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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새벽칼럼] 강명구 국회의원의 인생철학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6.05.20 10:58 수정 2026.05.20 11:00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일 굳은 표정으로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강명구 의원
[사진 제공 = 의원실]



[분석 기획 칼럼 전문매체 k문화타임즈=발행인 (시인 소설가) 김경홍] 2024년 4월 총선이 있기 전인 그해 3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당시 김영식 후보와 강명구 후보 간의 여론조사 경선전은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강 후보는 연일 김영식 후보에 대한 중앙당의 당무평가 공개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김영식 후보가 적극 대응에 나서면서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경선에 참여한 허성우 후보가 “자신의 공천만을 염두에 둔 후보들의 대립과 갈등, 혼탁선거로 경선문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두 후보의 자제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정도였다.

당시, 현역 도·시의원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세 명의 후보를 지지했다. 정근수,윤종호,백순창·김창혁 도의원과 양진오, 강승수, 장미경, 정지원, 소진혁, 김근한 시의원은 김영식 후보, 안주찬 당시 의장은 강명구 후보, 이명희·김영길 시의원은 허성우 후보 캠프에 몸을 담갔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26년 5월 7일 강명구 의원이 건넨 각 후보자의 평가서를 근간으로 경북도당은 구미을 선거구에 도의원 후보로 윤종호·김창혁·백순창 현 도의원과 이명희 전 시의원, 시의원 후보로 양진오·강승수· 장미경·소진혁·정지원·김근한 현 시의원 등을 공천했다.

2024년 3월 김영식 후보를 지지한 의원 중 낙천한 경우는 여론조사 경선에서 패배한 정근수 현 도의원이 유일했다. 오히려 경선 당시 강 후보를 유일하게 도왔던 안주찬 시의원(9대 전반기 의장)은 국민의힘을 탈당한 상태로 공천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16일 구미도의원 제6선거구(산동읍, 장천, 해평면) 국민의힘 윤종호 도의원 개소식에서 강명구 국회의원이 축사 형식을 빌려 2024년 3월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윤종호 후보는 고향(무을면) 선배이시고, 고등학교(김천 성의고) 선배이시다. 경선 당시 수차례 읍소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섭섭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윤 후보를 좋아한다. 공천을 주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일도 잘하지 않나.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좋아하는 선배다”

강 의원은 지난 16일 A모 시의원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축사에서 이런 아픔도 꺼냈다.
“내가 모셨던 대통령이 지금 감옥에 계시다. 감옥에 들어가신 후 이명 때문에 하루에 두 시간도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무게가 무려 15킬로나 빠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셨던 대통령이 감옥에 계시는 걸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러한 사연의 심연으로 들어가면 ‘의리의 정치인’, 강명구 국회의원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사리사욕을 뒤로한 채 지연과 학연을 떨쳐내고 경선에서 김영식 후보를 도왔던 윤종호 후보를 ‘의리의 정치인’으로 당당하게 평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을 향한 세상의 삿대질에 아랑곳없이 ‘의리의 인생철학’을 실천하는 강명구 의원이기에 김영식 후보를 도왔던 도·시의원들을 ‘의리의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의리를 ‘올바름의 인생사’로 정의한 까닭에 공천 과정에서 ‘보복의 칼날’을 꺼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 의원의 이러한 ‘인생철학’의 발원지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 답은 다음의 일화에서 읽을 수 있다.

2024년 4·10 선거가 종착역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해 4월 2일. 구미시 선산읍 선산오일장 유세장의 연단에 오른 강명구 후보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를 기른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에는 아버지의 강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웃어른에게 공경해라. 겸손하고 당당해라. 나보다 남을 위해 살라는 가르침의 강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날 아침 문안을 드리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세를 앞둔 아침에도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남 얘기 마라, 나쁜 얘기 마라. 겸손을 약속해라. 상대를 욕하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겠다고, 살아가는 곳곳에서 마음과 마음을 나누겠다고 약속해라. 의리를 중시해라”

당시 강 후보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추억했다. 겸손지덕한 ‘아버지의 가르침’,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이었다.

새벽 산길,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쌀과 보리 이삭을 길러냈듯 강명구 의원의 유년을 기른 것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런 그가 ‘산촌 밥상의 힘을 빌려 /세상 속으로 달려갔듯’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 세계에 뛰어든 것은 23년 전인 2002년이었다.

그리고 24년이 흐른 2026년 5월 7일, 강 의원은 공천에서 2024년 경선 당시 누구를 도왔든 ‘의리의 정치인’들을 억울하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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