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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벽칼럼] 소설에서의 2035년, 미래보고서에서의 2035년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6.01.16 01:19 수정 2026.01.16 01:27

김영민 구미·대구 YMCA 전 사무총장/ k문화타임즈 논설주간




물론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거나 비약이라 볼 수 있습니다만 동일한 기간 즉 10여 년 후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상태를 보려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요즘 말로 한 세기가 지난 다음을 소설은 인류에 대한 눈과 마음으로 그리고,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전과 그것을 토대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예언(?)에 ‘허무맹랑하다’와 ‘그럴 것도 같다’라는 느낌이 교차합니다.

<그랬다. 그는 전쟁과 수몰, 대공황의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어정쩡한 자본력이나 학력보다는 극한의 생존력이 필요한 시대였다. ‘초상집의 주인 잃은 개를 본 적이 있는가? (중략) 2035년 기성품 파괴운동 구호다. 분노한 청년들은 배트를 들고 뛰쳐나와 쇠락한 거리와 텅 빈 공장을 부쉈다. (중략) 교육의 평준화를 강조하며 국민다수를 고학력자로 만들려 한 기성품의 시대는 가고, 대학은 극소수 계층을 위한 학문의 연구 공간, 고즈넉한 분위기가 맴돌던 19세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공지영,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이 있는가』, 허블, 2025.12, P77~78). 비록 전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2035년의 사회상을 혼돈과 혼란, 극도의 양극화, 그것들을 유도한 과학의 발전, 기계문명 등에 마치 19세기 이전 기계파괴운동의 양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로 인한 푸른색의 비로 인한 모든 것(사람도) 증발 등의 모습에서처럼 환경 파괴와 전쟁, 우주로부터 발생한 천재지변 등으로 극도의 양극화로 인한 재난 도피자, 유전자 시술, 신인류의 탄생, 문명의 흥망과 성쇠 등 그 가운데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 등은 다음 페이지를 예단하기 힘들 정도로 쉴 틈 없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런 전개도 있습니다. 소설이 아닌 과학적인 예측, 논리적인 검증에서 새 시대를 향한 발전(?), 아니면 변화에 대하여‘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라는 끄덕임이 있습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기술 투자자로 평가받는 비노드 코슬라(오픈 AI 투자자)는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2025~2030년(AI인턴시대-모든 전문가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생보다 똑똑한 AI 비서를 고용하게 된다), 2030년대(기업멸종사건-포춘500대 기업들이 전례없는 속도로 몰락하고...구조와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개편된다), 2040년 이후(일은 선택사항-더이상 인류는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어질 가능성이 80%, 인간형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체하고 의료, 법률, 교육 등 모든 전문지식이 무료가 될 것이다)’(박영숙, 제롬글렌 공저, 『세계미래보고서 2026-2036』, 교보문고, 2025.11. P41 갈무리) 충분히 예측되고 또 지금도 바로 보고 있는 AI의 발전은 모든 삶 자체를 변화시키고, 급기야는 인간의 기본적인 노동, 기업 자체에 말할 수 없는 변화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이미 시작된 AGI가 미래 지도를 어떻게 그릴지를 미리 보여줍니다. AGI의 출현과 로봇의 급증, 기술 실업률 증가와 노동의 위기, 기본소득 사회와 무료 주택 시대, 대학의 종말, 기후 목표 사망, 전 세계 1시간 이동권 시대, 의식주 변화까지 AGI가 일상이 되는 시대를 담고 있습니다.

두 권의 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과연 10년 후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전자가 “우주의 음악 속 작은 패턴인 인류가 감내해야 할 운명을 가만히 응시하는 경험”(강지희 문학평론가)을 그리면서 기후위기와 계급갈등의 두 위기에 대해 인류의 방식을 “어떻게?”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라면, 후자는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 지능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인간다움을 지키며 AG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문”(Yes24 책 소개 인용)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구체적인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말하면서요.

이 두 가지 예언들을 가볍게 흘리지 마시기를 강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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