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의회 정치사ᐧ1 - 56세대 그룹과 구미시의회 정치사ᐧ2 - 67세대 그룹을 2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 구미시의회 정치사의 뒤안길로 돌아선 56세대(1955년-1956년생)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기 위해 형설지공하고 있는 정치 그룹이 ‘권토중래 67세대’이다. 1966년과 1967년생인 67세대는 이른바 ‘빠른 1969년생’으로 1968년생들과 학번을 같이하는 김장호 시장과 같은 세대여도 무방한 구미정치의 핵심 인물군이다.
경제적 변혁기를 가고 있는 이들이 짊어진 과제물은 한가득이다. 앞선 세대의 정치인들이 일부 대기업에 구미산단의 운명을 위탁한 유유자적(悠悠自適)의 프레임이 67세대에 ‘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과제물을 떠안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경제 상황은 이들에게 ‘AI’형 최첨단 형 정치인으로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물을 안기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물은 ‘활발한 소통, 풍부한 지식 확보, 실용주에 대한 선제 대응’을 통해‘최첨단 구미산단의 농장’에서 수확해야 할 먹거리이다.
◇67세대는 구미권(구미시), 선산권(선산군), 인동권(칠곡군)의 대표 정치그룹
상처를 딛고 재도전하는‘권토중래 67세대
1966년과 1967년생인 67세대는 토착 구미시에 소재한 구미고등학교 출신의 구자근ᐧ강승수ᐧ김낙관ᐧ박세진과 선산 정치의 상징인 윤종호ᐧ강승수ᐧ양진오, 인동 출신의 윤영철 등 7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추억을 안고 있다.
구자근 국회의원, 윤종호 경북도의원, 윤영철 전 구미시의회 의원은 첫 도전한 시의원 선거에서 패했고, 김낙관 구미시의회 의원은 첫 도전한 도의원 경선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또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원은 공천장을 반납한 아픔을, 양진오 구미시의회 의원 역시 정치권 밖 황량한 오지에서 자수성가한 고독한 청년 시절의 추억을 안고 있다.
⇥67세대 발원지의 주인공은 구자근 국회의원아득한 세월을 품어 안고 흐르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강원도 태백 황지연못이듯 구미정치의 주류로 부상한 67세대의 발원지 황지연못은 18년 전인 1995년 지방선거에 소재하고 있다.
1995년 당시 구미정치는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특히 서울 용산세무서장을 사임하고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 김현철의 후광으로 민자당 공천을 받은 김관용 현 민주평통 수석부회장, 자민련 전병억 전 박정희대통령 생가보존회장, 형곡동 출신의 무소속 강구휘 전 경북도의회 의원 , ‘대통령만 빼고 모든 선거에 출마한 것’으로 유명한 경광수 산부인과 원장, 무소속으로 구미을에 적을 둔 장경환 전 조합장, 무소속 강상수 등 6파전으로 진행된 제1대 민선 구미시장 선거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선산군이 구미시에 흡수통합된 당시 선산군 고아 출신의 김관용과 구미시 원평 출신의 전병억의 대결 이면에는 지역 간 정서가 강하게 작용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총재를 맡고 있던 당시 자민련의 정치적 무대가 충청도라는 특성이 작용하면서 자민련 후보인 전병억은 가시밭길에 놓여 있는 반면 정서적 지원군인 대구경북의 민심과 김윤환․박세직 전 국회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김관용이 가는 길은 이른바 꽃길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전개된 선거 결과도 흥미로웠다. 구미갑 개표 결과 전병억이 김관용을 1,661표 앞섰으나, 구 선산군으로부터 정서적 지원을 받은 김관용은 구미을에서 전병억을 4,413표 앞섰다. 결국 구미갑에서는 이겼으나 구미을에서 패한 전병억은 2,700표 차로 민선1기 시장 당선증을 김관용에게 넘겨야 했다.
