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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구미가 배출하는 22대 국회의원은 3명...선산읍 이문리가 고향인 대구 이인선 의원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4.03.03 16:05 수정 2024.03.03 21:26

재선의 고지가 머지 않았다, 칠전팔기의 대명사... 구미의 인적 자산

[k문화타임즈] 4·10 총선을 거치면 구미가 배출하는 국회의원은 3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미갑구와 구미을구가 배출하는 2명의 의원에다 지역 정서상 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구 수성을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후보 공천을 위한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해 8부 능선을 넘어선 이 의원은 재선 당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나라사랑, 구미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
퇴임을 한 달 앞둔 2015년 2월, 구미시 원평동 모 레스토랑에서 기자와 만난 이인선 당시 경북도 경제부지사의 결기는 대단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나라사랑, 구미사랑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 새로운 길을 닦고 싶다.”
사실상 구미갑구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겠다는 각오였다. 예측은 현실이 됐다. 형곡동에 선거사무실을 임대하는 등 총선을 향해 다부지게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이 전 부지사가 2015년 3월 돌연 임대한 사무실을 해약한다는 소식이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구 중구 남구로 진로를 틀었다.
그 무렵 정가에서는 백승주 당시 국방차관의 전략공천설이 파다하게 펴졌고, 결국 현실이 됐다.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로부터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정계입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강골의 남성일지라도 헤치기 힘든 가시밭길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대구 중구 남구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으나, 이 의원은 전략공천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행한 TK 정치거물 주호영에게 패했다. 이후에도 가시밭길은 연속됐다.
2020년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 대구 수성을 후보로 공천을 받은 이 의원은 이번에는 경남 양산시에서 자신을 낙천시킨 당의 처사에 반발해 탈당을 결행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를 만나야 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이 의원은 그해 TBC 대구 수성을 후보자 토론회에서 홍준표를 겨냥해 “이 이인선이가 그렇게 만만해 대구로 왔냐?”고 따졌고, 홍 후보는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결국 그해 선거에서도 이 의원은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구미 형곡동 임대사무실 계약 해지, 대구중구 남구 출마, 대구수성을 출마 등 세 번에 걸쳐 몰아친 한파에도 굴하지 않았던 이 의원은 2022년 6·1 재·보궐 선거에서 수성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결국 그녀는 홍준표 지사가 도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놓으면서 발생한 2022년 6월 1일 재·보궐선거에서 7년간의 고독을 극복하고 꿈에 그리던 정계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원장과 경북 경제부지사,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청장의 이력에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 공약을 만드는 데 주춧돌을 놓기도 한 이 의원은 이제  이변이 없는 한 4·10 총선에서 재선 의원으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미 선산이 낳은 칠전팔기의 정치인 이인선
2014년 11월 이 의원이 경북도 경제부지사에 취임하자, 세상은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전국 최초의 여성 정무 부지사인 데다 대학교 부총장(계명대) 출신이라는 변별적 이력은 ’명망가 이인선 부지사‘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했다.

예측은 현실로 이어졌다. 경북도가 풀어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들고 중앙부처에 들어가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옹골찬 기백으로 고위직을 두루 만났고, 결국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그 속에는 경북 현안 해결에 대한 답안이 들어 있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 지혜와 인내가 거둬들인 결실이었다.

마치 험산 준령을 오르내리는 ‘목숨을 내건 산악인’처럼 정치 험로를 걸어 성공한 정치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철의 여인’이 의원은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가 고향이다.

유년의 삶은 훗날 살아가는 데 힘이 되기도 하고, 힘을 상실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 의원의 조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항일 독립투사였다. 조부가 가정보다 나라를 위해 청춘을 투신하면서 가계는 기울었다. 그 때문에 당시 이 의원의 가족은 외조모가 거처하고 있던 인동동에서 혈연의 끈을 잡고 구미시로 이주했다. 이후 가족들은 고아읍과 도개면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잠시 선산읍 이문리에 머물 즈음 이 의원이 출생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헌신한 조부의 혈통을 물려받아 유년의 뼈대를 탄탄하게 다진 이 의원의 힘은 결국 경북도 발전을 위한 집념으로 발전했고, 정치의 길을 열어젖히는 근원이 됐다.

그는 구미 발전을 위한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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