 없다는 하소연이 안타깝다..
‘그 여인에게 돌멩이를 던질 죄 없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공직사회의 상관이나 지도자는 곱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