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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와 삶] 우리들의 어머니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입력 2023.05.23 23:52 수정 2023.05.24 00:06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유년이 있었다
장독대, 그 캄캄한 세상에서 아주 살며시

 

눈물을 퍼 올리던 우리들의 엄마는

멀리 능선에 둥지를 틀곤 했다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함박눈이 쌓였다
새벽보다 먼저 일어난 엄마는
가슴 깊이 담가놓은 김장김치를 품어 들고
자취방으로 걸어들어오곤 했다
 

먹어도 먹어도 고프기만 하던 학창시절
엄마는
김장김치에다 모락모락 쌀밥상을
남겨놓고 등을 돌리셨다

눈물을,
웃음으로 감추는 비법을 터득한
우리들의 엄마는
자주 고개를 돌리곤 하셨다
그리하여 나 또한
가슴에도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학창 시절
 

경부선 하행 야간열차
멀리 능선에 등잔불이 가물거린다
엄마는...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이 길

조용히 아주 조용히
세월을 거슬러 오른다
“얘야, 밥은 먹고 다니니...”
낚아올린 세월
그렁그렁 눈물들이 피고 또 지고 있다
 

늙어버린 우리들의 엄마는
잠도 없이
또 언제 내 가슴 한켠에 둥지를 트셨을까
가만히 가만히 비가 내린다

오늘 아침도
가슴의 밭 사철나무 숲 그늘 아래
김장김치와 모락모락 쌀밥상을
차리셨다
가슴의 밭에 둥지를 튼
우리들의 엄마는...
 


이 좋은 늦봄 날
엄마는 

가슴의 밭에 오래오래 잠이 드셨다 

 

[시인/소설가 김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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