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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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chatGPT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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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발행인 (시인 소설가) 김경홍] 2010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의 일화를 이렇게 써 내렸다.
“세월이 흘러 그의(박정희 대통령) 맏딸 박근혜가 찾아왔다. 박정희가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며, 2004년 8월 박 대표가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온 일화를 떠 올렸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근혜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도 아버지의 일에 대해 사과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해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며 감격스러웠던 추억을 술회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 민심과의 첫 만남은 1971년 4월 27일 실시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50대 말의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40대 기수론을 들고 출사표를 던진 전남 목포 출신의 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격돌한 선거에서 후보별 선산군(구미시) 득표율은 90.84% (박정희) vs 8.53%(김대중)였다.
김대중의 고향 전남 목포의 득표율 66.45% (김대중) vs 32.37%(박정희)와도 비교될 만큼 선산군 민심은 박정희 후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반면 김대중 후보에겐 냉정했다.
하지만 7대 선거 결과는 유신체제를 태동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서울에서 59.39%의 득표율로 39.95%를 얻는 데 그친 박정희 후보를 19.44% 차로 앞선 김대중 후보가 여세를 몰아 전체 득표수에서도 94만 6,928표 차로 따라붙으며 정권의 안위를 위협한 까닭이다.
그로부터 26년 후 치른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적대적일 정도로 냉랭했던 구미민심이 해빙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선거 결과 국민회의 (민주당 전신) 김대중 후보의 구미 득표율은 14.47%로 1971년의 8.53% 대비 59%의 확장성을 보였다. 이러한 득표력은 한나라당(공화당 전신) 이회창 후보를 가까스로 (39만 표 차) 누르면서 당선된 김대중 후보에게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집권 1년 차인 1998년 구미공단 사정은 나락(那落)으로 빠져들었다. OB 맥주 공장 광주 이전을 시작으로 비롯된 공동화의 바람은 ‘굴뚝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는 황량한 구미산단’의 처참한 풍경을 그려냈다.
그 당시 구미 경제의 탈출구는 1996년 9월 30일 3공단 조성과 함께 계획만 수립한 채 요지부동인 4산단 조기 조성이었다. 하지만 기존 산단이 공동화하는 상황에서 4산단 착공 바람은 과유불급이었다. 특히 수자원공사가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을 경우 자력으로 4산단을 조성할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고 공언하면서 희망의 프로젝트는 백지화 위기에 내몰렸다. 구미산단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시민들이‘구미경제 살리기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가동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위급하게 흐르자, 그 당시 자민련 부총재를 맡고 있던 박세직 의원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김대중 대통령의 핫라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4산단 조기 조성을 위한 수순을 용의주도하게 밟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4산단 조성에 정치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박 의원은 4산단 착공식 당일, 대구에 내려와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일정에 잡혀있지도 않던 착공식에 참석시키는 기지를 발휘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초, 4산단 착공식 당일 김대중 대통령은 대구 행사를 마치고 귀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세직 의원은 대통령 비서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종필 총재 핫라인을 활용해 일정에 없던 대통령의 4산단 착공식 참석을 성사시킴으로써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깐 것이다.
결국, 박세직 전 국회의원의 노력과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에 힘입어 착공에 들어간 구미4산단은 벼랑 끝에 내몰린 1990년대 말, 구미경제를 기사회생하는 효자가 됐다.
미움도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일 때가 있다.
경제대통령 박정희와 민주화 대통령 김대중은 ‘2026년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절대적 존재 가치다. 그리고 화해의 무드를 조성한 박근혜 대통령과 위기의 구미산단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한 박세직 의원도 구미시민들이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다.
진보와 보수라는 날개가 서로 윈윈할 때 대한민국이라는 새는 번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양 진영은 서로가 서로에게 비난의 아우성보다 비판의 응원가를 보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7주기,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구미는 목포를 향해,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목포는 구미를 향해 응원가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만 미움도 사랑이 된다. 그래야만 사랑을 먹고 자란 후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