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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면 최초 국회의원 육홍균→항일운동
고아읍 최초 국회의원 신원준→항일운동
선산읍 최초 국회의원 김우동→항일운동
선산읍 두 번째 국회의원 김동석→항일운동
선산읍 세 번째 국회의원 김봉환(1921년생)→항일운동과 무관, 일제 강점기 시절 보통문관시험 합격
*장천면 최초 국회의원 김윤환
*무을면 최초 국회의원 강명구
6대(1963년) 이후 보수성향 정치인 구미정치 주도→김봉환(1921년생/선산읍)→김윤환(1932년생/장천면)→김태환(1943년생/장천면)→장석춘(1957년생/예천군)→김영식(1959년생/대구)→강명구(1977년생/ 무을)
구미 역대 총선 중 최대 경쟁률→제5대(1960년) 13대1
역대 당선자 중 최저 득표율→제5대 선거 신준원 19.07%
역대 최단명 국회의원 신원준 10개월 (5.16으로 국회 해산)
재검표로 당락 뒤바뀐 선거→제4대 (1959년), 세 번째 도전한 김동석이 김우동에 패했으나 재검표 결과 당선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김경홍 기자] 국회 정치의 출발을 알린 제1대 선거는 해방 3년 후인 1948년 5월 10일 실시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이후 3년간, 해방 대한민국의 운명을 미국 신탁통치(1945년 9월-1948년 8월 15일)에 위임한 탓이다. 약소국, 대한민국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강대국을 증오할 일만도 아니다. 소중한 인격을 노예화해 단돈‘몇 냥’에 사람을 사고파는 만행을 저지른 신분제 조선 사회, 사리사욕을 앞세운 양반들의 사색당파 싸움이 근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제1대 선거를 치른 1948년부터 5.16으로 국회가 해산되기 직전인 1960년 5대 선거에 이르는 12년간 구미(선산) 정치를 주도한 인물은 모두 항일운동 출신으로 육홍균, 김우동, 신원준, 김동석 국회의원 등 4인방이다. 이들은 1900년을 전후해 출생한 동향의 선후배 혹은 친구 간이었으나, 총선이 있을 때마다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간 치러진 선거에서 육홍균이 4전 2승 2패, 김우동·신준원 2전 1승 1패, 김동석이 3전 1승 2패일 만큼 이들은 희비의 능선을 오르내렸다.
구미(선산)정치의 출발을 알린 최초 국회의원은 옥성면 주아리가 고향으로 항일운동 출신의 육홍균이다.
제1대((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와 제2대((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에 걸쳐 6년간 국회의원을 지낸 육홍균은 수원고등농림고(현 서울대 농대) 일본 니혼대학 법학과를 중퇴했다.
농민운동을 주도하다가 1939년 4월 선산 경찰서에 검거돼 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의병운동, 독립운동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육홍균은 제3대 선거(1954년)에서 3선을 겨냥했으나 김우동에게 패했다. 이어 제5대 선거(1960년)에서 설욕을 노렸으나, 신준원에게 패한 후 정계를 떠났다.
구미정치의 두 번째 국회의원인 선산읍 출신의 김우동은 정치적 경쟁 관계였던 신원준과 구미소비조합을 결성해 항일 운동을 이어갔다. 선산중·고를 설립한 초대 이사장 출신이다. 이후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그는 1954년 치른 제3대 선거에서 3선을 겨냥한 육홍균을 누르고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자유당에 입당했다. 김덕 전 안기부장의 부친이다.
세 번째 국회의원으로 선산읍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동석은 1959년 제4대 선거에서 재선을 겨냥한 김우동을 누르고 당선됐다. 개표 결과 김우동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으나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면서 당선됐다.
일본 도쿄 제일외국어학교를 수료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과 비밀잡지 근우 간행에 가담하는 등 항일 운동을 펼쳤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자유당에 입당했다. 오상학원을 설립한 그는 김윤환‧ 김태환 의원의 부친이다. 훗날 한국 정치사에 조병옥, 김대중과 함께 삼부자 국회의원 3대 가문의 기록을 남긴 주인공이다.
항일운동가로서 네 번째 국회의원인 고아읍 출신의 신원준은 1960년 치른 제5대 선거에서 육홍균 의원을 누르고 무소속 간판으로 당선됐다. 2대 선거에서 육홍균 의원에게 패한 아픔을 설욕한 선거였다.
선산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되면서 중퇴했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귀국한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 정치적 경쟁 관계였던 김우동 의원과 구미소비조합을 결성해 항일 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5.16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10개월의 임기에 그쳤다.
신원준 국회의원을 끝으로 항일운동 출신의 구미 국회의원 시대는 막을 내렸다.
신원준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이 김봉환이다. 1960년 5대 선거를 통해 정치계에 입문한 그는 신원준에게 차점으로 패했으나 1963년 제6대 선거에서 당선된 후 8대까지 3선을 지냈고, 1973년 제9대에서는 유정회 1기로 당선되는 등 직선과 간선을 포함해 4선을 지냈다. 선산읍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2년 출생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만큼 항일운동과는 무관한 편한 길을 갔다.
현상윤 초대 고려대학교 총장의 손자인 현재민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명예교수와 CJ그룹 회장을 지낸 손경식의 장인이다. 김용철 전 대법원장, 신광순 전 국회의원은 손아랫동서이다.
불과 6년 전인 2020년 5월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뒤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예산결산위원장, 보건사회위원장 등을 역임한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족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억하는 구미인은 많지 않다. 구미에 남긴 족적이 뚜렷하지 않아서일까.
정치 무상, 인생무상의 단편이다.
6대(1963년) 이후 구미(선산)정치는 보수성향 인사가 주도했다.
그 주인공이 김봉환(1921년생/선산읍)→김윤환(1932년생/장천면)→김태환(1943년생/장천면)→장석춘(1957년생/예천군)→김영식(1959년생/대구)→강명구(1977년생/ 무을)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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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선산) 최초 국회의원 육홍균, 항일운동가 출신으로 옥성면 주아리가 고향이다. [사진=네이버 백과] |
육홍균 재선 이후 두 번 도전 모두 실패, 득표율도 6.74%에 그쳐
무소속 신준원 19.07%, 무소속 김대성 13.61%, 무소속 김봉환 13.01%, 사회대중당 곽명호 10.56%, 무소속 서기술 9.71%, 민주당 김주경 8.26%, 민주당 김성묵 7.97%, 무소속 육홍균 6.74%, 민주당 이재기 6.70%, 민주당 심경섭 1.99%, 사회대중당 김정준 1.45%, 기타단체 정지호 0.87%, 무소속 윤지평 0%
△ 6대(1963년 12월 17일~ 1967년 6월 30일 / 군위군▪·선산군 일원)
6대부터 8대까지 구미정치는 김봉환 의원의 전성기였다.
→후보별 득표율
민주공화당 김봉환 58.23%, 자유민주당 김현규 25.13%, 국민의당 김성묵 6.23%, 민정당 박일상 5.66%, 민주당 최형택 2.50%, 보수당 노승억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