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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사 칼럼] 어른이 없다

김미자 기자 입력 2024.01.18 12:22 수정 2024.01.18 12:25

김영민 [K문화타임즈 논설주간 겸 상임고문/ 전 구미 대구 YMCA 사무총장]

며칠 전 어느 조찬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소위 지역의 민주인사를 자처(?)하거나 지칭하거나 혹은 그런 사람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의 모임 이였지요. 그런데 그 중의 참석자 중 한 사람의 말은 저를 더 이상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고, 급기야 탈퇴를 선언하고 나왔습니다. 단 모임 한번 참석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시민운동을 하는, 그리고 당적이 다른)이 한 말 즉 ‘지역에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당은 물론이고 시민운동 현장에서도 그러하다는 말을 강조하면서요. 그 말은 젊은이는 이미 완전하게 흰 머리를 가진 저에게는 ‘바보야, 나이만 먹은 바보야’라고 꾸중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어른이란 말은 라틴어로 생물학적 의미에서 성인 남성을 비르vir 노인을 세넥스 senex라고 했고,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을 뜻할 때 수페리오르superior 라 했습니다. 또한 ‘성장한’이란 뜻을 가진 말은 아둘투스 adultus이고 동사 ‘성장하다’말의 과거분사 아돌레스코 adolesco는 지금 영어 어덜트adult가 됩니다. 성장한 사람이란 말이 되지요. 또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어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 등으로 국어사전은 풀어줍니다.

같은 의미일까요?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라는 말은 아마 ‘나보다 성숙하고 현명하며 지혜로운 누군가, 이 혼란한 삶 속에서 나를 이끌어 주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로 연결될 듯합니다(한동일, 『믿는 인간이 없다』, 흐름출판, 2021, P27 갈무리)

처음 제시한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지역에서 50년을 넘어 시민운동이란 이름으로, 복지운동이나 대학 강단에서 등 이런저런 모습으로 뒹굴면서 울고 웃고는 노력해 왔던 지난 모든 모습들에서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로 연결할 수 있는 내용을 면전에서 듣는 마음은 화끈거리는 부끄러움과 당혹함, 나아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송구스러움에서 더 이상의 언급을 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오늘까지 살아온 방식 즉 원시시대부터 야생동물에게 먹힐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지금으로 진화될 수 있는 것은 겸손humilitas이란 말과 행동에서 가능했다는 다시 기억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이만 먹은, 그러면서도 지혜도, 현명함, 겸손도 없다는 꾸중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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