후유증도 남달랐다. 간발의 차로 패한 전병억은 막역한 친구 간이지만 선거에서는 김관용에게 돌아선 구미경제 실세 문대식 회장에 쌓인 울분을 삭이지 못해 협박성 발언을 하면서 한때 구미정가를 혼돈 속을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합 구미시의 정치적 혼돈 속에서 ‘대학 졸업장에 잉크 물이 마르기’도 전인 1995년 26세의 전국 최연소 혈기로 구미시 비산동 시의원 선거에 뛰어든 구자근 국회의원은 47표 차로 석패하면서 차기를 기약해야만 했다.
67세대의 출현 시기는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정치적 잠복기를 끝낸 2006년 4대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소선거구제, 무공천 제로 실시한 당시 시의원 선거에 뛰어든 정치인은 10년간의 고독을 딛고 도전장을 낸 구자근과 윤종호, 윤영철 등 3명이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만족한 선물을 안기지 못했다.
소선구제․ 무공천에서 중선거구제와 공천제로 전환한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등에 업은 구자근 현 국회의원이 재기에 성공한 반면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세운 윤종호와 무소속으로 링 위에 오른 윤영철이 석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구자근의 등장은 향후 구미정치 주류로서의 부상 가능성을 예고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006년 지방선거라는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67세대의 강물은 4년 후인 2010년 시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무소속 강승수, 친박연합 박세진, 친박연합 윤종호, 한나라당 윤영철 등 4명의 당선자를 내면서 예상을 현실로 입증했다.
특히 시의원에서 도의원으로 말을 갈아타기 위해 야심을 불사른 구자근의 경북도의원 당선은 67세대의 정치적 확장성을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부여됐다.
이처럼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탄력을 받은 67세대는 4년 후인 2014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의원 구자근, 재선 시의원 강승수․박세진․윤영철․윤종호,초선의 양진오를 배출하면서 최대의 부흥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영원한 패자도, 승자도 없는 게 정치세계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은 냉정한 정치세계의 현실을 입증했다.
시의원 선거에 뛰어든 강승수‧윤종호가 3선, 양진오가 재선으로 자리를 견고하게 했는 데다 김낙관이 초선으로 정치계에 첫발을 내디딘 반면 2016년 총선을 겨냥해 도의원직을 사직한 구자근은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사실상 전략공천자에게 석패를 당하면서 차기를 기약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희비의 정치적 능선에 몸을 던진 67세대는 2022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과 도의원, 시의원 세계로 확장성을 더해가면서 구미정치의 주류로 안착했다.
국회의원 구자근, 경북도의원 윤종호, 4선 시의원 강승수, 3선 시의원 양진오, 재선 시의원 김낙관의 배출을 놓고 세상은 세상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67세대는 해를 거듭하면서 한국 정치의 원류로 합류하는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의힘 당대표 비서실장의 구자근 국회의원과 경북도의회에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윤종호 의원, 구미시의회 의장단으로의 입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강승수‧양진오‧김낙관 의원의 행보에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다 재선 시의원의 이력을 지닌 윤영철‧박세진 전 시의원 역시 잠복기 속에서 향후를 기약하며 고독한 세월을 가고 있다는 점도 67세대의 존재가치에 의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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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자 1차 보도]
[기획ᐧ구미시의회 정치사ᐧ1] 구미정치의 주류 시도했으나... 낙루(落淚)의 56세대, 전인철‧ 손홍섭‧ 이규원‧ 윤종석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2000년대 들면서 관심을 끈 정치그룹은 구미시의회‘56세대 그룹’(1955년-1956년생)이었다.
전인철 전 도의원, 손홍섭 전 구미시의회 부의장, 윤종석 전 구미시의회 부의장, 이규원 전 구미시의회 운영위원장 등 핵심 4인방은 당시만 해도 구미의 차기 정치를 꾸려나갈 탄탄한 잠재군으로 분류됐다.
구미중학교 출신인 이들은 학맥으로는‘동기 동창생, 정치적으로는 ‘선의의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토대를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선두 주자인 전 전 도의원(전 구미시의회 의장)을 위시한 56세대는 탄탄한 기반을 확보한 이수근‧ 이용원 전 의장에 이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8년간의 최장수 의장을 지낸 윤영길의 아성을 허무는 게 관건이었다. 그만큼 현실의 벽은 강고(強固)했다.
