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 구미시 지산앞들과 고아읍 괴평리에 걸친 20만 평 규모의 낙동강 고수부지(쑤우부지)는 고수부지 공원화 계획을 시작으로 국가하천 관리청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지금의 낙동강체육공원으로 태어났다.
도시계획 설계건축 전문가인 강대홍·한정우 의원과 자연보호운동 구미시·경상북도협의회장을 거치면서 구미시 자연보호운동 확산에 한 획을 그은 곽용기 의원, 1킬로미터의 금오산 진입로 구간에 제1호 ‘맨발로 걷는 길’을 시설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윤종석 의원의 노력이 기반이 됐다.
특히 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김관용·남유진 전 구미시장, 실무 책임자인 천동성 전 건설도시국장 등이 의지가 가시화하면서 낙동강 체육공원 조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남유진 전 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인맥을 십분 활용해 얽히고 설킨 수변지역 규제를 풀어내면서 공원 조성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장호 시장과 9대 시의회는 이러한 전임 시장과 전직 시의원들이 쏟은 비지땀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낙동강체육공원 조성의 시초는 1995년에 이어 1998년 3월 27일 강대홍 의원이 시정질문을 통해 낙동강 고수부지( 괴평, 지산 쑤우부지) 진입로와 기반 시설을 정비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체육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비롯됐다.
이어 2005년 김상조 의원과 2006년 9월 30일 한정우 의원이 시정질문을 통해 ‘구미-선산 간 강변도로 조기 착공에 따른 낙동강 고수부지(쑤우)의 공원화 대책’을 통해 구미~선산 간 강변도로의 조기 착공으로 인한 괴평동 잔디밭이나 선산레저타운과 연계한 개발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하면서 재점화됐다.
당시 곽용기 의원이 4공단 조성이 완료되는 2004년, 거의동으로 금오공대가 이전하면서 학생과 근로자들의 휴식 공간의 답을 낙동강 체육공원으로 찾아야 한다고 조기 착공을 촉구한 것도 프로젝트를 조기 점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계기로 남유진 시장은 2006년 건설교통부를 방문해 낙동강 고수부지를 2007년도 실시설계에 반영토록 건의했고, 2002년 구미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등용한 구미 출신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지원에 힘입어 실시설계에 반영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당시 국회 건설교통부 소속이었던 김태환 의원도 큰 힘을 보탰다.
의회는 또 구미시가 요청한 낙동강 둔치 기본계획 용역비 6억 9천만 원 중 5억 1천만 원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협업에 뛰어들었다. 대규모 프로젝트인 낙동강체육공원은 이처럼 구미시와 의회, 정치권이 협업한 역사적인 작품이다.
↑↑ 전국 최대 규모 낙동강 체육공원 [사진 제공 =구미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