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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복희 수필집· 연재] 내성천에서는 은어도 별이 된다 (10)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입력 2025.12.29 15:10 수정 2025.12.29 15:14

내가 모르는 나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화사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영정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간다. 그녀가 왜,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바로 학부모 모임 날, 그녀는 모임 장소가 아닌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다.

치매라고 하면 노인들이나 걸리는 병으로 여겨왔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배우의 애절한 연기를 본 적이 있다. 노인성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주인공의 삶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고는 볼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해오던 사십 대 후반의 그녀도 점차 일상생활 능력을 상실해 갔다. 젊은 층에서 이 병이 발병하면 악화 속도가 노인보다 빠르다더니, 그녀도 한 달에 한 번 볼 때마다 급격히 변해 갔다. 모두가 속으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예전과 같이 대하려고 애를 썼다.

고장 난 형광등같이 깜빡하는 병은 내게도 있다.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도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도 무엇이 필요해서 열었는지 모를 때도 많다. 때론 대화 도중에 낱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그 있잖아, 뭐더라, 뭐더라.” 몇 번이고 다른 말만 하곤 한다. 이러다가 더 나이 들면 속옷에 이름과 주소를 수놓아 입고 다녀야겠다고 우스갯소리도 해왔다. 이런 증세들을 건망증이라고들 하지만, 장기간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알츠하이머도 의심해 볼 일이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노화가 이 병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고, 일부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게 된다고 한다. 초기에는 증상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상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단다. 그녀도 발병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언행이 좀 이상했지만, 가족들까지도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건망증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녀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을 받았을 때는 벌써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점점 기억장애가 심해져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대화 도중 주제를 잊고 얼버무렸다.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대인기피증과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면서도 염려하는 말을 하면 “나,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그녀는 아무도 몰라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이 병은 가속이 붙어 그녀를 마구 갉아먹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스스로가 유리되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젊은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혹독한 형벌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울증으로 인해 이렇게 살아봐야 무얼 할 것이며,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스스로가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녀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고야 말았다.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자녀들 다 키워놓고 이제 제3의 인생을 즐길 나이였는데, 허무한 것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뇌 속에 내가 모르는 내가 하나 더 있다고, 나의 뇌를 다른 그 무엇에게 조정 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곳에 갔었는지, 이 모든 것을 새까맣게 모르는 나. 그러다가 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 괴리감.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그 무엇. 이 세상에 홀로 동떨어진 느낌……. 차라리 완전히 나를 잊어버린다면 괴로워 허덕이지는 않을 텐데, 어찌 미치지 않고서 견뎌낼 수 있을까.

 
그녀와의 만남을 돌이켜 보자면 12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딸아이 초등 2학년 때의 학부모 모임이었다. 누구 하나 도드라지는 사람도 없이 두루뭉술하게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돌아가는 집안 이야기 등 궁금한 것을 서로 묻고 알려 주는 자리였다. 모임 날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고 나면 속이 다 시원했다. 그중에 한 사람인 그녀는 내가 아는 한 늘 적극적이고 활달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속사정을 가둬두고 사는 듯했다. 워낙 완벽한 성격이라 그러려니 여겼다.

 
한 달 전, 그녀가 마지막 모임에 참석했을 때가 생각난다. 한 학부모가 아파트 현관까지 가서 그녀를 모셔왔다. 집에서 떨어진 낯선 곳에 오니 불안했는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들의 전화번호가 단축으로 되어 있는가 보았다. 전화를 걸고 또, 걸고 걸었다. 우리가 안심을 시키고 집으로 갈 때 모셔다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일렀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전화로 아들만 찾았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아들과 연결된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헤어질 때 내가 준 수필 동인지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가는 그녀가 내내 눈에 아른거린다. 동인지를 읽고 나서는 문자나 전화로 좋은 글 잘 읽었다며 격려의 말을 빠뜨리지 않고 해줬었다. 그러나 그녀와 마지막 만남 이후로 끝끝내 내게 문자도 전화도 없었다. 그녀의 전화번호가 아직도 내 휴대폰에 남아 있다. 내 기억 속에 그녀가 지워지지 않는 한 그 번호는 연락처 목록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잘 있느냐고, 이제 편안하냐며 통화라도 하고 싶다.

병은 소문을 내야 빨리 낫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숨기려고만 든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스트레스가 병을 더 덧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자존심 강하고 완벽주의인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떠났다. 마지막까지 지켜야 했던 자존심이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서로의 속앓이를 편하게 얘기할 사람이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그녀의 영정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함께 온 학부모들의 흐느낌에 소름이 돋고 한기마저 든다. 언제 내게도 이런 병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지 않은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도 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너무 젊고 화사해서 더 애절한 그녀의 영정을 본다. 내 얼굴이 그녀의 얼굴과 두 겹 세 겹 오버랩 된다. 하늘 소풍을 떠나는 그녀에게 그리운 마음 한 자락 곱게 접어서 보낸다.


이복희 작가(시인 수필가)⇁⇁⇁⇁

 


경북 김천 출신이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 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시집으로 ‘오래된 거미집’, 수필집으로 ‘내성천에서는 은어도 별이 된다’를 출간했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는 작가로 경북 구미와 경기 동탄을 오르내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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