구미시의회 내에 구축한 탄탄한 정치적 토대와 구미갑구의 정치적 원류인 구미중학교의 인맥, 구미시체육회 실무부회장을 역임하면서 구축한 탄탄한 체육계의 기반 등 제반 여건을 모두 갖춘 데다 김관용 전 구미시장과 막역한 관계를 형성한 윤 전 의장의 벽을 허물기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이 때문에 56세대 그룹은 이수근ᐧ이용원ᐧ 윤영길 전 의장과 김종령 전 부의장 등 막강한 존재감에 눌리면서 2006년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56그룹이 마냥 뒤짐을 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는 언제든지 주어지는 법이다. 2004년 구미시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해 윤영길 전 의장에 대항한 전 전 도의원은 1차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는 득표력에 힘입어 56세대의 물꼬를 텄다.
이를 시작으로 2006년 구미시장 선거를 겨냥한 윤 전 의장이 자리를 비운 2006년 후반기 의장 선거에서의 전 전 도의원의 의장 당선은 56세대 그룹에게 서광을 안기면서 권불십년의 이치를 입증해 보였다.
또 여타의 56세대 그룹 구성원에게도 기회를 제공해 윤종석ᐧ손홍섭 전 의원에게는 부의장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이규원 전 의원에게도 의회 위원장이라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윤 전 의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전 전 도의원은 도전의 세계를 구미시의회라는 테두리에 한정하지 않았다. 2년 후인 2010년 도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 전 도의원은 구미을구 김대호 전 도의원과 함께 구미정치사를 넘어 경북도의회 의정사에 파란을 일으켰다. 두 인사가 한나라당 공천 후보의 아성을 허물면서 무소속 당선이라는 기록을 썼기 때문이다. 훗날 출마를 겨냥한 두 인사의 도의원직 사퇴는 재보궐 선거에서 구미갑구의 이태식, 구미을구의 김봉교 전 도의원을 배출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그러나 2014년 총선 출마를 겨냥해 도의원직을 집어던진 전 전 도의원의 정치적 승부수에 더 이상의 관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4선을 겨냥한 김성조 전 국회의원, 포항 출신의 정치 신예로 최경환 전 의원의 후광을 업은 심학봉 전 국회의원, 시장 선거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허리끈을 조여 맨 김석호 전 도의원, 고려대 전체 수석의 영예에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병길 변호사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과 사투를 벌였으나 심학봉 전 국회의원의 위세에 눌리면서 전 전 도의원은 10여 년의 정치사상 패배의 첫 잔을 마셔야 했다.
이후 결과에 승복한 이병길 변호사와는 달리 후보 공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김성조 전 국회의원, 김석호 전 도의원과 함께 무소속 본선 출마를 위한 단일화 과정에서 김성조 전 국회의원에게 양보한 전 전 도의원은 단일 후보로 추대받은 김성조 전 국회의원의 불출마 선언이라는 결단 앞에서 쌓아 온 정치 이력은 허망한 꿈이 됐다.
또 전 전 도의원과 함께 56세대 핵심 구성원인 윤종석 전 부의장은 이후 진보 성향의 세계에서의 출구를 노렸으나 결국 학계의 길로 돌아섰고, 일찌감치 구미시의회 부의장을 끝으로 지방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손홍섭 전 부의장은 구미현대 정치의 중심지인 형곡동과 송정동에서 묵묵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역사와 문화예술에 조예와 관심이 남다른 이규원 전 구미시의회 운영위원장 역시 정치적 꿈을 접고 해박한 지식과 지혜를 구미문화예술 발전에 접목하고 있다.
한편 2006년 6월의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의장직을 사퇴한 윤 전의장은 남유진, 김석호, 김진태 등이 등판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경선을 앞두고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유력한 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됐으나 뒤늦게 의장직을 사퇴하는 등 경선 준비에 차질을 빚으면서 최장수 의장의 영화를 이어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